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2

2000.07.13

김석기, 금융업서 정말 손 뗄까

중앙종금-제주은행 합병 후임행장 지분 놓고 신경전…대주주로 확실한 권한 행사

  • 입력2005-07-20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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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기, 금융업서 정말 손 뗄까
    김석기 사장의 마지막 승부수는 성공할 것인가. 지난 6월8일, 공멸 위기로 내몰리다시피 한 종금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중앙종금이 제주은행과의 합병을 전격 선언하자 금융권의 관심은 온통 김사장에게로 쏠렸다. 국제금융 분야의 ‘귀재’로 꼽혀왔던 그가 이번에는 지방은행과의 전격 합병에 나서면서 ‘경영 일선 퇴진’이라는 ‘히든 카드’를 내던졌기 때문이다.

    그가 금융권을 두번째 놀라게 한 것은 합병 선언 후 합병추진위원장에 재경부 핵심 요직인 경제정책국장 물망에 오르던 기획예산처 정지택 예산관리국장을 영입하면서였다. 정지택 국장은 7월1일부로 중앙종금 부회장에 취임했고 합병 이후 탄생할 새로운 은행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종금 관계자는 정부회장 취임 하루 전인 지난 6월30일 “주총에서 추인된다는 전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정부회장이 합병은행의 행장을 맡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정부회장은 김석기 사장의 서울대 경영학과 2년 선배인 데다 역시 행시 출신에 경제 부처 관료를 지낸 자민련 정우택 의원의 친형이다. 말하자면 김석기 사장의 측근 인사 중 한명인 것이다. 중앙종금 관계자는 “정부회장이 영입 2, 3주 전부터 김사장측과 꾸준히 접촉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제주은행측은 정지택 부회장의 합병은행장 내정설에 펄쩍 뛰고 있다. 제주은행 관계자는 “김사장이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합병은행장은 제주은행측에서 맡을 것이라고 이미 밝히지 않았느냐”며 중앙종금측의 이런 언급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주은행측은 김석기 사장이 경영 일선 퇴진을 선언한 만큼 합병은행장은 제주은행 강중홍 행장이 맡았으면 하는 눈치다. 이 은행 관계자는 “그렇게 되는 것이 상식 아니겠느냐”는 말로 이런 속내를 내비쳤다.

    현재 중앙종금과 제주은행 각각 3명으로 구성된 합병추진위원회는 주식 교환 비율 등 합병 조건은 물론 합병은행의 명칭, 본사 위치 등 세부 사항에 대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합병 조건을 결정하기 위한 회계법인 실사는 당초 6월24일까지 마친다는 계획이었지만 다소 늦어져 7월8일경이 되어야 실사 작업이 모두 끝날 예정. 이러한 절차를 모두 거친 뒤 7월 안으로 합병 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8월4일 합병 주주총회를 열어 후임 행장 인선 등 모든 절차를 마무리짓는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합병을 둘러싼 양사간의 미묘한 신경전은 정지택 부회장이 영입된 이후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양사간의 합병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부회장의 지위를 놓고도 제주은행에서는 ‘당연히 중앙종금측 추진위원장일 뿐’이라는 입장인 반면 중앙종금측은 ‘애매한 부분’이라고 일관하고 있어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제주은행측은 ‘양사를 함께 대표하는 추진위원장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정부회장 영입 이전 중앙종금측 합병추진위원장은 김갑진 감사가 맡아왔다. 그러나 정부회장이 합병추진위원장을 맡은 이후에도 중앙종금측 추진위원에서 누가 빠졌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중앙종금측도 이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양사 합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합병 비율에 있어서도 신경전은 마찬가지. 현재 자본금 규모로만 따지면 중앙종금이 3150억원, 제주은행이 1200억원 규모(제주은행측 통계)로 중앙종금이 2배가 훨씬 넘는 덩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 만큼 중앙종금이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제주은행측은 “제주은행 주가가 1900원 수준이고 중앙종금 주가가 1400원 수준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혀 실사 과정에서 중앙종금의 부실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 제주은행측은 합병 양해각서 체결 당시 밝힌 ‘대등 합병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중앙종금측은 “합병 과정에서는 단순히 주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순자산가치를 따져서 반영하는 경우도 많다”는 말로 자산 규모에서 앞선 자기네 회사가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실제로 합병이 되었을 때 주주 구성이 어떻게 바뀔 것이냐는 데로 모아진다. 여기에는 자연스레 ‘경영 일선 퇴진’을 선언한 김사장의 발언권이 어느 정도 유지될 것이냐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 김사장과 김사장이 대주주인 코리아 캐피탈의 중앙종금 지분을 합치면 20%가 넘는다.

    그렇다면 이번 김석기 사장의 ‘경영 일선 퇴진’ 선언을 김사장 자신의 경영권 포기로 해석해도 되는 것일까. 종금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천만의 말씀’이라며 손을 내젓는다. 중앙종금 관계자도 “외자 유치 등 대외 업무는 여전히 김사장 몫”이라고 강조함으로써 김사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퇴진하지만 대주주로서의 권한은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김사장 본인이 또 다른 신규 사업을 벌이는지 여부는 철저하게 그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앙종금이 제주은행을 합병 파트너로 생각하고 물밑 협상을 벌였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가을 김석기 사장과 제주은행 강중홍 행장 간에 양사 합병에 대한 깊숙한 논의가 있었던 것이다. 한 관계자는 “중앙종금 입장에서는 당시만 해도 합병의 절박성에 대한 인식을 갖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종금은 나라종금 폐쇄와 영남종금 영업정지 사태 등이 종금업계를 휩쓸고 간 지난 5월에만 한 달 사이 6000억∼70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비상 국면에 접어들자 다시 합병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제주은행측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증자 일부 참여 등 협력 방안이 논의되었을 수는 있지만 합병 논의는 결단코 없었다”는 것이 제주은행측의 주장. 제주은행은 중앙종금이 과거사를 들고 나오는 것에 대해 중앙종금이 위기 탈출의 일환으로 합병에 발벗고 나섰다는 사실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다.

    이처럼 양사간의 합병이라는 대원칙에는 상호 합의했지만 물밑 협상 과정과 합병 이후 진로를 둘러싸고는 서로간의 주장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김석기 사장의 영향력이나 발언권이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중앙종금과 김사장측은 이번 합병을 은행업 진출,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증권업 진출의 신호탄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앙종금은 이미 지난해에도 금융감독원에 증권사 설립을 신청했다가 정부의 권유로 신청을 자진 철회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지금은 폐쇄된 나라종금이 함께 증권사 설립을 신청하는 바람에 정부가 ‘시기가 좋지 않다’며 증권업 진출을 만류했다는 것이 중앙종금측의 설명. 따라서 합병이 성사되면 중앙측은 머지않아 증권업 진출 등 새로운 공격 경영의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제주은행측은 이번 합병의 의미를 제주은행의 종금업 진출이라는 쪽에 맞춰 해석하고 있다. 금융산업구조조정법 개정에 따라 은행에 종금업무를 허용했기 때문에 이번 합병이 비로소 가능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종금사와 은행 간 합병이라는 금융구조조정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두 회사가 합병 발표 한 달이 다 되도록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최종 합병까지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합병을 통한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나머지 종금사들에도 두 회사의 진통은 남의 일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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