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8

2000.08.24

무너지는 건설업 “아! 옛날이여”

국내외 물량 급감, 주택경기 침체 장기화, 금융기관 대출 기피로 자금난 ‘총체적 난국’

  • 입력2005-09-21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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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건설업 “아! 옛날이여”
    “이러다 건설업자들 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IMF 직전까지 30대 그룹에 속해 있던 대기업 계열 건설회사에서 잘나가던 중역으로 재직했던 M씨의 하소연이다. IMF 때 회사가 부도를 낸 뒤 죽을 각오로 쥐약을 샀을 만큼 참담한 시절을 보낸 후 지난해부터 조그만 중소업체를 운영해오고 있는 그는 “건설업에 발 디딘 지 20년 가까이 됩니다만 요즘처럼 힘든 때가 없는 것 같다”며 “오히려 IMF 때는 견딜 만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요즘 건설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이런 탄식을 늘어놓는다. 속내를 들여다봐도 결코 엄살은 아닌 듯싶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6월 중 어음부도율 동향자료를 보면, 6월 한달 동안 부도를 낸 건설업체는 모두 102개사로 그 전월(89개)보다 13개사가 늘었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 부도업체 수(79개)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또 업계 랭킹 상위 100개 업체 중 법정관리나 화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처해 있는 업체가 무려 37개(‘표’ 참조)에 달하고 있어 건설업체가 직면한 현실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올 상반기 총수주액 97년의 70% 수준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업계에선 ‘건설업계의 IMF는 올해부터 시작됐다’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조주현 홍보팀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개별 업체 부도는 물론 건설산업의 존립 자체도 불투명하다는 불안감이 업계에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말 경기를 100으로 했을 때 다른 부분은 모두 100을 넘어섰는데 건설만 70 안팎이다”며 건설산업 전반의 위기론을 인정했을 정도다.

    그러면 건설업계가 이처럼 위기에 놓이게 된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공사물량 감소에 있다. 전반적인 경기 회복세에도 올 상반기 일반 건설업 면허를 가진 업체들의 총수주액은 27조9000억원으로 IMF 직전인 97년 상반기 수주액 39조4000억원의 70.8%에 불과했다. 올 한해 전체 수주물량도 56조원 정도로 97년의 70%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국내 건설시장이 침체됐을 때 돌파구 역할을 했던 해외시장도 국내 기업의 국제신인도 하락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국내업체가 해외시장에서 따낸 공사는 모두 26억80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43%나 줄었다.

    여기에 주택경기 침체의 장기화는 업체들의 숨통을 멎게 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신규 분양된 아파트의 초기 분양률은 대부분이 50%를 넘지 못했고 초기 계약률이 한자릿수에 머문 경우도 많았다.

    주택건설업체 H사의 관계자는 “6월에 분당에서 1000여 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를 분양하는데 모델하우스를 방문한 사람만 4만명 정도여서, 100% 계약은 물론 분양권이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제 계약률은 60% 정도에 그쳤다”며 “그나마 이 정도만 해도 요즘 분위기에서는 대단히 성공한 프로젝트로 주변에서 인사 받기에 바쁘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예 신규 사업을 중단하는 업체도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중소업체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 소속 3051개사 중 상반기에 아파트를 공급한 업체는 60개사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상반기에 이 협회 소속 회원사 2970개 중 주택공급을 한 업체수는 356개였다.

    게다가 업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업체들의 수주난을 심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반 건설업체 수는 90년 말 현재 913개사에 불과했으나 99년 말에는 5200개로 무려 5배 이상 늘어났고 올 6월 말까지는 6개월 동안 무려 800개 이상 증가해 6026개가 됐다. 이처럼 업체 수가 급증하면서 업체별 평균 수주액이 급감해 97년의 202억원에서 올해는 32억원 수준으로 추락했다. 떡은 줄었는데 입은 늘어나면서 생긴 당연한 결과였다.

    이처럼 일감이 줄고 수입이 급감한 건설업체들의 자금난을 더욱 압박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대출 기피와 건설업에 대한 금융시장의 불신이다. 대형 건설업체 H사의 자금담당 Y과장은 “금융업계에선 건설업체의 신용등급을 공식적으로 공표된 것보다 한 단계씩 낮춰 평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신용등급 ‘BBB-’ 이상이면 회사채 인수가 가능한 투자등급에 해당하지만 건설업체의 경우는 기관투자가들이 인수를 꺼리는 바람에 이 등급으로는 회사채 발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체들이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직접금융 방식으로 조달한 자금은 많이 줄어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건설업체의 직접금융자금 조달액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6년 12.2%에서 97년 9.9%, 98년 7.5%, 99년 8.0%로 계속 감소했고, 올 상반기에는 2.4%로 추락했다.

    이처럼 수입이 줄고 차입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건설업체들의 위기-부도설이 확산되면서 신규 분양 아파트의 중도금 연체도 급증해 최근 중도금 연체율이 70%에 달한다는 비공식 통계까지 나올 정도다. 아예 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또 정부가 대형 국책사업을 벌이면서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제때 지원을 못해주는 것도 업체들의 자금난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건설업에 희망은 있는가. 지표상으로 따져보면 호전 기미가 보이고 있다. 건설투자의 선행지표인 건설수주액과 건축 허가면적은 올 1∼4월 사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48.9, 96.8%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지난해 4·4분기(10∼12월) 이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 건설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민간건축은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과 부동산시장 침체로, 공공부문은 정부의 발주 물량 감소로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따위 수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

    따라서 정부가 특별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건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건설업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정부의 특별 조치를 요구했다. 김흥수 건설산업연구원 사업본부장도 “건설업은 시장을 개방해도 외국 업체의 진입이 미미한 대표적인 토착산업”이라며 “국내 건설업이 붕괴하면 해외에서 수입해 대체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전산업의 붕괴 사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업계 일각에선 건설업체의 구조조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공사물량을 증가시키거나 금융 지원을 통해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수요 감소에 부응할 만한 건설 서비스 공급 체계와 구조 개편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건설교통부의 한 관계자도 “국내 건설시장이 바뀌고 있음에도 건설업체들의 경영 형태는 70, 80년대식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21세기에 맞는 경영 구조를 가지려는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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