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6

2001.05.31

청와대 움직인 ‘풍수의 힘’

군 경비시설 재배치 공사, 일부 정자도 헐어 … 풍수연구가 최창조씨에 자문도

  •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

    입력2005-01-31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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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움직인 ‘풍수의 힘’
    청와대는 예로부터 풍수지리상으로 길지 중의 길지에 속한다고 알려져 왔다. 북으로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좌청룡인 낙산, 우백호인 인왕산, 안산인 남산이 있으며, 명당수인 청계천이 북북서에서 통과해 동쪽으로 흘러가고 객수인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가는 매우 길한 배산임수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청와대 역사 및 연혁’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이다. 실제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절인 지난 90년 2월 청와대 내에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던 중 공사현장 바로 뒷산 암벽에서 발견된 300~400년 전의 표석에 ‘천하제일복지’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이같은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우리 나라 금석학의 대가 임창순옹을 초빙, “약 300~400년 전 조선 중기에 쓰인 것 같다”는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선인들이 이미 천하 명당이라고 평가한 곳이었는데, 몇 백 년을 지나 노태우 대통령대에 이르러 땅이 임자를 만났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대목이었다.

    청와대 움직인 ‘풍수의 힘’
    그럼에도 ‘천하 명당’의 주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중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퇴임 후 감옥에 갔다. 그런 불행은 비단 노대통령뿐만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감옥살이를 했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같은 ‘험악한 꼴’은 면했지만 무능 때문에 IMF라는 국난을 초래했다. 이처럼 역대 청와대 주인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풍수 연구가들은 풍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청와대 터가 사람이 살 곳이 아니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풍수 연구가들 가운데 이런 주장을 가장 열렬히 펼치는 이는 최창조씨다. 지난 91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직을 사임하고 풍수 연구에 몰두한 최씨는 자신의 저서 ‘한국의 풍수지리’에서 청와대 터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그곳(청와대 터)은 풍수적 논리에 의한다면 원래가 살 터, 주처(住處)가 아니다. 그저 잠시 머물 수 있는 곳, 유처(留處)에 지나지 않는다. 청와대 터의 풍수적 상징성은 그곳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는 점이다.

    그 터에 사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풍수적 소응은 신적 권위의 부여다. 사람이 신적 권위를 부여받았으니 나쁠 것도 없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풍수의 논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풍수에서는 결코 인사(人事)가 천도(天道)를 넘보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천지의 조화로움을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이런 주장을 의식한 탓일까. 청와대는 1999~2000년에 걸쳐 청와대 경내 공사를 하며 사전에 풍수 연구가의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측 자문에 응한 풍수 연구가는 바로 최창조씨. 최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두 번에 걸쳐 풍수적 관점에서 조언을 해주었고, 이에 따라 공사도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 올 초 완료한 공사는 청와대 내에 남은 군 경비시설 일부의 재배치 공사. 단순히 북악산 경관을 해치는 시설물을 없애는 차원의 공사였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군 시설공사를 하면서 최씨의 자문을 ‘은밀히’ 받았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청와대 관계자들이 풍수적인 관점을 고려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최씨의 자문 사실을 쉬쉬하는 것은 세간의 구구한 억측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군 경비시설 재배치공사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지지도가 바닥권을 헤매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풍수적인 힘을 빌려 인기를 만회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최씨가 청와대 경호실측 초빙을 받은 것은 지난해 5월 무렵. 당시 경호실 관계자들은 최씨에게 몇 군데 시설을 보여주며 “이를 옮기려는데 문제가 없겠는가”라고 물었다 한다. 최씨는 이와 관련, “당시 청와대 관계자에게 ‘군 시설물이 경호상 목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면 옮기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청와대 터는 풍수상 명당의 주산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사람이 절대 훼손해서는 안 되는 곳인데, 군사 시설물이 청와대 기를 더 막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움직인 ‘풍수의 힘’
    최씨는 이에 앞서 지난 99년 7월 초에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실무자들의 자문에 응한 적이 있다. 당시 청와대는 본관과 구본관 사이 둔덕 위에 있는 정자를 헐어낼지의 여부에 대해 자문을 구했는데, 최씨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풍수적으로 봤을 때 헐어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청와대는 이후 최씨의 자문에 따라 이 정자를 없앤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에 따르면 이 정자는 일본 식민지배 시절 지은 것으로 풍수에서 중시하는 ‘목’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 최씨는 “이는 일제 식민지배의 한 방식”이라며 “우리 민족의 기상을 완전히 꺾기 위해 풍수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이 정자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풍수 연구가로 두 번씩이나 청와대 경내를 돌아볼 수 있는 행운을 얻은 최씨는 “평소에도 청와대 터가 좋지 않아 옮겨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실제 살펴본 결과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터가 좋지 않았다”며 “99년 방문 당시 기회가 닿으면 청와대를 옮기는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고 청와대 실무자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평소 청와대를 경기도 성남시 세종연구소(구일해재단)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풍수 연구가들이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애초부터 청와대의 터잡기가 나쁜 의도에서 비롯하였고, 실제 터도 좋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차원에서 경복궁 후원에 총독 관저를 지었는데, 풍수 연구가들은 “기를 모아 명당(경복궁)에 공급하는 수문 구실을 하는 현 청와대 터에 대형 건물을 세움으로써 서울의 목을 조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해석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설명이 보인다. “당시 총독관저 자리 물색에 내몰린 조선의 풍수사들은 고의적으로 용맥(龍脈)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자리를 잡아주었다고 한다. 일제의 만행을 도저히 그대로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조선 총독을 지낸 사람들뿐 아니라 그 후 이곳에서 생활한 대통령까지 불행한 말년을 맞았다고 풍수지리에 밝은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풍수 연구가의 자문까지 받은 청와대의 공사는 과연 어느 정도 효험이 있을까.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는 시점에서 이를 평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또한 김대통령이 퇴임 후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는다 해도 그것이 청와대의 공사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풍수 연구가들은 풍수가 진정 중시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한다. 땅이 모든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풍수 결정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지금과 같은 신적 권위의 땅을 자신의 기력으로 누르고 보다 낮은 곳으로 임해 세상을 살피는 초심(初心)의 자세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청와대가 구중궁궐(경복궁)보다 더 뒤쪽에 있어 민심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지리적 한계를 지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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