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濠-뉴질랜드의 ‘냉전’

돈이 뭐기에 … ‘등돌린 형제나라’

濠입국 뉴질랜드 사람들 실업자수당 등 푸대접…뉴질랜드 “양국 동맹은 깨졌다” 발끈

돈이 뭐기에 … ‘등돌린 형제나라’

돈이 뭐기에 … ‘등돌린 형제나라’
밀레니엄 제3기를 맞고 있는 지금도 지구 반대쪽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을 국가수반(Head of State)으로 모시고 사는 나라들이 있다. 타스만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서 살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가 바로 그런 국가다.

양국은 한 군주를 옹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형제국가’라는 별칭에 걸맞게 지난 1세기 남짓 오순도순 살아왔다. 모국(Mother Country)인 영국을 중심으로 전쟁을 함께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협력은 물론 빈번한 문화교류와 각종 스포츠 경기를 통해 돈독한 우의를 다져왔다.

특히 뉴질랜드는 호주와의 유대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을 대외정책의 최우선으로 삼을 정도로 두 나라는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 뉴질랜드가 호주(뉴 사우스 웨일스)의 식민지로서 고래잡이 전진 기지로 이용된 적도 있어 양국의 동맹관계는 역사적-지정학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인들은 뉴질랜드인들을 ‘키위’(Kiwi)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뉴질랜드인들은 호주인들을 ‘오지’ (Aussie)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두 나라 사람들은 친숙하다. 키위는 날지 못하는 야행성 희귀새로 뉴질랜드의 국조(國鳥)이고, ‘오지’라는 애칭은 촌스런 호주인들을 일컫는 속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두 나라 국민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먼저 떨어져 나갔고, 끈끈한 형제애를 자랑하던 호주와 뉴질랜드도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미워하는 관계로까지 악화되고 있다.



지난 2월말경, 호주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게재된 ‘무너지는 양국 관계’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어보면 상대국에 대한 두 나라 국민의 감정이 얼마나 악화됐는지를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뉴질랜드 헤럴드’지 소속의 칼럼니스트 피터 칼더는 이 칼럼을 통해서 ‘뉴질랜드인들이 왜 호주와 호주인들을 싫어하게 됐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호주와 호주사람들에 대해 마음껏 비아냥댔다.

‘우린 당연히 뉴질랜드팀을 응원한다. 그리고 어떤 팀이 됐건 호주에 대적하는 상대팀을 응원한다’며 뒤틀린 심사를 털어놓기 시작한 그는 뉴질랜드인들이 왜 그렇게 형제국가인 호주에 대해 억하심정을 갖게 됐는지 호주인들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밝힌 이유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스포츠 경기 등에서 상대방을 ‘묵사발’ 만들어 놓고 헤헤거리면서 으스대는 호주 사람들은 꼴불견이다. 특히 뉴질랜드를 만나면 이길 수 있는 데까지 이겨서 자존심까지 짓이겨버리는 것도 못마땅하다. 뉴질랜드 인구가 시드니 인구보다 적은 390만명 남짓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지난 2월 중순,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호주와의 크리켓 경기 도중 뉴질랜드 관중은 호주 선수들에게 오물을 던지면서 야유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공원에 주차된 호주선수들의 자동차 타이어에 흠집을 내고 훈련중인 선수들에게 욕을 하기도 했다.

호주 선수들이 이에 대해 불쾌감을 표했지만, 이는 전적으로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가다피 외교학교(Gaddafi school of international diplomacy) 졸업생들’ 같은 세련되지 못한 호주선수들의 행동이 응분의 대가를 치른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호주로 이주한 뉴질랜드인들이 호주의 IQ 평균을 높여준다고 하겠는가.

호주 사람들은 늘 형님이라고 자처하면서 틈만 나면 이웃에 살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못살게 굴며 놀려먹기나 하는 것도 뉴질랜드인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는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행한 현상이다.

물론 이 칼럼이 ‘진담 반 농담 반’의 딴죽걸기 성격이 짙은 코믹터치의 칼럼이지만 ‘언중유골’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럭비와 더불어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크리켓 경기를 빗대 양국의 현안을 유추하게 만들면서 ‘잘난 체만 하는 호주 형님들’을 아프게 꼬집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형제국가’ 사이에 무슨 현안이 가로놓여 있기에 이처럼 아옹다옹하는 것일까. ‘곳간(庫間)에서 우애 난다’는 한국 속담은 두 나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미움의 싹이 돈 문제에서 움텄기 때문이다.

