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6

2001.05.31

黨權-大權 분리론 왜 꺼냈던고…

동교동계 구파가 나서 레임덕 부추긴 꼴… 총재직 이양 논란 앞당긴 “결정적 패착”

  •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

    입력2005-01-31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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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黨權-大權 분리론 왜 꺼냈던고…
    김대중 대통령의 직접적인 수차례 경고와 청와대의 제동이 있음에도 여권 내 차기 구도에 관한 발언들이 잇달고 있다. 심지어 특정 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공개적인 발언까지 나왔다.

    민주당 이용삼 의원은 지난 5월17일 기자들과 만나 “내년 1월 전당대회를 개최해 이인제 최고위원을 후보로 선출해야 한다”며 “후보가 아니라면 당 대표라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유철 의원도 같은 날 “당에 대한 민심 악화가 회생불능 상태에 빠지기 전에 이최고위원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며 ‘단계적 가시화론’을 제안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이최고위원이 당 대표를 맡고, 이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뒤 당권을 제3자에게 넘겨야 한다는 것.

    이의원과 원의원은 이인제 위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최고위원은 “내 생각이 아니며 지금 그런 것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고 일축했지만, 의원들의 단순한 말 실수로 치부하기에는 조직적인 냄새가 너무 짙다. 이는 김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치고 빠지기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다시 말해 김대통령 중심의 원심력이 점차 느슨해진다는 사실의 반증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

    그러나 김대통령의 통제력이 이완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동교동계, 그것도 김대통령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권노갑 전 최고위원으로 인해 벌어졌다. 권노갑 전 위원의 ‘2단계 전당대회론’과 ‘당권-대권 분리론’이 바로 사건의 발단이다.

    黨權-大權 분리론 왜 꺼냈던고…
    권 전 위원은 지난 5월1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당헌대로 내년 1월 전당대회에서 후보 경선을 관리할 대표나 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새로 뽑고, 7~8월께 여타 인물 중에서 대선 후보를 결정할 전당대회를 열자”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사실 이런 논지는 권 전 위원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 구파 인물들 사이에서 많이 논의된 것. 그러나 권 전 위원이 이를 직접적으로 공식화하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혹시 김심(金心)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 것. 게다가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도 지난 5월14일 “당권-대권 분리론은 당내 의견 수렴 결과, 상당한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권 전 위원이 좋은 대안 중 한 가지를 제시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권 전 위원 발언을 지지하고 나서자 김대통령이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기로 작심한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사안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권 전 위원과 남궁 수석의 발언은 “결정적인 패착”으로 보는 것이 당내의 일반적인 평가다. 권 전 위원은 당 외곽의 사인(私人)이라는 점에서, 남궁 수석은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보좌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결코 공식화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

    왜 그런가. 당권-대권 분리론은 필연적으로 민주당 총재직 이양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권-대권 분리론을 거론하는 사실 자체가 ‘김대통령이 언제 당 총재직을 내놓을 것이냐’ 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또한 총재직 이양 문제는 곧바로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비화할 소지가 충분하다. 권 전 위원 발언 직후 당내에서 김대통령의 총재직 이양 시기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따라서 권 전 위원과 남궁 수석의 발언은 오히려 동교동계가 나서 김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추기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 것.

    동교동계 마지막 세대로 신파(新派)에 속하는 장성민 의원이 지난 5월14일 “보이지 않는 실세가 당론을 수렴청정하는 듯한 태도는 당을 또다시 특정 세력의 사당화(私黨化)하는 반개혁적 악폐”라고 신랄하게 공격한 것도 바로 당권-대권 분리론이 내포한 사안의 심각성을 알고 있기 때문. 김대통령의 레임덕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동교동계가 어처구니없게도 이를 조장하는 쪽으로 나가는 데 대한 적극적인 차단책으로 권 전 위원을 비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권 전 위원과 남궁 수석은 당권-대권 분리론이 이렇듯 총재직 이양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는 위험성을 모르고 있었을까.

    당내 정통한 한 소식통은 “남궁 수석이 ‘죽을 죄’라는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발언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같은 사실은 김대통령이 지난 5월17일 김중권 대표에게 당무보고를 받으며 “당내 차기 논의를 자제하라”고 거듭 지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김대통령은 권 전 위원의 발언에 대해서도 ‘부적절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동교동계 구파는 김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유지라는 ‘충정’에서 이를 거론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는 내부의 허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권 내부에서는 권 전 위원을 수장으로 하는 동교동계 구파가 과연 ‘임기 말 권력관리 프로그램’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하는 시각도 생긴 듯하다. 천정배 의원이 지난 5월18일 목포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 초청 특강에서 “비공식라인의 힘이 너무 강해 공식기구를 무력화하지 않도록 하는 획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비록 특정 인사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라인’은 동교동계 구파를 가리킨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동교동계 신파의 한 핵심인사는 “차기 구도와 관련해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김대통령 또한 지금 시점에서 어떤 구체적인 가닥도 잡아놓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인사들이 마치 동교동계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변한 듯 권력관리 프로그램을 내놓고, 그것이 대통령의 뜻인 양 분위기를 띄우는 것을 보면 그들의 정치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권력 관리 프로그램 정치력 의심”

    2단계 전대론이 현재 민주당의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의 거취문제와도 관련한다. 동교동계 구파가 1월 전당대회를 통해 한실장을 당 대표로 추대하려 한다는 얘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 이는 곧 김중권 대표를 경질시키고 싶어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다. 김대표가 16일 서울시지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나를 흔드는 사람, 견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맡은 임무를 다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이같은 기류 때문인 듯하다. 김대표는 5월25일 중국 방문길에 올라 장쩌민 주석을 만난다. 장쩌민 주석을 만나는 자리에서 김대통령의 친서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표 진영은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장쩌민을 만나는 최초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에 매우 고무되어 있다. 아무래도 김대통령의 신임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금 김대통령은 누가 더 효율적인 권력관리 프로그램을 집행할 수 있는지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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