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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특집|닮은꼴 한-일 서로 배우기

“혼으로 만드는 日製 빈틈없다”

이규형이 본 일본…우동소바집 등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똘똘, 일류 자존심으로 승부

“혼으로 만드는 日製 빈틈없다”

“혼으로 만드는 日製 빈틈없다”
한국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습니까?” 며칠 전 도쿄 시부야 거리에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그리고 무작위로 수백명의 일본인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일본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시부야는 일본인의 생각을 읽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그날 인터뷰 결과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응답자의 90%가 “몰라요”라고 했던 것이다. 안다고 해봤자 ‘기무치’(김치) ‘간코쿠 사카’(한국 축구) 정도였다.

한국인의 90%가 일본을 꽤 안다고 말하는 반면 일본인의 90%가 한국을 모른다고 대답하는 현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일본인은 한국을 몰라도 일상생활이나 교양에 별 지장이 없다. 당연히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거꾸로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뭔가 배우려고 난리치는 시점이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 날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 배워야 하는 쪽은 우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을 배울 것인가. 기껏해야 가라오케와 전화방을 배워와 돈 버는 데 써먹는 걸로 충분할까. 나는 일본의 작은 음식점에서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일본의 ‘정신’을 발견했다.

작년 이맘때 일본의 맛있는 음식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객관성을 위해 우선 일본음식 평론가들의 평을 일일이 확인하고 믿을 수 있는 음식점 정보서적 20여권을 읽어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100여군데 음식점을 가려냈다. 그리고 직접 찾아가 음식맛을 보고 평가해서 칼럼을 쓰는 방식이었다(그 결과는 이규형이 쓴 ‘일본을 먹는다’에 소개됐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계속된 일본 음식점 기행을 통해 나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유명한 음식점의 70% 이상이 탁자가 10개 미만인 소규모에다 주방장과 주인은 동일인이며 물론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덴뿌라집, 화식(일식)집, 스시집, 우동소바집, 프랑스 요리 전문점, 이탈리아요리 전문점 등 메뉴에 관계없이 여하튼 명소는 모두 작은 규모였다. 또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 전문점의 주방장은 현지 유명 음식점에 유학해 그쪽 주방장이 ‘하산’(下山)하라 할 때까지 열심히 배워온 친구들이다.



맛? 속된 말로 ‘미치게’ 맛있다. 한국에서 이 정도라면 크게 확장하고 이쪽저쪽 분점을 냈을 텐데 여기는 손바닥만한 식당 한 군데밖에 없다는 게 경이로웠다. 그래서 예약을 안 하고 찾아갔다 밀려나기도 하고 몇 군데에서는 아예 예약이 너무 밀려 미안하다는 정중한 거절을 듣고 돌아서야 했다.

이들은 우리만큼 돈 버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금방 풀렸다. 여기에는 자신이 직접 책임질 수 있는 한계 이상은 안하겠다는 주인의 철학이 담겨 있다. 가게를 넓혀 손님이 많아지면 맛이 떨어질 거고 서비스도 주인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일류라고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그 이상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음식에 관해서는 이들은 철학자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들과 잠깐 얘기를 나눠보면 뇌에 충격파가 온다. 기껏 중학 졸업 정도의 학력이 대부분이지만, 풍부한 화제와 화술은 손님들을 완전히 제압한다. 다음은 내가 어느 고깃집 주인과 나눈 대화다.

“제가 고기를 14년째 굽지만 구울 때마다 긴장해요.”

“왜요?”

“고기란 게 0.1초 더 굽고 덜 굽는 것에 따라(이때 잽싼 동작으로 굽던 고기를 0.01초 내에 반대로 뒤집으며) 맛이 달라진단 말입니다.”

“음… 그런데 말이요. 이 집 쇠고기가 정말 일본에서 제일 맛있습니까?”

“당연하죠.”

“왜요? 마츠자카(일본의 쇠고기 명산지) 쇠고기라서요?”

“아이 참 손님도. 마츠자카라고 다 맛있나요?”

“그럼 다른 비법이 있습니까?”

“우리 쇠고긴 달라요. 정자부터 관리하거든요. 이번 쇠고기는, 아빠소를 누구로 하고 엄마소를 누구로 할까 결정해서 낳고, 그놈에게 맛있는 것만 먹여서 키우고 다른 소보다 운동을 덜 시킨 게 바로(이때 굽던 쇠고기를 내 앞에 탁 놓으며) 요 쇠고기란 말입니다.”

이런 주인의 화술에 넘어가면 실제보다 200% 이상 맛있게 느껴진다. 이들의 자신감은 이 가게에 뼈를 묻는다는 신념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혼’이 있다. 맛에도, 서비스에도, 대화에도.

“혼이 있다”는 말은 기실 음식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의 모든 상품에 통용된다. 한국 언론에서는 매번 광복절 때마다 일본을 비판하는 특집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솔직히 일본상품이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반대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 중에 일본 서민들도 쉽게 알 수 있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일본인의 90%가 한국에 대해 모른다고 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이 세계의 삼성이고 현대지, 10년째 일본에 살면서 제값을 받으며 일본에서 팔리는 한국상품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프로 여자 골퍼들이 벌어들이는 엔화가 일본에 진출한 한국상사의 총이익보다 많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한다. 결국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여기에 내 뼈를 묻겠다는 혼이 없는 한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다는 정신이다. 이 기술에, 이 맛에, 이 교육에, 이 서비스에, 이 농사법에….

몇 년 전 일본친구들과 애니메이션 공동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강렬한 인상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사실 일본인의 주거환경이나 작업환경은 결코 우리보다 좋다고 할 수 없다. 우선 너무 좁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할 때는 몸도 돌리기 어려울 만큼 좁은 공간에서 몇 달씩 작업을 했다. 워낙 기획단계부터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일본 애니메이터들은 마감이 다가오자 좁은 작업실에서 아예 일어나지도 않고 철야작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간판급 애니메이터 한 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30세 창창한 나이인 이 친구가 얻은 병명은 일시적 중풍. 너무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그때 생각은 ‘무슨 놈의 일들을 이렇게 무식하게 하는가’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하튼 음식이나 기계나 가정용품이나 좋은 물건이 나오려면 ‘혼’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일본상품에 녹아 있는 일본인의 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주간동아 2000.08.24 248호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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