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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향수의 길 ‘66번 도로’ 복원

시카고~LA 잇는 2000마일…기회의 땅 서부로 가던 ‘꿈의 파이프라인’, 10년 후 완공

미국, 향수의 길 ‘66번 도로’ 복원

미국, 향수의 길 ‘66번 도로’ 복원
존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읽은 사람이라면 주인공 조드 일가가 고향을 버리고 서부를 향해 가던 길, ‘루트(Route) 66’을 잊지 못할 것이다. 광활한 오클라호마의 농토가 사막으로 변해버린 뒤 캘리포니아는 ‘오키’라고 불리던 오클라호마의 농민들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탈출구였다. 길고 긴 길 끝에 있는 캘리포니아에는 과연 새로운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확실한 미래도 없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역마차에 남루한 짐과 토로할 수 없는 분노를 싣고 먼지 날리는 루트 66을 달려간다.

1938년에 출판된 ‘분노의 포도’는 농민들의 생활을 너무 참담하게 그렸다는 이유로 전미국의 도서관에서 금서가 되었지만 1년 만에 50만부가 팔릴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스타인벡은 이 소설로 1940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분노의 포도’에서 자세하게 묘사된 미국 농민의 비참한 상황은 모두 사실이었다. 실제로 1930년대에 미 중부의 농민들은 계속된 가뭄으로 농지가 황폐화된 데 이어 농업의 기계화로 대폭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1930년대에만 21만명의 농민이 루트 66을 따라 서부로 향했다. 스타인벡은 미국 역사에 남은 중부 농민들의 대이동 행렬에 끼여 함께 미 대륙을 횡단하며 ‘분노의 포도’를 구상했다. 그는 소설 속에서 루트 66을 ‘길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루트 66은 미국 국도의 어머니격인 길이다. 1926년에 처음 공사를 시작해 1938년에 완공된 루트 66은 시카고에서 출발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끝나는 장장 2000마일의 긴 국도다. 이 길은 미시간 오클라호마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등 7개 주(州)를 관통한다. 대공황과 가뭄의 와중에 루트 66은 기회의 길이자 ‘꿈의 파이프라인’이었고 2차 대전 중에는 철도와 함께 미국 대륙을 잇는 거의 유일한 동맥이었다.

루트 66의 쓰임새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1950년대 접어들어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가 열리면서 루트 66을 통해 서부로 가는 사람들과 물류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중부의 농산물들이 루트 66을 통해 서부의 대도시들로 보내졌고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은 도시에서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밤낮없이 페달을 밟아 서부로 달려갔다.



이처럼 루트 66은 자동차 시대가 절정을 이루던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미국인이 꿈과 희망, 그리고 눈물을 묻은 길이다. 단순한 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루트 66은 ‘세인트루이스’나 ‘오클라호마 시티’처럼 백여 곡이 넘는 팝송의 가사에 등장했고 TV 드라마와 쇼의 제목이 되기도 하는 등 한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길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미국 지도를 펼치면 이 유명한 길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대륙을 횡단하는 가장 빠른 길이던 루트 66은 각 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들이 속속 건설되면서 점차 그 명성을 잃기 시작했다. 미시간주는 국도인 루트 66을 왕복 8차선으로 대폭 확장해 고속도로 55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오클라호마주의 루트 66도 고속도로 44번으로 바뀌었다. 지도상에서 오클라호마와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길은 고속도로 40번, 15번, 10번으로 이어진다. 마침내 1984년 루트 66은 지도에서도 도로 표지판에서도 완전히 사라졌다.

루트 66이 사라지면서 자동차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던 시대도 갔다. 비행기 여행이 보편화되어 다섯 시간이면 미 동부에서 서부로 날아갈 수 있는 지금, 누구도 사나흘 동안 밤낮없이 운전대를 잡고 서부로 달려가는 고단한 여행을 시도하지 않는다. 또 아직 잡지 못한 꿈과 희망이 미지의 서부에 숨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젊은이도 더 이상 없다.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도로가 루트 66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잖은 미국인들이 아직도 루트 66을 현재형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시시피강과 오클라호마의 대평원을 지나고 애리조나사막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루트 66의 여정은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베트남전쟁, 엘비스 프레슬리 등과 함께 젊은 날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 루트 66에 꽂혀 있던 도로표지판들은 이제 몇천 달러를 주고도 사지 못하는 귀중품이 되었다. 그만큼 이 길에 대한 미국인들의 향수는 식을 줄 모른다.

최근 미 국회는 10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루트 66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짧은 미국 역사에서 하나의 전설이 되었던 이 길이 다시금 현실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이 소식을 보도하며 루트 66에 연관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여러 독자들의 회고를 기사화했다. 대부분 장년층인 이들의 기억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남루한 길과 남루한 자신의 모습, 그러나 결코 남루할 수 없었던 젊음. 그들은 고향에 박혀 있던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도시에 이식하기 위해 루트 66을 달려갔다. 길의 끝에 좀더 나은 삶이 자리하고 있을지, 서부개척시대 이래로 전해져오는 ‘캘리포니안 드림’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사진작가 에드워드 키팅은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10년 된 볼보에 짐을 실은 채 캘리포니아로 달렸던 1977년의 루트 66을 기억하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루트 66은 옛 영광을 잃고 시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이미 주와 주 사이를 잇는 고속도로 ‘인터스테이트’가 건설되었고 웬만한 모텔이나 기념품 가게, 주유소 등은 모두 새로운 고속도로변으로 옮겨간 뒤였기 때문이다. 루트 66에서 그가 본 것은 패배자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키팅은 이 쇠락해가는 루트 66을 달리며 과거를 잊고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섭씨 45도가 넘는 사막의 태양과 허덕거리는 낡은 엔진과 싸우며… 길고 긴 여정은 나를 응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루트 66은 단순한 길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잊었고 또 다른 도전을 보았으며 평소에는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새로운 내 인생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내년에 착공 75주년을 맞는 루트 66은 10년 후면 복원공사를 끝내고 새로이 미국 지도에 등장하게 된다. 젊은 날의 꿈으로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루트 66이 21세기에 어떠한 모습으로 재현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주간동아 2000.08.10 246호 (p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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