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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일이 없네” 비운의 94학번

수능 두번 치르고 힘겹게 입학 … IMF 피해 군복무, 졸업 앞두고 최악 취업난 한숨 ‘푹푹’

“되는 일이 없네” 비운의 94학번

“되는 일이 없네” 비운의 94학번
94학번들은 “아무래도 우린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것 같다”고 푸념한다. 이 학번 남학생의 경우 2001년 2월 졸업예정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유례없는 대졸 취업난의 당사자들이다. ‘시대 탓’ ‘경기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94학번들이 그동안 걸어온 길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이들의 고교생, 대학생, 취업준비생 시기는 최근 수 년 간 불안했던 한국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94학번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교육부는 “내년부터 대학입시를 학력고사방식에서 수능시험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이름도 생소한 시험을 처음 준비해야 하는 만큼 어떤 식으로 공부해야 할지 몰라 혼란이 컸다. 고3이 된 94학번은 수능시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번 치렀다. 두 번 중 가장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두번째 수능시험이 너무 어렵게 출제돼 첫번째 시험보다 성적이 평균 20점 이상 떨어져 버린 것이다. 94학번은 자신들이 어설픈 교육개혁의 실험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시험을 본 송모씨(K대 전자공학과 94학번)는 “그 다음해부터 수능시험은 한번만 보는 것으로 자리잡았다. 다른 학번보다 곱절은 어렵게 대학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되는 일이 없네” 비운의 94학번
대학 1학년 늦가을 병무청 신체검사에 응한 K대 94학번 정모씨. 4급 판정을 받은 그는 예전 학번 같았으면 ‘18개월 방위’로 군복무를 끝내는 케이스에 해당됐다. 그러나 95년부터 방위제도가 없어지면서 정씨는 ‘4급 현역’으로 26개월을 꼬박 채웠다. 이처럼 대다수 94학번은 ‘간발의 시차’로 현역 복무를 하게 됐다. 연세대 한 학과는 내년 2월 졸업하는 94학번 전원이 ‘예비역 병장’ 출신이다. 이 학과의 이모씨는 “‘방위기회’를 놓치게 돼 아쉬워하는 친구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공평해서 잘 됐다’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94학번이 신입생 꼬리표를 달고 캠퍼스에서 활개치던 시절, 사회엔 ‘X세대’라는 유행어가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 X세대로 대접받게 됐다. 그러나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94학번들은 자신들이 ‘가짜 X세대’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연세대 사회학과 94학번 민상준씨의 복학 회고담.

“PC방이라는 게 대학 1학년 때 처음 생겼다. 그러나 그때는 인터넷 잘하는 애들이 별로 없었다. 복학을 했는데 컴퓨터, 인터넷 모르면 얘기가 안 되고 염색하고 귀 뚫은 남학생들이 지나다니고… 대학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94학번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운동권세대의 진정한 끝물’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인지 94학번들은 이후 학번들에게서 묘한 격차를 느낀다고 한다. 96년부터 전국 각 대학에서 시행된 ‘학부제’가 94학번들의 복학시기와 맞아떨어지면서 이런 심리적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다시 민씨의 얘기. “복학 후 첫 전공 수업시간. 모두 모르는 후배들뿐이었다. ‘사회학과’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문계열 10반’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우리 학과를 지칭하는 ‘소시오’ 대신 ‘열열이’라는 새로운 별칭이 나왔다. 학과 선후배, 동기간 유별나게 강했던 연대는 우리를 끝으로 크게 약화됐다. 운동가요와 집회도 이때쯤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성적’이 대신했다. 94학번까진 학사경고 받은 일들을 ‘낭만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세대다. 그러나 학부제 실시 이후 학점이 학과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면서 각 대학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서울 S대 경영학과 94학번 장모씨는 “여학생들의 선호학과인 영문학과를 가기 위해선 3.7이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94학번은 개인주의적이며 무섭게 공부하고, 영어 컴퓨터 잘하는 후배들과 경쟁해야 했다. 94학번은 이전 학번들을 대표해 대학문화의 격변을 당황스럽게 목격해야 했던 ‘마지막 아날로그 대학생’이었다.

94학번 중 실업의 아픔을 먼저 경험한 쪽은 여학생들이었다. 이들이 대학졸업을 앞둔 97년 말은 한국경제가 막 IMF관리체제로 들어가는 시점이었다. 서울 H대 94학번 박진아씨는 “그 당시 여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나도 1년 이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직장을 골라서 들어가던 선배들만 보아온 내게 그건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한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IMF 한파가 취업전선에 먼저 뛰어든 94학번 여학생들을 강하게 단련해준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여학생들이 자기계발에 나섰다. 우리 학과의 94학번 여학생 20명 모두 토익 900점 이상을 받았다. 절반 이상이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던 지난해 말까지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직장을 얻게 됐다.”

94학번 남학생들이 이제 3년 전과 똑 같은 상황을 맞고 있다. 정부가 최악의 상황으로 잡고 있는 내년 상반기 예상실업자수는 약 100만명. 94학번들이 여기에 대거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취업전문기관들에 따르면 내년 대학졸업 예정자는 18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불과 8만5000여 개의 일자리를 놓고 현재의 취업재수생 17만명과 함께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특히 인문계열 94학번들의 사정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다음은 소위 명문대 인문계열 94학번 이씨의 경험담.

“업종 불문하고 공개채용하는 모든 기업에 원서를 넣었다. 절반이 서류전형에서부터 탈락이었다. 인터넷 원서접수 때 붙은 ‘경력자-상대계열 우대’라는 단서가 아무래도 큰 작용을 한 것 같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이씨의 같은 과 친구 정모씨는 올 상반기 단 한번 입사원서를 내 곧바로 취업했다. 그러나 그런 ‘선견지명’이 흔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94학번들은 ‘때가 되면 취업하자’며 연말취업시즌을 기다리다 낭패를 보게 됐다. 이씨는 “ IMF 때보다 더하다. 동기들 대부분은 내년 상반기까지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 남는 것도 망설여진다. IMF 한파를 피해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그때보다 더 혹독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91학번 선배들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한 대학 건축공학과 대학원은 요즘 충격에 빠져 있다. 94학번 학부 졸업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할 시점인데 최근 접수를 마감한 결과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경우 2326명 정원의 석사과정에 3193명이 지원해, 1.37대 1이라는 기록적으로 낮은 경쟁률을 보였다.

연세대 사회학과 94학번들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엔 사회학자 ‘뒤르켐’의 첫 이름 두 글자를 아는 사람만 접속할 수 있다. 인문학에 대한 열정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다음 글에선 팍팍한 현실이 묻어 나온다. “요새 회사라는 데를 들어가려고 고민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자동기들은 ‘음… 드디어 너도…대견하군…그리고 불쌍하다…고생 좀 해봐라…’는 쓴웃음을 짓겠지. 나도 쓴웃음이 나온다.”



주간동아 2000.12.14 263호 (p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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