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3

2000.10.05

“영어환경 만들어주면 조기유학 필요없다”

미국인에게 영어 가르치는 하광호 교수의 조기영어 교육법

  • 입력2005-06-22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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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환경 만들어주면 조기유학 필요없다”
    뉴욕주립대 하광호 교수(사범대 영어교육학)가 처음으로 한국에 ‘영어의 바다’와 ‘호울랭귀지’(whole language·총체적 언어교육철학) 개념을 전파한 것이 6년 전 일이다. “외국어를 습득할 때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영어의 바다에 풍덩 몸을 담궈라.”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영어교육지침서 ‘영어의 바다에 빠뜨려라’(95년)로 시작해 잇따라 ‘영어의 바다에 헤엄쳐라’(96년), ‘영어의 바다에 솟구쳐라’(97년)를 펴냈다. 여기서 줄곧 주장한 것이 호울랭귀지 교육법이다.

    “전통적인 교육법은 교사가 학습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지만 호울랭귀지는 아이들이 이미 언어습득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어릴 적 모국어 습득과정대로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친다기보다 학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또 기존 영어교육 방식이 단어, 문법, 읽기, 쓰기 등을 차례로 교육한다면 호울랭귀지는 이 모든 것을 통합해서 가르친다.”

    이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전국적으로 호울랭귀지 워크숍이 개최됐고, 수많은 초중등 영어교사들이 하박사에게 자문했다. 하지만 광복 이후 50년 동안 굳어진 잘못된 학습법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었다. 더욱이 호울랭귀지법이 교실에 적용되려면 고도의 지도기술이 필요한데, 국내에는 그것을 가르칠 전문가가 없었다. 뉴욕주립대학에서 안식년을 맞은 하교수가 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3년 만에 찾은 한국의 영어교육 열풍엔 변함이 없었다. 검증되지 않은 영어학습서나 교재 광고가 더 많아졌고,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어를 정복하고 싶다는 한국인들의 욕구는 더 절박해졌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였다. 그러나 하교수가 엿본 강의실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형 강의실에서 마이크를 든 교수가 혼자 교재를 보며 떠들고, 학생들은 멍하니 앉아 있거나 졸거나 다른 책을 보거나 잡담을 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없는 강의실을 보고 그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하교수만 보면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묻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하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아이가 처음 입을 뗄 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엄마, 아빠’라는 사실을 예로 들며, 엄마야말로 최초의 언어교사라고 강조한다. 취학 전 빠르면 서너 살 때 이미 문자교육의 기초가 끝나는 상황에서 젊은 엄마들이 직접 훌륭한 교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은 하교수가 조기영어교육에 목말라하는 한국의 젊은 엄마들에게 주는 조언을 문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아직도 조기영어교육에 대해 불안감이 남아 있다. 너무 어린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면 모국어를 익히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논쟁은 이미 40년 전에 끝났다(1950년대에 캐나다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습득과정을 놓고 여러 차례 실험이 이루어졌다). 결론은 조기외국어교육이 모국어 습득에 전혀 해롭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로 모국어가 외국어를 배우는 데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국말 잘하는 사람이 영어를 잘한다. 모국어는 외국어를 익히는 데 장애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반이 된다.” 요즘 한국에서는 ‘귀가 뚫리면 말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게 정설처럼 돼 있다. 그래서 아이들용 비디오테이프도 한국어 더빙보다 영어로 된 것이 인기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영어 비디오를 보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열심히 귀에 꽂고 다니면 외국어라는 생소한 소리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고 듣고 이해한 내용이 완전히 체화돼 적절한 상황에서 제대로 튀어나와 줘야 하는데 그것은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언어는 상호작용이 있을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 그래서 언어를 독학하는 것이 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혼자 중얼거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떻게 종일 의미도 없이 중얼거리는가.”

    철자와 문법만 강조하는 옛날식 영어교육에 넌더리가 난 부모들이 자식에게는 듣기와 회화능력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입이 터지면 쓰기는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영어를 알파벳부터 가르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굿모닝 같은 인사말이나 자동차나 풍선 같은 자신이 좋아하는 말 몇 개를 배운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해보도록 하고 그것을 엄마가 종이에 쓴 다음 읽어준다. 어느 정도 문장을 만드는 수준이 되면 아이가 말하는 대로 적어서 다시 보여주고 읽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말이 문자가 되는 것을 신기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문자를 인식하게 된다. 절대 ABC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너무 일찍부터 영어교육을 시작해 교육에 실패하기도 하는데….

    “방법의 문제다. 호울랭귀지는 학습자에게 절대로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 예로 school은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도 다 아는 단어다. 알파벳을 배운 아이에게 ‘너 스쿨 쓸 줄 아니?’라고 물으면 발음나는 대로 ‘skl’ 혹은 ‘skul’ 등으로 쓰곤 한다. 이것은 전문용어로 ‘발명된 철자’(invented spelling)라고 한다. 보통 부모라면 ‘틀렸어. 이렇게 쓰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좋은 교사나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럼 엄마가 즐겨 쓰는 철자를 한번 볼래?’하면서 정확하게 school을 써준다. 아이는 ‘내가 쓴 것과 다르네?’하면서 우습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때 엄마는 ‘불행하게도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엄마처럼 쓴단다. 네 방법만 고집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 힘들단다’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유학 없이도 영어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요즘 비용은 많이 들고 효과는 적은 한국에서의 영어교육을 포기하고 조기유학을 보내려는 부모가 늘고 있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나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나 습득과정은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에서는 영어를 접할 기회가 적어 습득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급적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전략이 필요하다.무엇보다 아이에게 영어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집안 곳곳에서 영어를 접하면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어지식을 흡수한다. 그리고 체험을 통해 영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굿모닝이라는 말을 가르칠 때는 반드시 아침에 한다. 연습을 시킨다고 캄캄할 때 굿모닝, 굿모닝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이가 아침이라는 상황과 굿모닝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없게 하고 혼란이 생긴다. 비행기를 보면서 airplane을, 의자에 앉으며 sofa와 chair를 가르치는 게 자연스럽다. 영어환경은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요즘 눈만 뜨면 신종 영어학습법이 나온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것 같기도 해서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나.

    “그 내용을 전부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다수 저자가 정체불명인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를 느끼고 있다. 교육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교육을 모르는 영문학 전공자가 초등학교 영어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초중등 교단은 대학 강단과 전혀 다른 차원이다.또 검증되지 않은 영어교재들이 범람하는 데는 교수들의 책임이 크다. 한국에서 영어 때문에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왜 교수들이 침묵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인들을 현혹하는 학습서나 교재가 나오면 전문가인 교수가 즉각 나서서 공개적으로 ‘이 방법은 좋다’라든가, ‘언어학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등의 판정을 내려줘야 한다. 그것이 전문가의 의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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