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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쉼터’를 아십니까?

‘주간동아’ 통해 최초 공개…60여명 정기모임 갖고 치료, 정보교환 등 극비리 생활

‘에이즈 쉼터’를 아십니까?

‘에이즈 쉼터’를 아십니까?
HIV(에이즈를 발병시키는 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에 감염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장소가 서울 시내에 두 곳이 있다. ‘에이즈정보쉼터’와 ‘에이즈요양쉼터’가 바로 그곳. 회원은 물론 관리자도 HIV 감염자인 이 두 곳은 정상인은 출입할 수 없으며 장소와 연락처도 공개되지 않는 도심 내 ‘에이즈 특별구역’이다.

보건복지부, 한국에이즈퇴치연맹,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등 에이즈와 관련된 정부-사회단체들도 이 시설에 대해선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공개될 경우 감염자들을 자극할 수 있으며 시설 주변 주민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

‘주간동아’는 7월28일 에이즈정보쉼터 관리자와 회원들로부터 양해를 얻어 이곳을 방문 취재했다. 98년 9월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 의해 문을 연 이래 정보쉼터가 언론매체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시설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는 일체의 정보를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고 사진촬영도 허락되지 않았다.

정보쉼터는 서울 시내 간선도로에서 50m 정도 골목으로 들어간 4층 빌딩의 40평쯤 되는 한 층 공간을 모두 쓰고 있었다. 하루 평균 10∼20여명의 감염자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는 이곳의 관리자 김모씨, 회원 이모씨, 최모씨와 얘기를 나눴다. 이들은 모두 30대 중반이었다.

회원들은 건물 1층 미용실을 이용하기도 하고, 점심은 주로 중국집이나 한식당에서 배달해 먹고 있지만 주변에서 눈치채는 사람은 없다. 건물주 역시 정확한 용도를 알지 못했다.



내부는 크게 휴게실과 사무실로 나뉘어 있는데 휴게실엔 침대 4개, 헬스 기구, 탁구대, 화장실, 샤워실, 주방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여기서 숙식을 하는 회원도 있었다. 사무실의 펜티엄Ⅲ급 컴퓨터 4대는 회원들에게 특히 인기다. 인터넷 정보검색을 위해 주로 이용하지만 몇몇은 채팅을 즐기기도 한다.

이곳의 회원은 60명 정도. HIV에 감염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회원자격’이 주어진다. 회원들은 매달 15일 정기모임을 갖는다. 의사 등을 초빙해 강연을 듣고 치료약과 관련된 국내외의 새로운 정보를 나눈다. 요즘엔 홍삼과립, 우족탕 등 섭생이나 민간요법을 통한 치료에 관심이 높다고 한다. 6월엔 회원들이 춘천으로 야유회를 다녀오기도 했다. 정기모임 뒤엔 반드시 식사를 곁들인 ‘뒤풀이’가 있다. 장소는 부근 음식점과 볼링장, 노래방. 그러나 절대 술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회원들은 술이 감염자들에게 매우 해롭다고 생각했다).

회원들은 최근 시중에 나돈 ‘연예인 에이즈 감염설’로 에이즈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회원 이모씨(34)는 “이 일이 에이즈에 대한 시각을 더 왜곡시켰다”고 단정했다. 그는 “특정인이 감염됐다는 걸 왜 굳이 알려고 합니까. 그건 법적으로도 금지된 저급한 호기심일 뿐입니다”며 항변했다.

이씨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오히려 HIV 감염예방법, 그리고 HIV 감염 이후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의 문제다”고 지적했다. 관리인 김씨는 “그건 정상인과 HIV 감염자 모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런 관심이 올 들어 6개월 만에 110명(역대 최고 증가세·금년 6월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HIV 감염자는 총 1173명)이 HIV에 새로 감염되는 등 확산일로에 있는 에이즈의 재앙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회원들은 ‘감염되면 인생 끝이다’ 또는 ‘감염돼도 발병만 안하면 정상인과 똑같이 생활한다’는 일반인들의 상식은 모두 틀렸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HIV 감염자의 삶은 한마디로 ‘CD4+ T-cell’(이하 CD4+)이란 세포의 수치에 달려 있다.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온 HIV는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이 세포를 공격하면서 증식한다. 따라서 HIV가 확산될수록 이 세포 수는 줄어들게 된다. 정상인의 mm3당 CD4+의 개수는 800∼1200개. 감염되면 보통 600개 이하로 떨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수치가 내려간다. 200 이하가 되면 위 폐 눈 피부 등 인체 곳곳에서 면역결핍에 따른 종양 등 에이즈 질환이 발병하는 환경이 된다.

