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6

..

정신대 할머니의 ‘그때 그 악몽’

  • 입력2006-03-14 13: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정신대 할머니의 ‘그때 그 악몽’
    할머니들은 고무줄을 하거나 산나물을 뜯다 일본군에게 끌려갔던 그날, 생리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아이가 일본군들에게 능욕당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 일이어서인지 할머니들은 담담하게 친구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저 듣는 우리가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슬플 뿐이다. 어떤 전쟁 영화도 이만한 반성과 충격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3부작의 완결편인 ‘숨결’이 개봉된다. 1995년 ‘낮은 목소리’가 나온 지 5년만이다.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처음 ‘낮은 목소리’는 정신대 문제에 관계하는 시민단체나 일부 영화인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프로젝트였다. 이러 저러한 영화제에 변영주감독이 나와 제작비 충당을 위해 ‘100피트 회원’ 운동을 벌일 때에도 그 결과에 대해 확신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변감독은 기획부터 완성까지 무려 8년에 걸쳐 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지내며 ‘낮은 목소리’를 3부작으로 완성했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를 ‘듣게’ 됐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이 ‘낮은 목소리’를 초대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낮은 목소리’는 한국보다 훨씬 큰 관심을 모으며 일반 극장에 배급됐다.

    ‘낮은 목소리’ 1, 2편이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인 ‘나눔의 집’에서 변감독이 바라보고 묻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온 ‘숨결’의 전반부는 낯설다. 고(故) 강덕경할머니 성묘와 필리핀 정신대 여성 방문, 시민단체의 활동 장면 등이 ‘스펙터클’하더라도 다큐멘터리의 밀도를 옅게 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윽고 할머니들이 ‘자기 이야기’를 시작할 때 관객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낮은 목소리’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의 ‘일상’을 찍었던 변감독은 이번엔 할머니들로 하여금 그 악몽 같은 기억을 되살리도록 했다. 할머니들은 고무줄을 하거나 산나물을 뜯다 일본군에게 끌려갔던 그날, 생리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아이가 일본군들에게 능욕당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 일이어서인지 할머니들은 담담하게 친구에게(실제로 영화 속에서 대화 상대자는 또다른 정신대 할머니다) 말하는 것 같다. 그저 듣는 우리가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슬플 뿐이다. 어떤 전쟁 영화도 이만한 반성과 충격을 주지 못할 것이다.

    고향 뒷산에서 언니와 함께 일본군에 잡혀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던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은 너무나 끔찍해 귀를 막고 싶을 정도다. 결국 위안소에서 심할머니는 곧 칼로 찔러도 웃게 됐고 모든 기억을 잃었다.

    할머니는 지금도 남자와 여자가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만 보면 “어이구, 저 미친 년!”하며 치를 떤다고 한다.

    3년전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김윤심 할머니는 영화를 찍다가 청각장애아인 자신의 딸이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너 알고 있었어? 알면서 왜 말 안했어?”라고 몇번씩 확인하는 김할머니, 그저 따뜻하게 엄마를 바라보며 웃는 그 예쁜 딸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다.

    할머니들은 이 땅에 돌아와서도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들은 집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거나 “병신”이라고 했다. 야만은 일본군에게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낮은 목소리’ 3부작을 찍는 동안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떴다. 한 할머니는 “아직 이뤄 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필름에, 역사에 담긴 그들의 숨결은 영원히 남아서 사람들을 일깨울 것이다. 키 크고 씩씩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변감독. 빈천한 한국 영화계에 자랑스런 감독 중 한 명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