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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베를루스코니의 승리 … 속쓰린 EU

총리 추대로 政-經-言 모두 장악 … 재산 형성과정 의혹투성이, 극우 성향 탓 주변국 경계

  • < 강여규/ 하이델베르크 통신원 kang@debitel.net >

伊 베를루스코니의 승리 … 속쓰린 EU

伊 베를루스코니의 승리 … 속쓰린 EU
지난 5월13일 이탈리아 국민들은 이탈리아 최고의 갑부이며 미디어 황제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를 총리로 추대했다. 그가 이끄는 우익연합 ‘자유의 집’은 이날 치른 총선에서 하원 630석 중 368석, 상원 315석 중 177석을 획득, 양원 모두에서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좌파연합 ‘올리브 나무’는 총리 후보이던 프란체스코 루텔리(Francesco Rutelli)가 선전했음에도 하원 242석, 상원 125석만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 최초의 좌익 연합정권이던 ‘올리브 나무’는 5년 만에 실각하는 아픔을 겪었고, 그들의 ‘이상적 개혁론’도 함께 깃발을 내렸다. 반면 우익연합은 자신들의 현실론이 위력을 드러냈다며 국민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우익연합의 승리를 바라보는 유럽연합(EU)의 표정은 ‘착잡함’ 그 자체다. 우익연합에는 외국인에게 적대적 성향을 보이는 극우그룹 ‘북부연합’과 무솔리니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신파시스트 ‘국민동맹’이 포함되었고, 베를루스코니 자신도 “부패와 범죄적 방법을 이용해 돈을 번 전제군주적 기업경영자”란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가도’에는 늘 마피아와 로비, 세금포탈이라는 ‘망령’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1939년 밀라노 변두리에서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나 청소기 판매업자와 유람선 오락 프로그램의 사회자 등으로 일하던 그는 건설업에 손을 대며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다. 당시 밀라노 시장이던 사회주의자 베티노 크락시가 그를 돕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크락시 시장의 도움으로 작은 지방 민영방송사를 입수한 그는 수년 만에 이를 전국적 규모의 3개 대형 TV방송사로 확장시켰고, 민영방송을 장악한 후 이탈리아 최대 출판사와 신문사, 잡지사 그리고 축구팀 AC-밀란까지도 인수했다. 총자산 140억달러의 이탈리아 최대갑부가 된 것.

伊 베를루스코니의 승리 … 속쓰린 EU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지식인에게서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공세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실제 그는 뇌물증여와 결산조작, 위증과 세금포탈 등의 혐의로 여러 번 기소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피아와의 결탁, 반(反)마피아 판사인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의 살해와도 관련이 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법학을 전공한 그의 이력이 도움이 된 것일까. 그는 지금까지 3번의 실형선고를 받았으나 항소과정을 통해 무죄나 시효 소멸, 면죄 등으로 법망을 빠져나갔고, 현재 기소중인 사건들도 그렇게 처리될 조짐이 역력하다.



총리 당선이 확실해진 5월14일 저녁, 그는 밀라노 근교의 자택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탈리아 국민을 위한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며 “이제 이탈리아는 말보다 훌륭하게 실천하는 총리를 가지게 되었다”고 자찬했다. 덧붙여 △150만 일자리의 창출 △연금 지불액의 상승 △세금인하 등 각종 공약사항의 실천과 우익연합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유럽연합 회원국을 의식한 듯 EU와의 결속도 새삼 다짐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추파’에도 EU 회원국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만이 축하 전문을 보냈을 뿐 다른 나라들은 “좀더 관망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 유럽연합 상임 의장국 스웨덴 총리인 예란 페르손은 브뤼셀의 EU 의회에서 “자신으로서는 이탈리아 총선 결과에 대해 자발적으로 반대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지만 다른 회원국이 제재조치를 원할 경우, 공정한 절차를 거쳐 제재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르손 총리의 이같은 신중함은 지난해의 쓰라린 실패에 기인한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초 극우인종차별주의자인 하이더가 오스트리아 정부를 장악하고 연정을 구성하자 ‘외교관계 거부’라는 제재 조치를 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별 효력 없이 막을 내렸을 뿐 아니라, EU 내부에서도 성급했다는 비판까지 감수해야 했다.