회원들은 한달 혹은 3개월 단위로 CD4+ 수치를 측정한다. ‘숫자’로 표시되는 자신의 ‘생명’을 본다는 것은 묘한 기분이다. 회원 최씨는 ‘슬픈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휴대폰에서 남은 배터리량을 알리는 막대가 점점 내려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엔 6개였다가 2개, 1개… 그러다 휴대폰은 꺼져버리죠.” 그의 CD4+ 수치는 120. 휴대폰 배터리 막대에 비유하자면 최씨는 지금 한 개만 남겨놓고 있는 셈이다.

CD4+의 수치를 방어하기 위해 감염자들은 칵테일요법(HIV 증식 억제에 효과가 있는 여러 가지 약을 섞어 먹는 것) 등을 해야 한다. 이 약은 확실히 수치하락을 막는 데는 효과가 있다. 10년 전 감염된 관리인 김씨는 “이 약 덕에 아직 수치 400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소화기능 장애와 함께 감염자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피곤함’이다.

30대 후반의 이 시설 회원 이모씨가 대표적 사례다. 서울 대기업체 간부였던 그는 98년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직장에 감염사실을 숨겼다. 그러나 감추려 한다고 쉽게 감춰지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은 매일 5번씩 20개의 알약을 털어넣는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근무시간 중 병원에 가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약을 복용하면서 급격한 피로감이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 8시간의 사무직 노동은 그에게 너무 벅찬 일이 된 것이다. 그 뒤 거의 매일 지각을 하게 됐고, 결국 5개월 뒤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회원 이모씨도 구직을 포기했다. 역시 피로감 때문이다. 서울에서 실내 인테리어사업을 하는 한 20대 후반의 사업가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에도 일을 계속 한다. 그러나 정보센터에 따르면 HIV 감염자는 대부분 실업상태다. 그래서 이들에겐 두번째의 변화, ‘가난’이 찾아온다.

국내의 HIV 감염자들은 정부로부터 기본적 치료제를 보조받는다. 이는 감염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들은 “약으로 연명하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했다. 경제활동 중단과 그로 인한 격리감은 정상적 이성관계의 단절만큼이나 감염자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에이즈전문가들은 감염자에게 노동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창우 국장은 “HIV에 감염된 이후에도 10년, 20년 이상의 창창한 인생이 남아 있으며 감염자들도 정상인의 절반만큼은 일할 수 있다. 사회는 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되찾아줄 노동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염자의 인권은 현실에선 사치스러운 것이다. 관리인 김씨는 최근 보건복지부 주최 ‘전국에이즈관리개선워크숍’에 참석을 신청했다가 ‘퇴짜’맞았다. 김씨는 “HIV 감염자와 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미국에선 에이즈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 중 상당수가 HIV 감염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이즈정책은 정작 감염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게 감염자들의 얘기다. 에이즈 관련 기관에 따르면 HIV 감염자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정부의 의료비 지원 몫도 앞으로 상당히 감소될 예정이다. 예산은 그대로인데 감염자가 너무 빨리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보센터 회원 최씨는 6월 서울 시내 한 민방위 훈련장에서 있었던 경험담을 소개했다. 그는 훈련에 참석한 시민들 앞에서 에이즈예방에 대한 강의를 했다. 수강생 대부분은 강의를 듣지 않고 졸고 있었다. 최씨는 강의를 끝내며 한마디 던졌다. “저도 HIV 감염자입니다.” 순간 모든 사람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최씨의 얼굴을 보려는 사람들로 훈련장이 야단법석이 됐다. 최씨는 HIV 감염자를 ‘특이한 암적 존재’로 보는 사회인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나는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다’며 감염검사를 받지 않은 채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권상학 국장은 HIV정보쉼터의 회원들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아는 한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키려 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간동아 2000.08.10 246호 (p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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