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1

..

파격 … 신선 … 미술계 ‘신세대 반란’

화랑에서 나와 공장 등 열린 공간으로…영상매체 활용한 미래지향적 감각 돋보여

  • 입력2005-06-17 15: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파격 … 신선 … 미술계 ‘신세대 반란’
    가을을 맞은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의 미술양식이나 딱딱한 화랑 공간에 얽매이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전시회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지우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내일의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8월31일 도봉구 창동의 샘표식품 공장.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수많은 학생들이 공장 안팎을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공장의 젊은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모습. 그러나 이들은 모두 9월1일부터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열리는 ‘공장미술제’에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이다. 전국 40여개 미술대학 출신들인 150여명의 이 젊은 작가들은 공장의 창고건물 등 4개동 1500여평의 공간을 무대로 대형 설치미술에서 영상, 미디어, 조각, 회화를 망라한 창작물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젊은 작가들이 모인 만큼 작품들도 기존 화랑에서 볼 수 없는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쌓아올린 폐품이나 라면박스에 폭포영상을 투사해 계곡 분위기를 내거나, 오려내 늘어뜨린 폐품에 수양버들 이미지를 투사해 숲 분위기를 연출한 작품도 있다. 노란 피카츄 인형들을 쌓아올려 거대한 이순신 장군상을 만든 익살스런 작품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조미료를 박스에 담아 전시한 것도 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공장미술제는 획일적이고 파벌 중심적인 미술대학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와 청년작가 육성을 표방한다. 한국 현대미술 교육을 창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온 교수들이 기획자로 지원하고 있다. 올해엔 문예진흥원의 전시지원기금 5000만원도 받게 되어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

    공장미술제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이영준씨는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탈피해 관객과 호흡하는 작품, 기성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참신하고 도발적인 에너지를 만날 수 있는 장으로서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미술축제”라고 전시회를 설명한다. 전시회를 위해 2주째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는 김성철씨(25·동의대 서양화과)는 “못 하나 맘대로 박을 수 없는 화랑에 비해 자유롭고 열려 있는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마음껏 작업할 수 있어 신난다. 옆에서 다른 친구들이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된다”고 말한다.



    한국미술의 1번지 인사동 화랑거리를 ‘습격’한 10대들의 전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자퇴한 10여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작가 겸 전시기획자가 되어 인사미술공간에서 개최한 ‘미술관 습격’(8.23∼9.3)은 10대의 작품에 대한 예상과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10대들의 대안교육센터인 ‘하자센터’에 다니고 있는 14∼19세의 청소년들이 주체가 된 이 전시회는 10대다운 감성과 표현방식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량과 매체 사용에서 기성작가 못지않은 능수능란함과 디자인적 감수성으로 영상세대의 감각을 표현한 자리였다.

    하자센터의 교사 한영미씨는 “이번 전시회는 일방적으로 소비하고 받아들이는 데만 익숙했던 10대들이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고 움직이는 주체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정확히 형상화해내는 그들의 작품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고 전시회를 평가한다.

    최근 우리 미술계에는 젊고 실험적인 미술을 수용하고 육성하기 위해 비영리로 운영되는 대안공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들 대안공간에서도 젊은 작가들의 의욕적인 실험과 참신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홍대 앞에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쌈지스페이스가 세 명의 떠오르는 신인작가들을 소개하는 ‘Emerging/異-Merging’(8.31∼10.15)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전시회. 각각 국내와 독일, 미국 등에서 수학한 강영민(28), 김연신(29), 진홍씨(22) 등 세 명의 작가들을 주목할 만한 신진작가로 선정해 캐릭터 작업, 슬라이드-사운드, 만화, 페인팅 등 다양한 작업방식으로 전개되는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대 작가들이 표방하는 일상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미시적이고 섬세한 감수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자리다.

    미술평론가 백지숙씨는 “하자센터의 10대 작가들이나 공장미술제에 참가하고 있는 대학생 작가들은 신선한 발상과 기성작가 못지않은 탄탄한 실력으로 미술계 전체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면서 “영상 세대인 만큼 매체를 다루는 솜씨가 익숙하고 미래지향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사고와 충만한 에너지로 무장하고, 닫힌 미술의 틀을 과감히 깨고 나온 신세대 작가들의 모습에서 한국미술의 새로운 세기를 기대해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