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1

2000.04.27

최용수, 글러브 대신 낚싯대

  • 입력2006-05-19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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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수, 글러브 대신 낚싯대
    프로복싱 전 WBA 슈퍼페더급 세계 챔피언 최용수(28)는 요즘 날마다 낚시를 한다.

    아예 충남 신평의 고향집에 아내와 두 아들을 데려다 놓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낚싯대와 씨름한다.

    자신의 주먹에 쓰러져간 복서들의 얼굴, 세 번의 패배, 무명의 설움과 챔피언 시절의 찬란함, 그리고 타이틀 상실 이후의 무력감, 몸부림친 재기의 노력…. 그는 열흘이 넘게 낚싯대를 기울이고 있지만 10년에 가까운 복싱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모자란다. 그의 낚시는 그만의 은퇴의식이다.

    최용수는 95년 12월 아르헨티나 원정 경기에서 빅토르 휴고를 꺾고, 챔피언에 등극한 뒤 98년 9월 일본에서 하타케야마 다카노리에게 판정패해 타이틀을 내줄 때까지 한국 유일의 세계 챔피언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무명시절 경기 전날 오토바이 사고로 갈비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하고도 시합에 출전, KO승을 거둔 그였다. 그는 현재 자신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백종권(29·숭민체육관)보다 한 살이 어리다. WBC슈퍼플라이급챔피언 조인주(31·풍산체육관)보다는 세 살이 적다. 기량면에서는 아직도 ‘한국 최고’라는 평을 듣고 있다. 더욱이 최용수는 8차 방어전에서 편파판정 탓에 타이틀을 내준 후 세 차례의 재기전을 모두 화끈한 KO승으로 장식하며 최근까지도 챔피언 탈환을 위해 애썼다.



    “솔직히 챔피언 시절 한 달 이상 열심히 운동한 적이 드물었어요. 육상선수 출신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신체조건을 물려받아 보름 정도만 열심히 하면 타이틀을 방어하곤 했죠. 그런데 지금은 정말 열심히 운동해요. 챔피언 시절에는 항상 주변에 사람이 득실거렸는데 정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요새는 사람이 없어요. 꼭 정상에 오른 후 ‘멋있게’ 은퇴할 겁니다.”

    그가 얼마 전 필자에게 털어놓은 말엔 의욕이 철철 넘쳐 있었다.

    그런 그가 왜 돌연 은퇴를 결심했는가. 최근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었다. 심양섭 WBA 수석부회장이 역시 전 챔피언인 몽골의 라크바 심과의 대결을 주선했다. 최용수는 이 경기에서 이기면 바로 타이틀전을 치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시합은 예정된 3월이 지나고 4월의 절반이 지났는데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방송사의 생중계가 잡히지 않았고, 이것이 해결되자 흥행능력을 갖춘 프로모터가 없었다. 간신히 프로모터가 생기자 1500만원이라는 터무니없이 낮은 개런티가 문제가 됐다.

    한때 약 3억3000만원까지 받았던 최용수는 고민을 했다. 그는 결국 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러 차례 연기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한 것도 원인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링에 오르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Eyes of the tiger’(영화 ‘록키’의 주제가)처럼 멋진 경기를 펼칠 자신이 그에겐 있다. 그는 그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낚싯대를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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