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6

2001.05.31

부시의 오만…‘왕따’ 당하는 MD 전략

부시 ‘전략적 경쟁자’ 중국을 잠재 주적으로 간주…힘의 논리로 외교적 강-온 양면 포섭정책 구사할 듯

  • < 김 당 기자 dangk@donga.com >

    입력2005-01-31 13: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부시의 오만…‘왕따’ 당하는 MD 전략
    이른바 미사일방어(MD) 구상으로 일단을 드러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세계 전략과 국방 개혁의 전모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5월1일(현지 시간) 국방대학에서 MD 추진계획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5월25일 해군사관학교에서의 ‘21세기 신군사전략‘ 특별 연설을 통해 취임 이후 수립해 온 세계 전략과 국방 개혁의 전모를 밝힌다.

    부시의 전략 개념은 외교 면에서 전통적인 고립주의 노선을 유지하되 군사 면에서는 유일 강대국이라는 현실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탈냉전 시대의 세계 유일 강대국이라는 입장에 기초해 종래의 주적 러시아를 ‘중립화‘시키는 대신 중국을 잠재 주적으로 삼고 우주를 전략 개념에 포함해 우주 패권을 추구하는 부시의 21세기 신군사전략의 핵심은 MD와 혁명적인 전력 개편이다.

    우선 주적 개념부터 달라졌다. 탈냉전의 지도에서 소련이 사라진 후 미국의 주적은 중국이라는 가상적으로 바뀌었다. 중국과의 관계를 지칭하는 외교적 수사는 이미 클린턴 시절의 ‘전략적 동반자‘에서 ‘전략적 경쟁자‘로 바뀌었다. 따라서 미국의 세계전략 골자는 △러시아의 중립화 △인도의 동맹화 △동맹국 일본의 위상 격상 이라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반월(半月)형 포위전략‘이라는 세력 배?납嶽막?나타나고 있다. 또한 MD 체제 구축이라는 전 지구적 수단으로 중국의 군사 대국화와 아시아 패권의 싹을 자르고 이른바 불량국가의 ‘예측 불가능한 자살 공격‘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가 주창한 MD 체제는 기존의 NMD(국가미사일방어)체제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으로 미사일방어 대상을 미국에서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은 물론 우방국들?沮?확대하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부시의 MD는 우주에서뿐만 아니라 육-해-공에서의 다양한 대응 탄도미사일(패트리어트, ELINT, TADD 미사일 등) 발사로 적국의 탄도미사일을 격퇴한다는 개념이다.

    미사일방어 대상, 해외 미군과 우방국까지 확대



    이와 같은 우주 패권에 기초한 세계전략의 뿌리는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하며 악의 제국과 대항하기 위한 전략방위구상(SDI:Strategic Defence Initiative)을 내놓는다. 그러나 우주에서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겠다는 이 ‘스타 워즈‘(별들의 전쟁) 계획은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구상에 그??만다. 그 뒤를 이은 것이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제한적 탄도미사일 방위전략(GPALS)이다. 그러나 ‘악마의 화신‘이라는 이라크 같은 깡패국가의 위협을 겨냥한 이 전략은 정권이 클린턴 민주당 정부에 넘어가면서 대폭 축소된다.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추진한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또한 북한 이라크 등 ‘불량국가‘의 미사일 위협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당시 NMD는 클린턴 행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럼스펠드 의원의 주도로 NMD를 밀어붙인, 공화당이 지배한 의회와의 타협 산물이었다. 즉 지난 98년 당시 미 의회의 ‘국가방위를 위한 우주 관련 및 조직 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현재의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한 미사일 위협론‘을 근거로 끈질기게 NMD 예산 반영을 요구했고, 클린턴 행정부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페리 프로세스‘와 이것을 맞교환한 것이다. MD 추진의 주요한 논리적 축의 하나인 ‘북한 위협론‘의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한 NMD 또한 수차례의 모의실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차기 대통령??사업지속 결정 여부를 이관하고, 8년 만에 정권을 잡은 부시 공화당 정부는 기존의 NMD를 MD로 전환해 추진 계획을 공식화한다. 이와 같은 약사(略史)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공화당 정부 때마다 미사일방어 계획 추진을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이는 공화당 정부가 레이건 시절부터 이른바 ‘건 벨트‘(gun belt, 방산업체들이 밀집한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태평양 연안) 지역의 강력한 후원을 받아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부시 행정부가 NMD에서 N(National)자를 뺀 의도는 동맹국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즉 MD는 미국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본 이스라엘 NATO 등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전역미사일방어(TMD) 체제를 미국 본토 방어용인 NMD와 통합해 전 지구적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자고 동맹국들을 포섭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시의 군사전략은 해외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심각한 반대여론에 부딪??있다. 더구나 의회와 언론은 물론 국방전략 수립과정에서 소외된 군 수뇌부 일부에서마저 비판이 거세 추진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의회의 반대와 국내 여론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MD 추진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민주-공화당이 동수인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는 이미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가장 쓸모 없는 것 중 하나”라고 혹평한 바 있다. 또 최근 ‘USA 투데이‘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60% 이상이 MD를 반대하고 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과연 누가 미쳤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뉴욕타임스 5월15일자)에서 부시와 럼스펠드의 MD 추진 논리를 한마디로 ‘미친 짓‘이라고 공박했다.