사실 베를루스코니와 우익연합에 대한 비판은 국제사회보다는 이탈리아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더 격렬하다. 이탈리아의 저명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베를루스코니가 승리하면 기업의 총수가 ‘정치의 총수’가 되어 모든 권력을 다 얻게게 되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커다란 위험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반베를루스코니 전선’의 형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탈리아 3대 민영 TV방송사를 소유한(시청자의 42%점유) 베를루스코니는 이제 정권의 총수가 됨으로써 이탈리아 국영방송(RAI)까지도 장악, 모든 미디어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의 권력 분할을 정부-의회-사법부-경제계와 미디어 간 상호견제로 본다면, 베를루스코니는 이미 4개 분야의 권력을 독점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정부의 총리로 공권력을 장악하고, 자유연합의 지도자로 법률제정을 조정할 것이며, 대기업가로 경제분야를 지배하고, 미디어의 황제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된 것. 이런 강력한 권력이 ‘성인 군자’에게 주어졌더라도 위험 천만인데, 성자가 아니며 더 더욱 신사도 아닌 베를루스코니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내민 꼴이라는 게 에코의 주장이다.

특히 그의 당선은 이탈리아 법원과 검찰에게는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각종 혐의로 수시로 법원을 드나들 수 밖에 없던 베를루스코니는 판-검사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공공연히 “이 모든 것은 나의 성공을 시기하는 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중상모략”이며, “법원의 ‘붉은 법복’들은 좌익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으므로 법조계를 뜯어고치겠다”고 협박해 왔던 것. 그가 자신의 협박대로 사법계마저 장악하면 모든 국가권력은 실제로 그의 손안에 있게 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국민들은 이런 점을 모르고 그를 선택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데에 이번 선거 결과의 모순이 있다. 베를루스코니의 총선 승리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탈리아 사람들의 유별난 사회심리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일반 시민들 사이에 형성된 ‘돈의 냄새와 성공은 섹시하고 매력적’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그것이다. 자신을 무에서 최고로까지 눈부시게 경영할 수 있는 사람은 나라도 잘 운영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이 결국 일을 저지른 것. 여기에 이탈리아 시민의 또 다른 특성인 시민정신의 결핍과 국가체제에 대한 적대감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실제로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법이나 규정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는 인물에게 경이감을 느낀다. 상당수의 베를루스코니 추종자들은 그가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을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라, 영리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에게 그는 ‘반국가’의 상징 그 자체였다. 결국 이탈리아 시민들은 이런 반국가의 상징을 국가의 수반으로 선택함으로써 자기모순과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한편 좌익연합측에서는 총선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못났기 때문이라는 자책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좌익연합이 이탈리아를 현대적 민주국가로 변화시키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어기며 집권 5년 동안 너무나 초라한 성과를 보여줬다는 것.

하지만 유럽연합과 이탈리아 지식인들이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베를루스코니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그가 과연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군소정당의 난립을 막고, 사법개혁을 통해 부패관리와 살인자 및 마피아들을 일벌백계할 수 있겠느냐는 것. 또 언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그가 사주인 언론개혁에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상실을 의미하는 긴 시간이 눈앞에 놓여 있다.”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저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하 새 정부에 개혁을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단언한다. 그들은 이제 희망은 지난 94년처럼 ‘자유의 집’ 연정이 내부 갈등으로 실각하거나, 다음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의 가능성뿐이라고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다.

‘개혁 실패는 곧 더욱 큰 ‘반동’으로 이어진다’는 역사의 경험은 과연 이탈리아를 피해 갈 수 있을 것인가. 유럽연합과 이탈리아 국민들의 온 신경이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되고 있다.



주간동아 2001.05.31 286호 (p54~55)

< 강여규/ 하이델베르크 통신원 kang@debite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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