주간동아 286

2001.05.31

교황 “천 년의 종교 갈등 내 탓이오!”

그리스정교회-이슬람교와 화해 순방길 … “은밀한 가톨릭 전파” 따가운 시선도

  • < 남혜현/ 연세대 유럽문화정보센터 전문연구원 russ3023@unitel.co.kr >

    입력2005-01-31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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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천 년의 종교 갈등 내 탓이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분쟁은 세계사의 지난 천 년을 피로 물들였다. 종교갈등과 그로 인해 불거진 민족분쟁은 냉전 이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최대의 난제가 된 지 오래다. 세르비아, 아프가니스탄, 체첸, 동티모르에서의 인종청소와 학살,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극렬한 테러전(戰)은 평화를 바라는 인류의 희망을 어둡게 한다. 지난 5월9일 끝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그리스-시리아-몰타 3개국 순방의 의미는 이러한 심각한 종교분쟁 상황을 고려하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올해로 즉위 23년을 맞은 교황은 그 동안 종교 간 화해를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 왔다. 1986년에는 로마의 유대교회를 방문해 가톨릭과 유대교의 화해를 촉구한 바 있고, 99년에는 두 종교가 결별한 후 거의 천 년 만에 루마니아 정교 기도회에 참가해, 두 종교 간 화해를 이끌어냈다. 교황은 이번 크리스토둘로스 그리스정교회 대주교와의 만남에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가톨릭 신자들의 행위나 태만으로 정교회 형제들에게 저지른 죄에 대해 참회”하는 기도문을 발표하고 공식 사과했다.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는 우마야드 이슬람 사원을 역대 교황으로는 처음 방문했다. 8세기에 세워진 이 사원은 가장 오래된 석조 이슬람 사원인 동시에 세례 요한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교차점이라는 면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교황의 이번 순방은 인간 구원이라는 공동목표를 추구하면서도, 반목과 갈등으로 얼룩진 종교사를 반추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와 이슬람간 갈등을 짚어보기 위해서는 두 종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대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들 종교가 뿌리를 같이하다 보니,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성지도 예루살렘 안에 인접해 있다. 이슬람교의 선지자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암석사원은 유대교 최대의 성소인 통곡의 벽 바로 위에 위치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은 골고타 언덕이 있는 곳도 이곳이다.

    교황 “천 년의 종교 갈등 내 탓이오!”
    유대교의 경전은 기독교의 구약성서로, 유대교는 기독교와 그 뿌리를 같이한다. 유대인과 아랍인은 모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셈족이다. 구약 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에게는 배다른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었는데, 이스마엘의 자손이 아랍인이 되었으며 이삭의 자손이 유대인이 되었다. 아랍인은 조상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진정한 적통이라고 주장한다. 7세기 초 아랍의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했다. 그들은 코란이 언어만 아랍어로 되었을 뿐, 성서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믿는다. 마호메트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가톨릭과 유대교인에게 전했지만 유럽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8세기 이후 이슬람이 번성하자 유럽은 1096년 십자군 원정을 단행해 두 종교는 피할 수 없는 앙숙관계로 발전했다. 이후 중동과 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의 대다수 이슬람 국가는, 가톨릭을 믿는 서구의 식민지배를 받아 양 진영의 골은 더 깊어졌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미국의 독립 약속을 믿고 연합국에 협조했던 아랍은, 전쟁 후 유럽이 이중약속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높였다. 그리고 냉전이 무너진 오늘날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를 둘러싼 갈등이 보스니아, 동티모르, 체첸 등 세계 전역에서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가톨릭은 이슬람이 정통성을 벗어난 이단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슬람은 냉전의 이분법적 시각에 사로잡힌 유럽이 새로운 ‘적대세력’이 필요하자 자기들을 이용했다고 반박한다.



    그리스정교회는 로마가톨릭, 개신교와 함께 기독교 3대 교파의 하나다. 1054년 교리를 둘러싼 갈등으로 로마가톨릭이 고대 기독교에서 분리하면서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었다. 특히 로마교회가 로마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하자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정교회는 이를 반대한다.이미 두 차례의 세계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는 로마의 주교와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콘스탄티노플의 포티오스 총대주교가 로마 교황을 파문했고, 로마의 움베르토 추기경이 그리스정교회에 대한 파문장을 던짐으로써 양교회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가톨릭과 그리스정교회는 16세기 말 정교회권이던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이 가톨릭 교구로 전환되자 또다시 갈등을 빚었으며, 현재까지 러시아 정교회는 가톨릭이 이곳을 강탈했다는 이유로 바티칸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가톨릭은 동부 유럽을 점령한 나치가 정교회에 가혹한 핍박을 가한 것을 묵인했고, 오히려 나치의 비호 아래 세력을 확산시켰다. 정교회는 당시 크로아티아의 친(親)나치 정부가 자행한 세르비아인과 유대인, 집시 대량학살에 가톨릭이 연루되었다고 비난하였다. 1991년 유고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분쟁에도 두 종교의 영향이 컸다. 현재 가톨릭은 정교회가 큰 영향을 미치는 동부 유럽과 러시아를 중점 선교지역이라고 밝히고 있어, 정교회측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게다가 로마 교황의 절대성과 무오성은 가톨릭과 정교회의 대화 재개에 가장 큰 부담으로 남아 있다.

    교황의 이번 사과 발언으로 인해, 로마 교황을 기독교의 분열과 그리스정교 탄압의 ‘원흉’으로 여기는 그리스정교 신자들의 적대적인 감정이 다소 누그러질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정교회는 분리된 지 천 년 만에 화해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그렇다고 이번 교황의 역사적인 순방이 모든 이들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지난 달 30일 그리스 정교회 수사와 신도 2000여 명은 아테네에서 검은 깃발을 흔들며 교황의 그리스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정교회측의 교황 방문 수락 결정을 비난했다. 또한 교황의 방문과 사과발언에 대해 러시아 정교회 알렉시 2세 총주교도 회의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어, 양교회의 화해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오는 6월과 9월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러시아정교회측은 “바티칸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들”이 선행되지 않는 한, 교황의 방문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교황 방문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바사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교황을 맞으며 유대주의를 공격하고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점령을 비난하자, 이스라엘 쪽도 아랍권이 교황의 방문을 반이스라엘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용한다고 비난했다. 또 일부 아랍권 강경파들은 교황의 방문 목적이 기독교의 은밀한 전파라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교황의 이번 순방은 분열된 형제 교회와 이웃 종교에 대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인류의 평화를 다지려는 힘겹지만 귀중한 첫걸음이다. 물론 교황의 이러한 행동이 분쟁의 불씨를 단번에 끌 수 있으리라는 관측은 드물다. 그러나 천 년에 걸친 ‘지난 잘못의 사과’는 우리 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종교 지도자들에게 좋은 귀감으로 남을 전망이다. 종교 간 평화 없이는 세계평화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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