    ”불량국가 지도자들이 완전히 미쳐 기존의 전쟁 억지력으로 억제가 안 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생각이다. 여러분은 김정일이나 사담 후세인이 자살 준비가 되어 있는 광신자처럼 행동해야만 권력에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허리띠도 두르고 멜빵도 하면 좋은 것처럼, 여러 겹의 방어망을 구축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미 멜빵을 한 상태에서 확실히 작동할지도 모르는 허리띠를 위해 1000억달러를 쓰는 것은 미친 짓이다. 특히 그 허리띠로 바지가 벗겨질 확률이 높아진다면 더 더욱 그러하다.”

    기술적인 문제점도 MD가 넘어야 할 과제다. 레이건 대통령의 ‘스타 워즈‘ 계획 때부터 제기된 기술상의 문제는 여전히 MD 구축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현실적으로 유도탄의 식별능력에 기술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미과학자협회(FAS)는 이런 기술상의 문제점 등을 들어 그동안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펼쳤다. 부시의 MD 추진 공식 선언을 계기로 이런 기술적 반대 논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물론 반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화당 의원들은 대체로 MD 추진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지세력은 2400억달러(약 316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할 MD 구축사업에서 지구촌 차원의 막대한 군사적 잉여가치를 챙길 장밋빛 전망으로 희색이 만연한 미국 내 군산복합체들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여론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러한 천문학적 비용을 조달하는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한 NMD에서 N자를 뺀 것을 근거로 관련국들에 비용 분담을 요청할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부시의 MD 구상은 이미 해외에서 거센 역풍에 직면하고 있다. 부시의 MD 구상 발표 이후 부시의 특사들은 지난 5월8∼18일 전 세계를 돌며 ‘신제품 세일스 설명회‘를 가진 바 있다. 물론 세일스 품목은 MD라는 ‘해묵은 신제품‘이다. 그러나 기존의 NMD에서 N자를 떼고 새롭게 포장한 이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마디로 부시의 MD 세일스 제품설명회는 흥행에 실패했다.

    사실 부시의 특사 파견은 미국 역사에서 전례 없이 광범위한 것이었다. 폴 월포비츠 국방부 부장관 팀은 벨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러시아 등지에서,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과 제임스 켈리 동아-태 차관보는 한국 일본 인도 호주 싱가포르 베트남 등지에서 각각 부시의 MD 구상을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영국 의회는 그 기간 ‘MD 반대 권고안‘을 제출했으며, 역시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일본조차도 고작 ‘이해한다‘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 미-중 간 갈등 속에서 핵무기 개발의 잇속을 챙기는 인도에서 더 따뜻한 환영을 받은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앞당기는 계기로 삼아야

    중국-러시아의 반발은 MD 구축의 가장 큰 난관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라는 단일 패권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MD 구축에 강한 반발을 표명해 왔다. 현재 미국은 러시아에 강`-`온 양면책으로 동의를 구하는 중이나 부시의 특사 방문 후 러시아의 공식 반응은 ”우리?都?해답보다 의문이 더 많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추진중인 MD의 방어능력을 초과하는 수천기의 ICBM을 보유한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편이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양측이 모두 치명상을 입는 상호확증파괴(MAD)가 가능한 규모의 ICBM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MD의 영향을 받지 않아 미국과 적절히 타협할 경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반해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MD 체제 구축에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다. 현재 ICBM을 약 20기쯤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 미국이 MD를 구축할 경우 자국이 보유한 ICBM의 위력을 상실하는 손실을 입는다. 반면 MD에 대응하려면 엄청난 군비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이는 시장경제 도입 이후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으로서는 국가 발전전략 자체를 수정해야 하는 큰 부담이다. 또 대만이 MD 우산 속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중국‘ 정책을 위협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러시아 등과 함께 공동전선을 펼 가능성이 크고 이런 신북방 3각동맹을 형성할 경우 현재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한국으로서도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이미 지난 3월23일 당시 이정빈 외무장관이 한국언론재단 초청 포럼에서 밝힌 한-미·한-러 정상회담 ‘비화‘에서 드러난다. 이장관은 당시 ”한-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NMD 반대 표명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또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교섭과정에서 우리??NMD 추진에 찬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가 동의하지 않자 백악관은 브리핑에서 ‘미국은 NMD 지지를 요청한 일이 없으며, 한국도 견해를 밝힌 바 없다‘고 밝혔다”고 비화를 밝혔다. 이는 ‘경솔한 실언‘이라기보다는 한-러 정상회담 이후 ABM 및 NMD 문제에 대한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한 언론에 우리의 외교 현실을 직시하게 하려는 이장관의 퇴임 전 ‘의도적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내외 반대여론이 존재함에도 부시 행정부는 힘의 논리로 외교적 강-온 양면정책을 구사하며 유럽, 러시아 등의 소극적 동의를 이끌어 낼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부시의 임기가 2004년임을 감안하면 이 시기까지 최대한 빨리 계획을 추진한다 해도 최소한의 시스템 배치만 가능할 전망이다. 따라서 ”MD 구축의 결정적 고비는 다음 대선에서 부시의 재선 여부에 달려 있다”(세종연구소 백학순 연구위원)는 것이다. 공화당이 다시 집권하면 탄력을 받겠지만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계획이 상당 부분 축소되거나 초기단계에서 백지화하는 ‘아버지 부시-클린턴 정권‘의 양태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속도 조절론‘을 내세우는 일반론과 달리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남북관계가 영향을 덜 받으려면 오히려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더 내어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앞당겨야 한다”(한국 외국어대 이장희 교수)는 견해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