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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연구|세계의 40대 지도자

변화 원하는 세계, 40대 지도자 뜬다

클린턴 블레어 이어 천수이볜 푸틴 등 등장…새로운 비전 제시 기대

변화 원하는 세계, 40대 지도자 뜬다

40대 파워블랙

이른바 ‘제3의 길’을 제시하며 세계의 이목을 한몸에 받고 떠올랐던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공수부대 중령 출신으로 쿠데타 실패와 2년여의 수형생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베레를 쓴 채 선거운동을 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베네수엘라의 유고 차베스. 대만 총통선거는 중국의 지방선거일 뿐이라는 베이징 정부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대만독립’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된 천수이볜 신임 대만총통. KGB 첩보원 출신이면서도 체첸전 연승으로 인기 상한가를 치며 대권을 예약해 놓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당선자. 이들의 정치역정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40대라는 점이다.

어디 이들뿐인가. 비자금 스캔들로 휘청거리는 독일 기민당의 구원투수로 발탁된 구(舊) 동독 출신의 안겔라 메르켈(여) 차기 총재내정자, 부임후 7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해 ‘철의 재무장관’이란 별명과 함께 영국의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한 고든 브라운 영국재무장관, 여론조사 지지도 49%라는 경이로운 인기로 프랑스에서 가장 대중적인 차세대 정치인으로 부상한 마르틴 오브리(여) 프랑스노동장관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40대에 지도자 반열에 오른 경우는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다. 1889년생인 히틀러는 43세인 1933년에 독일총통이 되었다. 1917년생인 존 F. 케네디는 42세가 되던 1960년에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케네디와 동갑내기였던 박정희 역시 43세가 되던 1961년 쿠데타에 성공해 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1937년생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1979년 41세의 나이로 집권에 성공했다. 1946년생인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도 1993년 집권 당시에는 46세였다.

물론 나이가 지도자의 결정 요건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를 요청하고 그것에 좀더 잘 부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세대가 있다면 어떤 국면에서 역사의 전면으로 부름받을 수 있는 것이다.



비르투·포르투나·네체시타

마키아벨리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비르투’(역량-재능-기량), ‘포르투나’(운-행운), ‘네체시타’(시대의 요구에 부응-합치하는 것)라고 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네체시타라고 보았다. 제아무리 빼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어도 시대가 부르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숱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의 리더십 전문가인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지도자의 유형을 평범한 지도자, 개혁적 지도자, 비전적 지도자로 분류한다. 리더십을 그 공동체의 비전창출 능력과 동일시하는 가드너 교수에 따르면 평범한 지도자는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전통적인 스토리를 재탕하는 경우고, 개혁적 지도자는 그 스토리를 각색하는 정도며, 비전적 지도자는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하는 경우다.

새로운 스토리의 창출이란 곧 새로운 미래를 그려내는 것이다. ‘변혁의 시대, 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 이즈카 아키오(飯塚昭男)가 리더가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으로 거론했던 문제분석능력, 인간관리능력, 미래창조능력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변혁시대의 리더로서 가장 중시되는 것이 미래 창조능력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새로운 스토리를 창출할 수 있는 리더를 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들어 지구상 곳곳에서 40대 지도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은 나름의 필연성을 지닌다. 그들에게는 변화에 부응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라는 시대적 요청과 부름에 호응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은 새로운 스토리를 요구하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다. 지난 1997년 43세의 나이에 영국의 희망으로 떠오른 토니 블레어의 출현은 대처리즘으로 표방되어온 보수당의 오래된 곡조에 싫증난 영국민의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블레어는 ‘제3의 길’ 이라는 새로운 미래 창출 스토리를 제시했다. 쿠데타 실패후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공수부대 장교 유고 차베스가 1998년 43세의 나이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민주행동당과 기독교민주당이 40년 넘게 번갈아가며 집권한 보수연합 지배체제의 해묵은 곡조를 바꾸라는 국민의 요구가 강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차베스 역시 남미판 제3의 길을 제시하며 민주행동당과 기독교민주당의 이중변주곡을 폐기 처분했다.

신임 대만총통으로 당선된 천수이볜(49) 역시 50년 넘게 지겹도록 계속되어온 늙은 국민당 집권세력을 갈아보자는 대만인들의 ‘바꿔 심리’ 덕을 톡톡히 보았다. 대만인들은 중국의 침공 위협에도 불구하고 분리독립주의자 천수이볜을 선택하는 ‘대만의 결단’이란 드라마를 연출, 세계의 이목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차기 러시아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47) 역시 비록 그가 옐친에 의해 지명되었을지라도 늙고 병든 옐친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르다는 점에서 50%가 넘는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지난 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각종 경제지표는 계속 악화되고 국제적 지위는 형편없이 하락했다. 각종 범죄가 창궐하고 체첸전 등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말싸움뿐이지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푸틴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체첸반군이 러시아령 다게스탄을 침공했을 때 당시 총리였던 푸틴은 맹렬한 반격을 전개했다. 체첸전을 통해 드러난 푸틴의 초강경 이미지는 무기력한 옐친에게 염증을 내고 있던 러시아인들에게 희망의 광채가 아닐 수 없었다. 모스크바의 한 여론조사기관 책임자인 알렉산드르 올손은 푸틴을 가리켜 “그는 마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길거리 갱단의 두목 같다”고 말했다. 바로 그런 점이 ‘믿을 놈 하나 없는 러시아’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푸틴을 미래를 바꿀 새로운 스토리 창출자요, 비전있는 지도자로 부각시킨 핵심이었다.

