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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북 화해협력 ‘속도전’ 시작됐다

방북 언론사 사장단에 통큰 발언 ‘2차 김정일 쇼크’ …확 바뀐 북한 “준비완료” 신호탄

남북 화해협력 ‘속도전’ 시작됐다

남북 화해협력 ‘속도전’ 시작됐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이 다시 한번 남한 사회에 충격을 불러왔다. 김정일 위원장은 8월5~12일 동안 방북한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의 대화에서 신문의 1면 머릿기사가 되기에 충분한 뉴스거리를 다발로 쏟아놓았다.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을 낳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위원장의 언행이 남한 사회에 준 충격이 ‘1차 김정일 쇼크’라면, 이번 언론 사장단과의 대화에서 보여준 그것은 ‘2차 김정일 쇼크’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우선 그는 지난번 정상회담에서 자신이 한 발언의 진의와 관련해 남한에서 해석이 엇갈렸던 몇 가지 대목에 대해 확실한 ‘정답’을 제시했다. 그는 이번 언론 사장단과의 대화에서 적화통일을 규정하고 있는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했다. 또 서울 답방 의지를 재확인해 주고 거기서 한발 나아가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남북한의 백두산`-`한라산 교차관광을 약속했다.

특히 경의선 착공과 관련해서는 “전방의 2개 사단 3만5000명을 빼내 공사에 투입하겠다”며 ‘금기’를 깨는 파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전방 사단 규모의 병력 이동은 극비사항이기도 하거니와 전방 병력의 건설현장 투입은 전쟁 의사가 없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오히려 “미국이 테러국가 고깔을 우리에게 덮어씌우고 있는데 이것만 벗겨주면 그냥 수교합니다”고 말해 그간 북한이 취한 폐쇄성이 ‘강요된 폐쇄’였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 “직항로는 군부가 문제”라거나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려면 많은 사람이 숱하게 물러나야 한다”고 말해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동포애만 가지고 강조하면 안 된다”고 말해 의사결정이 즉흥적이라는 일부의 해석과는 달리 현실 인식이 상당한 수준의 지도자임을 드러냈다.

특히 김위원장이 “통일문제는 지금까지 양측 모두에 문제가 있었다”고 전제하고, 그 책임을 “북남 공히 과거정권 탓”이며 “체제유지를 위해 양측 정부가 통일문제를 모두 이용해왔다”고 발언한 것은 ‘일대 사변’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발언이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결단으로 이뤄진 6·15 선언 이후 많이 달라졌습니다”는 대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정권은 김일성 주석의 통치기간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김주석이 체제 유지를 위해 통일문제를 이용한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김위원장이 지도자로서의 고민과 북한의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한 대목도 눈에 띈다. 언론 사장단과의 대화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농사지어야 쌀을 먹는 것 아닙니까? 로켓 연구해서 몇억 달러씩 나오는데 그거 안할 수 있습니까? 위성 발사는 과학 목적으로 하는데 1년에 두세 번 하면 9억 달러 들어갑니다. 우리처럼 작은 나라에서 1년에 2발씩 쏘면 이건 비경제적입니다. 수리남과 이란에 로켓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로켓을 개발해서 대륙간 탄도탄을 만들어 2, 3발로 미국을 공격하면 우리가 미국을 이깁니까? 그런데도 미국은 이것으로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G8(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전에 북한을 방문했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미국이 우리 위성을 대신 쏴주면 우리가 개발을 안하겠다는 얘길 했다”고 밝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던 북한의 정책변화가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는 아울러 “클린턴 대통령이 오키나와 회의에 갔을 때 푸틴이 그 뜻을 전달했는데 (클린턴이) 흥미있게 들었고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는 얘기를 내가 (푸틴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미국이 골머리 아프겠지… 우리한테 돈 주기는 싫고, 과학자 연구는 막아야겠고, 골치 되게 아플 겁니다”며 장난기 어린 ‘빈자의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워싱턴 포스트지’가 보도한 ‘친서 전달설’에 대해서는 “나는 푸틴 대통령에게 친서 전달한 바 없습니다”고 단호하게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사일 문제는 내가 만든 것입니다. 나라가 작을수록 자존심을 굳게 세우고 열강 대국에 맞서야 합니다. 북남 합쳐 봤자 인구가 1억도 안 되는데 그럴수록 명예를 중히 해야지요. 대국에 비굴하거나 아첨하면 절대 안 됩니다. 남쪽의 경제 기술과 북쪽의 정신을 합작하면 강대국이 됩니다. 일본을 이기고 36년간의 못 받은 보상도 받아야 합니다.”

그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미`-`일과의 수교 시기에 대해서도 자신의 위상을 강조하면서도 자존심과 자주를 내세웠다.

