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9

2000.11.16

벼랑 끝 MH, 최후의 카드는?

채권단 “확실한 자구책, 감자·출자전환” 요구…계열사 지분 전량 매각 등 유동성 확보 안간힘

  • 입력2005-05-27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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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에 몰린 현대건설 대주주 정몽헌(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까. MH의 위기 탈출 작전은 무엇일까. 올해 들어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외줄타기식’ 버티기를 해왔다는 비난을 받았던 MH에게 이제 시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정부와 채권단이 최후의 카드를 뽑아들었기 때문.

    정부와 채권단은 11월6일 현대가 자구계획을 제시하면서 감자 및 출자전환 요구에 동의해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으면 현대의 자구책에 대한 신뢰가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제2금융권 등의 기존 여신 만기연장 조치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또 현대가 출자전환을 거부한 이후 부도가 날 경우 바로 법정관리에 들어가겠다는 경고도 덧붙이고 있다.

    “현대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정부와 채권단의 의지를 확인한 현대는 일단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우선 MH는 자신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전량 매각, 현대건설 유동성 지원에 투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현대건설 경영 정상화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MH의 의지라는 게 현대건설측의 설명이다.

    자금지원 요청 MK 등 친족들 냉담한 반응

    현재 MH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은 상장 계열사의 경우 현대건설 7.82%, 현대전자 1.7%, 현대상선 4.9% 등 9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현대택배, 현대정보기술 등 비상장 주식도 상당지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으로 현대건설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현대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최근 일각에서 나돌고 있는 “MH가 현대건설을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설을 가라앉히는 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포기설’은 현대건설이 11월2일 보유하고 있던 현대상선 보통주 1563만주를 주당 2430원, 총 380억원에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한 것을 계기로 나돌기 시작했다. 현대건설이 현대상선과 현대전자 등 MH 계열의 지주회사 역할을 해왔는데,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엘리베이터로 옮긴 것은 현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었던 것.

    특히 MH의 ‘사재출연’ 약발이 회의적이라는 판단도 ‘현대건설 포기설’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됐다. MH가 자기 지분을 포기한 이후에도 현대건설 회생은 여전히 채권단의 지원 여부에 달려 있는 상황에 MH가 굳이 그런 모험을 하겠느냐는 관측이었던 것.

    어쨌든 MH의 결단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는 했지만 기대한 친족들의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에 불가피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MH쪽은 당초 11월3일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등 삼촌들과 MK(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MJ(현대중공업 고문) 등 형제가 참석하는 가족 모임을 추진했으나 불발됐다. 그는 “더 이상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MK가 한때 아버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뜻을 거역하고 현대차 경영권에 집착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제는 MK와 MH의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셈.

    MH가 소유주식 매각이라는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그룹 지배권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MH가 건설을 제외한 계열사 지분을 매각한다고 해도 여전히 지주회사인 상선 지분을 8% 이상 보유하고 있는 건설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MH의 지분 매각 카드는 채권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현대건설이 이날 MH의 지분매각 사실을 발표한 보도 자료에서는 현대의 ‘안이한’ 현실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반응. 현대는 이날 전현직 임직원 7200여명이 회사살리기 송금운동과 서산간척지 ‘땅 한평 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임직원 7200여명이 1인당 1000만원씩 모은다고 해도 720억원에 불과하다. 모금운동의 성공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현대의 이런 움직임은 본질적인 문제를 호도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건설 유동성에 대한 우려는 98년 초부터 제기된 문제”라면서 “그동안 근본 대책 없이 시간만 끌다가 이제 와서 회사 살리기 운동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에 가깝다”고 혹평했다. 98년 초 나온 현대건설의 97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는 이미 “회사의 97년 말 현재 차입금은 6조8464억원으로 자기자본의 546%, 매출액의 122%에 달함. 자산매각 등 ‘획기적인’ 재무구조 개선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해놓고 있다.

    결국 채권단과 시장의 관심은 현대가 내놓을 추가 자구안에 쏠리고 있다. 현대건설은 11월6일 “현대의 자구안이 충분하기 때문에 채권단의 출자전환 요구는 받아들일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메가톤급 자구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얘기도 흘리고 있다.

    차입금 줄여도 경영 정상화 쉽지 않을 듯

    그러나 현대가 내놓을 ‘획기적인’ 자구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메가톤급 자구계획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말이 시장에 나돌고 있지만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현대가 그런 자구계획이 있었다면 왜 진작 내놓지 않았겠느냐”며 대형호재설에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현대가 연말까지 이행해야 할 자구 금액은 9000억원. 채권단은 현대가 이미 제출한 자구계획 가운데 5600억원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만 3800억원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가 이런 자구계획을 통해 차입금을 4조원 이하로 끌어내린다 해도 현대건설 경영 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와 같은 건설경기 불황 속에서 현대건설 경영 정상화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

    더욱이 현대 주변에서는 MH의 경영 능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현대건설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이후 MH 행보에 대해 “정몽헌 회장은 산전수전을 다 겪고 현대를 국내 최고 재벌로 성장시켰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는 달리 온실 속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위기 돌파 능력을 배우지 못한 2세 경영인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현대의 확실한 자구계획은 현대의 경영 정상화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 현대가 주장하듯 “어느 기업도 채권단이 일시에 자금을 회수하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우선 채권단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이기 때문. 이제는 ‘현대건설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보려는 정부와 채권단 의중을 읽고 줄타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장은 MH에게 자신도 살고, 현대도 살릴 수 있는 카드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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