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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김선두展

'찰나와 지속' 의 기록

'찰나와 지속' 의 기록

'찰나와 지속' 의 기록
언젠가 스페인의 상공을 날면서 비행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의 모양이 마치 한 폭의 추상화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구획되고 분할된 들판의 구성이 너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어서 피카소니 후안 미로니 하는 내로라하는 추상화의 대가들이 이 땅에서 나온 것도 우연은 아니겠구나 하는 비약을 해본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탈리아의 들판도, 프랑스의 들판도 모두 달랐다. 특히 많은 산과 맞닿아 이루어져 있는 우리 땅의 들판은 미니멀리즘의 단색추상화처럼 심심한 게 아니라, 마치 우그러진 조각보의 다채로운 추상처럼 이 모양과 저 모양이 서로 물고 늘어지면서 퍼져가는 하모니가 정겹고 흥겹다.

그렇다면 이런 향토의 서정이 짙게 배어 있는 땅의 표정을 통해서 우리 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한 화가를 들라면 나는 김선두를 꼽고 싶다.

그는 땅을 일으켜 세워 우리 눈앞에 제시함으로써 전통적인 원근법을 해체시키는 부감법을 보여주고 있다. 땅의 오감도가 묘한 시선의 이동을 불러일으키며 인간이 직립보행의 존재임을 새삼 인식시켜준다. 사실 직립보행적 존재와 네발로 기는 짐승의 땅에 대한 시선과 인식은 다르다. 그림은 인간의 시선이 수직적으로 만나기 위해 벽에 세워 걸리게 되어 있다. 우리의 시각 정보는 이런 정면적 만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직립보행하는‘동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달라지리라 믿는다.

데스먼드 모리스의 동물학적 인간론 ‘털 없는 원숭이’를 보면 여성의 유방은 엉덩이가 진화되어 올라붙은 것이라는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암컷의 가장 큰 성징은 엉덩이인데, 동물들의 성행위가 대부분 후배위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란다. 땅을 보면서 걸어가던 발정기의 동물은 정면으로 마주치는 엉덩이를 보고 곧바로 생식작용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직립보행적 인식 때문에 인간의 성징을 우리의 시선과 정면으로 맞닿을 수 있는 위치로, 다시 말해서 얼굴을 보고 곧바로 성징을 확인할 수 있는 앞쪽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얘기가 딴 데로 흘렀지만 아무튼 인간에게 있어 그림은 색의 벽이며 색의 땅인 것이다.



김선두는 경제개발시대의 애환이 서린 시민들, 어릴 적 뛰놀던 남도의 고향, 그곳의 산과 들, 잊혀가는 토종 꽃과 풀을 그려왔다. 특히 근작인‘그리운 잡풀들’시리즈는 전통적인 필선과 색채가 자아내는 리듬의 조형미로 한국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민화적 요소의 구성과 잡풀들을 그린 자유로운 붓질, 남도 잡가의 한 가지인 육자배기가 들리는 듯한 잡스러움의 은근한 광채가 예스럽기도 하고 모던하기도 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의 화풍에 달력의 요일을 의미하는 부호들을 나열함으로써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상관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작품 이름 앞에 행(行)자를 붙이고, 드디어 인간과 세월의 변화가 지니는 찰나와 지속의 과정을 기록하겠다는 수행도에 들어선 것이다. 11월19일까지 아트스페이스 서울(02-720-1524).



주간동아 2000.11.16 259호 (p9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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