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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오! 해피 데이’

중독된 삶 현대인의 자화상

중독된 삶 현대인의 자화상

중독된 삶 현대인의 자화상
소극장 뮤지컬은 독특한 맛이 있다. 규모가 작은 대신 배우들이 바로 코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관객들과 쉽게 친화감을 형성한다. 대극장 뮤지컬처럼 대단위 코러스와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배우들의 개인적인 기량이 한층 돋보이는 것이다.

창작 뮤지컬의 산실이자 살롱 뮤지컬의 대표 주자인 서울 뮤지컬 컴퍼니가 신작 ‘오! 해피 데이’(12월31일까지, 알과 핵 소극장)를 선보이고 있다. 오은희가 작품을 썼고, 최종혁이 작곡을 하고 주원성이 안무를 맡는 등 뮤지컬의 귀재들이 다 모였다. 이 뮤지컬에는 배우가 단 세 명만 출연한다. 하지만 에로스 역을 맡은 김재만이 공연 내내 수많은 역할로 변신하며 일인다역을 수행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수는 꽤 많다고 볼 수 있다.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너무 남발하여 보스에게 날개를 빼앗기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그는 보스가 선택한 남자와 자신이 선택한 여자가 진실한 사랑을 나누게 되면 날개를 되찾을 수 있다. 벤처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사이버 세계에만 빠져 있는 수로(엄기준 역)와, 쇼핑을 좋아해서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순정(김선영 역)이 선택된 인물들이다. 순정은 부자로 보이는 수로를 적극적으로 유혹하지만 수로는 구속의 올가미가 될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결혼 이벤트 업자로 변신한 에로스의 중재로 두 사람은 서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계약 하에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 수로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파탄의 조짐이 보인다. 수로는 돈이 떨어지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순정을 의심하게 되며 순정은 그런 수로에게 실망하게 된다.

이 작품은 ‘조건부 사랑’ 대 ‘순수한 사랑’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를 여실히 반영하여 새로움과 재미를 주고 있다. 사이버 세계에 중독된 수로나 쇼핑에 중독된 순정의 삶은 뭔가에 중독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자화상이다. 번개팅으로 만나 러브호텔로 직행하는 풍속도는 찰나적 사랑과 순간적 쾌락이 난무하는 현실의 극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수많은 결혼 이벤트 회사들이 생겨나고 정보화 사회에 걸맞게 컴퓨터에 입력된 온갖 정보들을 통해 남녀의 짝짓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조건이 잘 맞으면 결혼하고 그 조건들이 소멸되면 이혼하는 계약 결혼, 또는 애초부터 그 조건들의 부합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한 계약 동거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수로와 순정은 뜻밖에도 위기의 과정을 겪으며 최초의 안락한 조건들이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 오히려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물론 이처럼 행복한 결말은 매우 성급하고 작위적이다. 두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심각하게 변화되는 심리적인 추이가 치밀하게 구축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궁극적으로 유쾌함과 행복감을 안겨주려는 뮤지컬의 속성상 이런 결함들은 쉽게 눈감아진다.



에로스로부터 수로의 친구, 결혼이벤트 업자, 유럽 관광지의 카메라맨과 뱃사공, 포장마차 주인과 카페의 바텐더, 심지어 여자 역할로까지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는 김재만의 연기를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뮤지컬이다. 수로와 순정 역의 엄기준 김선영도 외모나 노래, 실력 모든 면에서 뮤지컬 스타로 대성할 자질을 보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과정을 졸업하고 첫 연출을 맡은 이원종도 성공적인 데뷔로 평가할 만하다.



주간동아 2000.10.05 253호 (p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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