“내 말 떨어지면 내일이라도 미국과 수교합니다. 미국이 테러국가 고깔을 우리에게 덮어씌우고 있는데 이것만 벗겨주면 그냥 수교합니다. 그런데 일본과의 수교 문제는 복잡합니다. 과거 문제도 있고, 청산해야 할 문제도 있지요. 일본이 부당한 해명(납치사건)을 요구하는데 그렇다면 메이지유신 때부터 따져야지요. 일본은 일제 36년을 우리에게 보상해야 합니다. 나는 자존심 꺾이면서까지 일본과 수교는 절대로 안합니다. 작은 나라일수록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영사`-`대사 관계,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주권국가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개선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우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 이번 8·15행사에 그치지 않고 9월과 10월에 한 차례씩 상봉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과 내년에 이산가족의 가정방문도 허용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검토할 뜻을 밝혔다. 이산가족 상봉의 숫자가 적다는 한국 사회의 여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주목할 대목은 군부의 반대가 있지만 직항로를 개설하고 경의선 공사를 착수하겠다는 그의 다음과 같은 적극적인 의지 천명이다.

“직항로 문제는 정부 내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고 군부가 문제인데, 군대 문제는 내가 말해야 직항로가 열리게 돼 있습니다. 큰 대표단은 직항로로 곧바로 오십시오. 남북 모두가 휘발유를 사서 쓰는데 무엇 때문에 멀리 돌아서 다니면서 중국에 돈 써가며 굽신거리나. 직항로를 하면 비행기에서 특수 카메라로 다 사진 찍는다고 군부에서 반대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미 인공위성이 다 우리 사진 찍고 있는데 비행기 타고 찍는 게 문제될 게 있는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직접 다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 경의선 철도 연결에 대해서도 “남측이 먼저 착공하세요. 그러면 즉시 우리도 착공하겠습니다. 상급(장관급) 회담에서 착공 날짜를 빨리 합의하십시오. 내가 대통령과 임동원 국정원장에게도 말했는데 날짜가 합의만 되면 우리는 38선 분계선 2개 사단 3만5000명을 빼내서 즉시 착공하겠습니다”고 통 크게 약속했다. 그는 또 ‘노동당 규약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노동당 규약도 고정 불변의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 바꿀 수 있습니다”고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그리고 “규약을 개정한다면 남쪽의 보안법 개정과 연계시켜 정상회담 때 말씀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아닙니다. 보안법은 남조선 문제입니다. 과거에도 규약은 고쳤으나 45년도에 만들어진 강령은 안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 강령은 해방 직후 40년대 것이어서 과격적 전투적 표현이 많이 있습니다. 당 간부들 가운데는 주석님과 함께 일하신 분도 많고 연로한 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강령을 바꾸면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이 숱하게 물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강령을 바꾸면 내가 숙청한다고 할 것입니다. 남조선 국가보안법, 그건 남조선 법이고 우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남한에도 수구세력의 반발이 있듯이 북한 역시 구시대 정치를 청산하는 과제를 안고 있으나 빨치산 원로들을 비롯한 김주석 시대의 지도층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그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김위원장은 ‘강보에 싸인 아해’ 시절부터 김주석의 빨치산 동지들 무릎 사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와 빨치산 동지들과의 관계는 혈연 이상의 끈끈한 정으로 맺어져 있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적절하게 조정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자신의 인정 많은 ‘광폭 정치’를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 힘은 군력에서 나옵니다. 내 힘의 원천으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두가 일심단결하는 일이고 두번째가 군력입니다. 외국과 잘 돼도 군력이 있어야 하고 외국과의 관계에서의 힘도 군력에서 나오고 내 힘도 군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친해도 군력을 가져가야 합니다”고 말해 군부를 중시하는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과 함께 자신의 군부 장악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서울 답방에 대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하겠다고 하면서도 끝내 시기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굳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답방이 연내에는 이뤄질 것임을 내비쳤다. 또 “남쪽의 경제기술과 북쪽의 정신을 합작하면 강대국이 된다”는 발언이나 만화영화와 컴퓨터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합작해 중국에 진출하자는 제안에 대한 그의 긍정 발언 등은 김대중 대통령의 실사구시적인 접근방식에 대한 적극적인 화답이자 남북관계 개선의 궁극적 목표를 함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위원장이 금강산`-`설악산 연계관광 시점을 2005년으로 제시한 것은 그가 매우 구체적 수준으로 주도면밀하게 남북관계 개선의 마스터 플랜을 짜놓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또 그런 점에서 김위원장과 언론 사장단과의 ‘집단기자회견’은 김위원장 체제의 북한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남전략 전반을 변화시킬 준비가 됐음을 전하는 진지한 신호로 읽힌다. 공은 다시 한번 남쪽으로 넘어온 셈이다.





주간동아 2000.08.24 248호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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