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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연해주 큰손 ‘고려인 3인방’

마피아 보스 텐 샤샤, 양 안톤, 박 발렌친… 경제권 완전 장악 ‘막강 파워’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베일 벗은 연해주 큰손 ‘고려인 3인방’

베일 벗은 연해주 큰손 ‘고려인 3인방’
“텐샤샤(51)의 옆에는 언제나 보디가드 3, 4명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 이들은 군복에 베레를 착용하고 있으며 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텐 샤샤를 ‘장군’이라고 불렀다.”

국회 소속 이종훈 연구원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하는 한 고려인 마피아 보스에 대해 묘사한 말이다. 이 연구원은 지난 94년부터 고려인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 매년 연해주를 방문했다. 그는 서울에선 몇 안 되는 ‘연해주통’으로 통한다. 그곳을 방문하면서 그가 흥미를 갖게 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고려인 마피아의 존재였다.

국내 언론에 알려진 대로 연해주의 고려인들 대부분은 집단 정착촌에 거주하며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비교적 일찍 이주해온 부류 중 일부는 상류사회에 편입되면서 마피아조직을 결성하게 됐다.

이연구원은 그것은 역사적 필연성의 한 단면일 수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후발 소수 이주민의 입장에선 ‘정상적 방법’으론 사회지도계층으로 올라서기가 힘들다. 더욱이 연해주는 큰 사업을 하려면 어떤 식이든 ‘마피아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사회다. 일단의 고려인들은 놀라운 생존능력을 보이며 그런 환경에 스스로를 적응해간 것이다.”

이연구원은 연해주 주요 도시의 고려인 마피아`-`고려인 사회단체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접촉한 결과 우수리스크시의 텐 샤샤, 블라디보스토크`-`나홋카시의 양 안톤, 아르촘지방의 박 발렌친을 고려인 마피아 보스 3인방으로 꼽았다. 이 연구원은 대다수 고려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소개했다.



베일 벗은 연해주 큰손 ‘고려인 3인방’
텐 샤샤는 우수리스크에서 가장 큰 유통업체인 ‘중국인시장’(키타이바자)을 소유한 인물로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이다. 이 도시에선 그가 손을 대지 않는 사업이 없고, 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우수리스크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대부분은 그가 경영하는 일제 승용차 시장에서 팔린 것들이다. 우수리스크에 거주하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연해주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승력씨는 “우수리스크에서 힘으로 텐을 이길 수 있는 세력은 없다. 텐은 총과 정치, 비즈니스를 결합한 이 지역 마피아의 명실상부한 보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장한 수행원들을 대동하며 다니는 것을 빼곤 그는 평범한 사업가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연구원은 최근 한국의 한 케이블TV 취재진과 함께 텐 샤샤의 집을 방문했다. 텐 샤샤는 러시아군 장교 출신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어는 서툴지만 한국과의 인연은 특히 강조했다고 한다. 다음은 이연구원이 전하는 텐 샤샤의 말. “나는 한국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 90년대 초 한국의 한 사업가가 ‘서울 남대문시장을 본뜬 종합시장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래서 만든 게 중국인시장이다. 폭력단체들이 이 시장의 상인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내가 다 막아줬다. 지금은 이 지역 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텐 샤샤는 현재 한국에도 거처를 마련해 놓고 있으며 그의 딸은 서울에서 유학중이다.

텐 샤샤는 이연구원에게 자신과 함께 연해주 주요 마피아 보스 중 한 명이라며 양 안톤(52)을 소개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이른 시기에 연해주의 항구도시 나홋카로 이주해온 그는 90년대 중반 블라디보스토크의 고려인 마피아 보스가 테러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두 도시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호텔, 카지노, 나이트클럽, 목재업, 선박업, 수산물거래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H사가 운영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최고급 H호텔의 카지노가 그의 소유다. 이 카지노는 한국인 사업가나 중국 관광객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H호텔 온영수 부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큰 사업을 하는 현지인들은 거의 모두 마피아 계통이다. 이곳 한인들 사이에선 양사장도 그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사업들은 그가 지배하는 마피아조직과 여러 부문에 걸쳐 겹쳐 있어 따로따로 구분하기 힘들고 정확한 실체를 알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과 인접한 도시 아르촘은 박 발렌친(50대 초반)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다. 러시아 장교 출신으로 알려진 그는 주로 호텔, 건축사업을 하는데 현지인들 사이에선 연해주의 최고 갑부 중 한 명으로 통한다. 고려인과 러시아인으로 이뤄진 4명의 무장 경호원들이 그를 항상 수행한다. 그도 텐 샤샤처럼 자신의 딸을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에 유학보냈다. 아르촘의 한 고려인은 “박 발렌친의 무장조직은 워낙 세력이 강해, 그의 벤츠승용차가 보이기만 해도 다른 폭력조직들은 거리에서 자취를 감춘다”고 말했다.

이 도시 중국인시장의 사장 김모씨(46)는 중앙아시아의 농업대학을 졸업한 농장장 출신이다. 그는 카프카즈에서 대규모 특용작물 시설농업으로 큰돈을 번 뒤 94년 아르촘으로 이주했다. 특별히 아쉬운 것이 없는 엘리트 영농인이었지만 그는 박 발렌친의 수하로 들어가 중국인시장을 맡게 됐다. 연해주 사람들은 연해주가 아직 관료들의 부패가 심하고 범죄집단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라고 보고 있다. 김씨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증식해 나가기 위해 국가보다는 자체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사적 조직을 택한 셈이다. 이는 연해주의 자산가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고려인 마피아들은 연해주의 정치권, 공권력과 대체로 우호적 관계라고 한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생활고를 겪고 있는 아르촘의 검찰청, 경찰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시장에 화물차를 보내면 김씨는 식료품과 생필품을 가득 실어준다.

한국 등 범죄수출 징후 아직 없어
베일 벗은 연해주 큰손 ‘고려인 3인방’
대다수 고려인들은 평소 고려인 마피아 보스들의 활동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두 부류의 고려인이 전혀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97년 아르촘에선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60주년 기념 열차타기 행사가 열렸다. 당시 서울의 매스컴들이 일제히 대서특필했던 이날의 ‘호스트’는 다름아닌 박 발렌친이었다. 이 연구원은 “그는 상당한 돈을 들여 자신이 경영하는 호텔에서 이주 1세대 고려인, 한국에서 온 손님 등 250여명의 한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말했다.이연구원에 따르면 연해주에서도 점차 합법적 경제활동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마피아와 일반적인 사업가를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텐 샤샤, 양 안톤, 박 발렌친 등 3인방을 더 이상 마피아 보스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사실 이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이들은 ‘낮의 세계의 리더’가 되는 것이 더 이롭다는 것을 점차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텐 샤샤는 이연구원에게 “나는 우수리스크의 경제와 이 지역 고려인`-`조선족을 이끄는 모범적 기업가로 한국에 알려지기를 원한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연구원에 따르면 연해주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이 늘면서 고려인 마피아의 존재가 점차 알려지고 있으나 이들이 한국 등에 범죄수출을 한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고려인돕기 러시아지원센터’ 장광환 사무총장은 “고려인들은 맨몸으로 연해주로 이주해온 사회적 약자다. 그러나 절대다수는 농지개간, 교육 등 ‘합법적’ 방법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수 특정인들의 이력을 문제삼아 연해주에 거주하는 전체 고려인사회를 부정적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게 장총장의 주문이다.



주간동아 2001.02.22 272호 (p38~39)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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