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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 의원 ‘원외’ 활동이 바빠서?

18차례 재판 중 12번 불출석… 국회 결석률 높은 상위 25%에 속해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정인봉 의원 ‘원외’ 활동이 바빠서?

정인봉 의원 ‘원외’ 활동이 바빠서?
지난해 총선 때 카메라 기자들에게 향응을 베푼 혐의로 기소된 한나라당 정인봉 의원(서울 종로구)은 5월22일 현재 18차례 재판 가운데 무려 12차례나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체포동의요구서를 내는가 하면 증인 연락처를 114에 문의하기도 했다. 정의원은 ‘성실하게 재판에 출석하겠다’는 확약서를 낸 뒤에도 재판에 나가지 않았다.

현역의원 관련 선거사범 재판 중 피의자의 상습적 불출석으로 지연되는 재판이 14건에 이른다. 그러나 정의원은 판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다른 의원과 구별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법권의 엄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법치의 권위를 준수해야 할 사람이 거꾸로 가장 많은 불출석 횟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

정의원은 “의정활동이 바빠 재판에 출석하지 못했다”는 해명을 내놓은 뒤 그에게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입을 닫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재판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진짜 의정활동 때문에 그렇게 바쁜 것일까.

정의원은 지난 5월4일, 5월11일 재판에 각각 ‘한나라당의 정치보복금지법 토론회 참석’ ‘한나라당 인권위원회 회의 참석’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5월4일 정의원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40대 의원 모임’에 참석했다. 이날 모임 소속의원 18명은 쌍안경을 선물받았는데, 쌍안경에는 박근혜 정인봉 의원의 이름과 함께 ‘멀리 보고 큰 정치를 하자’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정의원은 현재 상가임차 영세상인 관련 정책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강삼재 의원 재판과 총풍사건 재판 변호 준비, 한나라당 내 대우차대책특위-인권위원회 활동도 그의 주요한 5월 일정이다. 노인복지혜택을 늘리기 위한 법안연구 역시 그가 역점을 두는 부분이라고 한다.

정인봉 의원 ‘원외’ 활동이 바빠서?
정의원은 일주일에 4~5회는 상갓집, 노인잔치 등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다. 서울 모 대학원 특수교육과정과 한국방송통신대학 불어불문학과를 동시에 수학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5월18일 조찬모임 등 여러 개인 친목모임에도 자주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원의 측근 A씨는 “대학에 내는 리포트 하나도 정성들여 쓴다. 그는 매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어 하루에 잠을 2시간밖에 안 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의원의 5월 스케줄은 거의 ‘원외’에 집중되어 있다. 요즘은 국회 법사위가 열리지 않기 때문에 그가 속한 법사위원들은 한가한 때를 보내고 있다. 중앙당에선 외유를 자제해 달라고 의원들에게 개별 통보할 정도다.



정의원이 재판을 계속 기피해 온 지난 1년여 동안 그의 국회 출석률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6월5일 16대 국회 개원일부터 2001년 3월31일까지 총 101회 국회 회의 중 정의원은 13번을 결석해 12.87%의 결석률을 보였다. 이는 국회의원 평균 결석률 9%보다 3.87% 높은 것이다. 정의원은 국회의원 271명 중 결석을 많이 한 상위 25%에 들었다(65위).

특히 정의원은 56차례 상임위 회의 가운데 9차례를 참석하지 않아 신병치료를 받는 이원성 의원을 빼면 16명 법사위원 중 네 번째로 결석을 많이 했다. 법사위 소속 송영길-조순형-최병국-최연희 의원은 100% 출석률을 보였다.

‘국회공보’를 토대로 이번 조사를 실시한 경실련 시민입법국 김미현 간사는 “유권자는 국민 의견을 국회에서 대변하라고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국회 회의 참석은 국회의원이 모든 일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의원측 항변이 없을 리 없다. 정의원 측근 A씨는 “재판 불출석도 국회의원의 정치적 행위 중 하나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정의원의 경우 먼저 죄질이 다른 선거사범처럼 나쁘지 않다. 평소 알고 지낸 기자들에게 술 한 잔 사준 것이 전부다. 정의원은 총풍사건 변호를 맡으며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재판정에서 상대한 담당 검찰부서가 정의원 기소사건을 맡게 되었다.” 선거사범에 대한 검찰의 처리방식이 정의원 등 야당 의원들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다는 게 정의원측이 밝히는 재판 불출석 이유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무작정 끌려갈 수는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A씨는 “재판부의 중립성까지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종로구에서 ‘권토중래’를 노리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민주당 종로지구당 위원장)측은 자신들이 바라본 종로구 민심을 이렇게 전했다. “정인봉 의원 지지자들 중엔 출석을 말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법치국가에서 재판 불출석은 정당한 정치행위가 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구민의 생각이다”(차정인 사무국장). 지난해 총선 때 종로구에서 입후보한 방세현 시사정책연구소장은 “국민은 자신의 대표자가 민의를 대변할 법적 자격이 있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정의원 경우’에서는 이견이 만만치 않다. 의혹이 많던 서상목 전 의원의 ‘세풍사건’과 달리 정의원 사건은 사안이 간단하고 사실관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정의원을 위해 방탄국회를 여는 것은 ‘정치적 모험’이라는 지적도 있다. TK 출신 의원의 한 측근은 “지난 15대 때 우리 당의 한 의원은 선거사범 재판에 정정당당하게 응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의원회관을 떠나며 그가 돌린 편지를 보고 모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며 정의원의 처신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정의원은 검찰에 의해 기소된 피의자 신분이기 때문에 서울지검 국감에 불참했다. 같은 이유로 정의원은 본회의 발언 등 국회의원으로서의 국정 감시, 민의대변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당에서도 당직을 맡을 수 없는 처지다. 국회의원이 ‘피의자’ 꼬리표를 달고 국정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의원 개인뿐 아니라 유권자에게도 불이익을 주는 일로 드러나고 있다. 기자는 정의원과의 인터뷰를 여러 차례에 걸쳐 요청했지만 거부되었다. 향후 재판 출석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으며 언론 접촉은 피하겠다는 것이 정의원의 뜻이라 한다.

재판부는 정의원에게 5월25일 재판에 출석하라고 요구해 놓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의하면 정의원의 그날 스케줄은 비어 있는 상태다.





주간동아 2001.05.31 286호 (p16~17)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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