예비된 40대 파워 트라이앵글

고든 브라운(48)이 재무장관으로 재직하기 시작한 97년 이후 영국에서는 70만명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영국은 99년 3.6%의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99년 3분기 수출 실적은 지난 79년 이후 최고였다. 또 그는 실업수당만 노리고 빈둥거리는 영국 젊은이들을 일터로 내모는 등 젊은이 14만5000여명에게 새 일감을 안겼다. 뿐만 아니라 노동당 정부의 정책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기업법인세를 대폭 삭감하고 기업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에게 세금 혜택을 안겨줬다. 돈에 철저한 영국민이 브라운을 주목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블레어보다 두 살 많다. 그는 노동당 개혁을 위해 지난 97년 당내 경선을 포기하고 블레어에게 당수직을 양보했던 인물이다. 과열 경선이 개혁 무드를 깨고 모처럼 찾아온 집권 기회를 앗아갈까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블레어 이상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옵서버’는 “요즘 블레어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잘 해내고 있다는 쪽과 실망스럽다는 쪽이다. 그런데 브라운에 대해서는 모두 매우 잘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이제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브라운을 주목한다.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피가로 마가진’의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마르틴 오브리 노동장관(49)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도가 49%. 그녀는 사회당 정권이 가장 중시하는 노동정책과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추진해왔다. 또한 그녀는 고용 창출을 위한 35시간 노동제를 비롯해 젊은이들의 실업과 소수 집단의 소외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의료보험의 확대 적용 등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의 오브리는 20대부터 노동행정 전문가로 경력을 쌓아왔고, 시민사회를 중시하는 이상주의로 인해 젊은 엘리트들 사이에서 이미 차세대 총리감으로 꼽힌다.

독일에서는 부패 스캔들로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야당 기독교민주당의 새 총재 후보로 지목된 안겔라 메르켈(45)이 차세대 인물로 주목된다. 구 동독 출신의 메르켈 사무총장은 밑바닥 당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헬무트 콜 전 총재의 정치적 후계자이기도 한 그녀는 부패 스캔들에 실망해 있는 당내 과격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들을 설득해내는 수완을 발휘하며, 타이타닉호처럼 침몰하던 거대 야당 기민당을 기사회생시킬 기대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40대 정치파워의 등장이 특히 유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늙은 유럽’에 대한 ‘바꿔 심리’가 작용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그렇다면 과연 왜 40대인가?

오늘날 40대는 1950년에서 196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2차 세계대전의 격동을 치르고 나서 태어난 전세계적 베이비 붐 세대가 그들이다.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최신호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선 470만명이 40대가 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가 40대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40대는 4250만명. 전체인구 가운데 15.4%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거의 전지구적으로 공통된 양상이다.

그들은 전쟁을 경험했던 그들 부모 세대가 새 희망의 씨앗처럼 잉태해 출산한 자식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세계적인 냉전 구도에서 교육받은 세대다. 그러나 그들은 냉전의 조류에 함몰되기보다는 그 조류에 반발하고 반항하는 정신을 키워왔다. 바로 그런 이유로 40대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가능성이 다른 세대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변화의 스토리를 창안하는 것은 30대의 나이에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인 파워를 행사할 수 있으려면 일정하게 묵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너무 묵히면 썩고 마는 것이 세상 이치다. 리더십 전문가 하워드 가드너의 견해를 따르더라도 통상 묵히는 시간은 10년이 적절하다. 결국 30대에 준비하고 40대에 펼치게 되는 것이다.

현역 40대 지도자군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46세·97년 집권 당시 43세) 유고 차베스 베네수엘라대통령(45세·98년 집권 당시 43세) 천수이볜 대만총통당선자(49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당선자(47세) 고든 브라운 영국재무장관(48세) 마르틴 오브리 프랑스노동장관(49세) 안겔라 메르켈 독일기민당총재(45세)

역대 40대 집권자들

히틀러 독일총통:1889년생, 1933년 집권(당시 43세) 존 F.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1917년생, 1960년 집권(당시 42세) 박정희 한국군사최고회의의장·前대통령:1917년생, 1961년 집권(당시 43세)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1937년생, 1979년 집권(당시 41세) 빌 클린턴 현 미국대통령:1946년생, 1993년 집권(당시 46세)




주간동아 228호 (p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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