현재 호주에는 40만명이 넘는 뉴질랜드인들이 영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년 3만5000명 정도가 호주로 입국하고 있다. 문제는 40만명의 5%인 2만명 정도가 직업을 갖지 못해 호주 당국이 주는 실업자 수당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익 우선 정책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존 하워드 호주 총리가 그냥 있을 리 없는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워드 총리는 지난 1월 뉴질랜드 출신 실업자들에게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호주 입국 후 2년 동안은 실업자 수당을 신청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실업수당뿐만 아니라 의료카드(메디케어) 발급과 자녀교육비 면제 등 모든 사회보장 혜택에도 제한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양국은 한쪽의 시민권을 갖고 있으면 어느 쪽에 살든 자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해왔다.

사정이 급해진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뉴질랜드인들이 받고 있는 사회보장 혜택을 보상하기 위해서 매년 1억1900만 호주달러를 호주에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액수는 두 나라가 오래 전에 체결한 ‘사회보장 협정’에 근거해 산출한 금액의 절반에 해당할 뿐이어서 하워드 총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심사가 뒤틀린 클라크 총리가 옹졸한 ‘형님국가’에 한바탕 퍼부었다.

“타스만 해협을 오가는 양국인들의 왕래를 통해서 호주는 이미 많은 이득을 취하고 있다. 한 사람의 성인을 건강하게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데 드는 돈이 얼마냐? 호주에서 열심히 사업을 하거나 일하고 있는 38만명의 뉴질랜드 출신 인재들을 위해서 호주가 돈 한푼 쓴 적이 있느냐?”

뉴질랜드 국적의 실업자들 중에는 상당수의 한국인들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92년부터 불기 시작한 뉴질랜드 이민 붐으로 인해 많은 한국인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하게 됐다. 그러나 뉴질랜드가 워낙 작은 나라인데다 경제불황까지 겹쳐 이민생활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한국인들이 호주로 건너오게 된 것이다.

한편 뉴질랜드로부터 전해오는 소문에 의하면, 일부 한국인들은 이민의 문호를 닫아버린 호주 이민을 위해 뉴질랜드를 징검다리삼아 3년을 기다렸다가 호주로 건너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뉴질랜드에 3년을 거주하면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고, 그 시민권을 이용해서 호주로 입국하면 자동적으로 호주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트랜스-타스만 조약을 이용한 것이다.

클라크 총리의 반발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 1세기 동안 혈맹관계를 유지하면서 공동방위 정책기조를 유지해 왔던 ‘호주-뉴질랜드 동맹’에 얽매이기보다는 뉴질랜드 나름대로의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클라크 독트린’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두 나라는 1, 2차 세계대전은 물론이고 한국전과 월남전에 함께 참전하여 공동작전을 펼쳤다. 최근에는 동티모르에 다국전군을 파병하면서 뉴질랜드 전투병력 800여명이 호주군 사령관 휘하에 배속되기도 했다.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두 나라의 방위 전략이 다를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호주가 점진적으로 아시아의 일원으로 거듭 태어나는 듯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뉴질랜드는 남태평양 기질을 더 많이 갖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ANZUS (미국, 호주, 뉴질랜드 방위협정) 협의사항인 F16 전투기 도입계획의 취소까지 검토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자존심을 건드린 호주쪽으로 공이 넘어온 형국이다. 뉴질랜드의 자존심은 그동안 그들이 성취해온 일들을 살펴보면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으며, 지난해 11월 총선을 통해 여성끼리 정권교체를 이룬 것도 세계 최초다.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것도 세계 최초이며, 최근에는 미국 이외의 나라로는 처음으로 아메리카컵 요트대회에서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3월2일과 3일 이틀 동안 시드니에서 만난 양국 정상들은 서로간의 타협점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양국 정상으로서 첫 대면을 하는 두 사람은 시종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여 별다른 성과 없이 회담을 끝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그 셰리단 오스트랄리언지 외신부장의 말대로 ‘오지와 키위는 갈라서려야 갈라설 곳이 없는 지정학적 혈맹’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해빙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26호 (p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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