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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리는 자 승리를 얻으리라

동양 농구팀 스포츠심리학 강연 듣고 11연패 마감… 박찬호도 심리치료 받고 슬럼프 탈출

마음을 다스리는 자 승리를 얻으리라

마음을 다스리는 자 승리를 얻으리라
스포츠 세계에서는 ‘기술이 비슷하면 정신력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네가지 요인, 즉 기술 전술 체력 정신력 중에서 정신력이 마지막 변수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지난 11월28일 대구실내체육관. ‘2000∼2001 애니콜 프로농구’ 대구 동양과 대전 현대의 경기가 열렸다. 동양은 개막전 이래 11연패해 선수들은 98-99시즌 기록했던 32연패의 악몽을 되새기고 있었다. 상대는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 현대. 홈경기였지만, 동양으로선 패색이 짙은 게임이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머리를 짧게 깎고 코트에 나온 동양 선수들은 호화 멤버의 현대를 맞아 접전을 펼쳤다. 동양은 전통적으로 실책이 많은 팀. 경기를 잘 운영하고도 실책 때문에 무너지곤 했다. 최명룡 감독은 이를 의식한 탓인지 “괜찮아”를 연발했고 동양은 4쿼터에서 현대의 추격을 완전히 따돌렸다. 97 대 86. 동양은 시즌 개막 24일 만에 첫승을 따냈다.

마음을 다스리는 자 승리를 얻으리라
시즌 개막부터 ‘동네북’으로 전락한 동양이 어떻게 현대를 잡을 수 있었을까. 동양 구단의 김홍국 단장은 무엇보다 팀 분위기 쇄신을 꼽았다. 단장을 교체하고 선수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준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동양 구단은 팀이 연패에 빠지자 선명대 한명우 교수로부터 스포츠심리학 특강을 받았다. 김단장은 “선수들이 스포츠심리학 강연을 듣고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스포츠심리학의 도움으로 슬럼프에서 탈출한 대표적인 선수가 ‘코리아특급’ 박찬호(LA다저스)다. 박찬호는 99시즌을 앞두고 자신만만했다. 9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우승으로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군복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났고 시즌을 앞두고 펼쳐진 시범경기에서도 불같은 강속구를 뿌려댔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박찬호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두번째 등판에서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처음으로 만루홈런을 맞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홈런공포증’은 4월26일 극에 달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메이저리그 123년 역사상 최초로 1이닝에 한 타자에게 두 방의 만루홈런을 허용한 것이다.

잘 던지다가도 홈런만 얻어맞으면 죽을 쑤는 박찬호. 보다 못한 데이빗 존슨 감독은 심리학 치료를 권했다. 이때부터 박찬호는 틈나는 대로 심리학자를 만났다. 그 결과 전반기에서 5승7패, 피안타율 1위로 부진했던 박찬호는 후반기부터 자기 페이스를 되찾았다. 구질은 전반기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공을 던지는 자세는 달라져 있었다.

박찬호처럼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는데도 심리적 중압감 때문에 고전하는 경우를 ‘스타증후군’이라고 한다. 박찬호에게는 다저스의 ‘제2 선발’이란 책임이 부담으로 작용한 셈이다. 90년대 초반 한국 프로야구의 홈런 타이틀을 3연패했던 장종훈도 이와 비슷한 후유증을 겪었다. 그는 92시즌 한국 최초로 40홈런 고지를 넘어섰다. 당시 장종훈의 나이 25세. 하지만 이후 8년간 장종훈은 한번도 홈런왕 타이틀을 따내지 못했다. 99시즌서 54홈런을 기록했던 이승엽이 올시즌 부진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스포츠심리학은 운동선수가 최고 능력을 발휘하는 조건이나 그것이 심신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1898년 노먼 트리플릿이라는 학자가 사이클 경주를 연구한 것이 스포츠심리학의 시작이었다. 한국에서는 80년대 프로스포츠가 출범하면서 이후 조금씩 소개되었는데 1989년 한국스포츠심리학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현장에 도입됐다.

스포츠심리학을 통해 고질적인 약점을 고친 경우도 있다. 여자탁구 선수 김무교가 그런 경우다. 김무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지만, 결정적인 고비에서 무너지는 약점이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소의 김병현 수석연구원은 김무교 선수를 상담하면서 이른바 ‘인지재구성기법’을 도입했다. 이것은 상담을 통해 의식을 합리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김무교 선수는 “꼭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오랜 상담을 통해 “메달을 못 따도 돼.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심리적인 안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양궁선수들이다. 그들은 고도의 정신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이미지트레이닝. 시드니올림픽 여자양궁 금메달리스트 윤미진은 잠시라도 자투리 시간이 있으면 눈을 감고 활 쏘는 장면을 상상한다. 활을 들고 사대로 나가는 순간부터 골드에 명중시키고 박수를 받을 때까지 머릿속으로 그린다. 이런 노력으로 실전에서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축구 국가대표팀도 이미지트레이닝의 효과를 절감했다. 98년 올림픽대표팀은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치욕의 1대 4 패배를 당했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일본 축구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이 악재였다.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올림픽팀은 기가 질려 패스도 제대로 못하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얼마 뒤 올림픽팀은 중국과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관중의 함성으로 치면 중국이 일본보다 한 수 위. 그러자 대표팀은 잠실에서 실전과 같은 함성을 울리게 한 뒤 연습경기를 치렀다. 한국이 중국전에서 위축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스포츠심리학은 가능성 있는 선수를 대스타로 만들 수 있고, 최고의 선수를 평범하게 묶어 놓을 수도 있다.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로 그랜드슬램 여자 단식을 18차례나 우승했던 크리스 에버트는 “기술적으로 나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나는 정신력에서 앞섰다”고 말했다. 한국 테니스 사상 최초로 US오픈 16강에 오른 이형택의 힘도 자신감에서 나왔다.



주간동아 2000.12.14 263호 (p7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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