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6

2000.03.23

강제노역-착취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제3세계 출신 10만여명, 대기업 中企 심지어 가정집서 인간 이하 대우로 신음

  • 입력2006-03-08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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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노역-착취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발하는 광채는 눈부시다. 자유 인권 평등이 그 빛을 수놓는다. 하지만 그 빛이 닿지 않는 한쪽 구석에서는 옛 노예제의 망령이 미소를 짓고 있다. 강제 노역과 착취, 저임금과 폭압의 음습한 그늘이 미국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죽음의 암갈색으로 도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에 사는 멕시코 출신 로게리오 카데나는 연방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14명의 부녀자에게 강제 매춘을 시킨 죄다. 14명 가운데에는 14세짜리 소녀도 끼여 있었다. 모두 멕시코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밀입국한 여인들이다.

    목숨을 걸고 넘어온 미국 땅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총부리였다. 카데나의 매춘 조직에 걸려든 것이다. 플로리다에 퍼져 있는 9개의 매음굴이 이들의 강제 노역장이었다. 카데나 조직이 이들을 팔아넘기고 챙긴 돈은 100만달러. 이 사건의 담당 판사는 “13년간 법정에 섰지만 이처럼 비열하고 증오스러운 사건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카데나 사건은 미 전역에서 보고되고 있는 강제 노동착취 현장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미 국무부와 법무부, 노동부가 합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공장과 소기업, 서비스업체뿐 아니라 심지어 가정집이나 농장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판 노예는 무려 10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 법무부 부차관보 토머스 페레즈는 “1989년 처음 법무부에 들어갔을 때 이런 사례는 고작 1년에 2건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 2월 내가 법무부를 떠날 즈음에는 1년 평균 100건 이상이 터져나왔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3년 전에는 18명으로 구성된 밀입국 알선 조직이 귀머거리 멕시코인 50명을 ‘밀수입’해 뉴욕에서 액세서리를 팔게 하다가 적발됐다. 98년에는 뉴저지의 한 여인이 필리핀 출신 밀입국 여성을 집에서 하녀로 부리다가 죽여버린 사건도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 하녀는 난방도 안되는 지하실에서 생활하면서 하루 16시간 일을 했고 가혹한 체벌에 시달렸다.



    미국에서 노예제를 폐지한다는 수정헌법 13조가 제정된 것은 이미 135년 전의 일. 그러나 자본주의의 최정상에서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구가하고 있는 21세기초 미국에는 현대판 노예제의 망령이 부활하고 있다. 이런 사회악이 제도화되다시피 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1980년대의 국제 사회적 배경이다. 우선 제3세계 국가들의 내전과 경제 붕괴로 새로운 이민 대열이 대거 미국 땅으로 몰려들었다. 상대적 으로 느슨했던 미국의 국경 통제도 멕시코 등지로부터 밀입국자들의 미국행 발길을 재촉했다. 또 마약 밀매업의 원천 봉쇄로 일거리를 잃은 밀매업자들이 불법 이민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뛰어든 것도 미국의 현대판 노예를 양산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중반, 국제 불법 이민조직은 가짜 서류를 위조해 ‘인간 화물’을 미국에 ‘밀수입’하면서 두당 3만5000달러씩을 챙겼다. 이민자가 이 돈을 못낼 경우 강제 노역에 동원했음은 물론이다. 지난해 18명의 불법이민 조직이 이런 식의 노예 거래로 거머쥔 돈은 2억달러에 달한다. 이들은 피자를 주문하듯 인도와 파키스탄 등지에 7000명의 노예를 주문했다.

    지난 1월 시애틀 항구의 철제 컨테이너 안에서 발견된 중국인 밀입국자 18명은 1인당 5만달러를 지불하기로 약속하고 2주에 걸친 죽음의 항해를 했다. 3명은 미국 땅을 밟기도 전에 컨테이너 안에서 죽었다. 밀입국비 5만달러는 미국에 와서 번 돈으로 갚기로 한 일종의 선불금이었다.

    역시 지난 달에 있었던 일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한 여성은 뉴욕 맨해튼의 한 고위 외교관 집에서 하녀로 일하다가 끝내는 노예생활을 참지 못하고 ‘주인’인 외교관 부부를 고소했다.

    노예제를 방불케하는 착취 노동의 또다른 현장은 태평양 북마리아나 군도의 사이판 섬. 5만여명의 외국인 여성 근로자들이 미국령 사이판의 의류 제품 공장에서 시간당 3달러5센트의 저임금과 하루 12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5만여명은 마리아나 군도의 총인구 7만명의 3분의 2에 육박하는 숫자. 대부분의 공장 소유자는 중국인과 한국인. 이 공장 주인들과 노동자 제공 계약을 맺은 브로커들은 중국 필리핀 방글라데시 태국 등에서 여성 인력을 수입해온다.

    이 사이판의 제품 공장에서 생산되는 옷은 갭, 타미 힐휘거 등 유명 상표 제품들로 물론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다. 계약자들과 생산업자들은 허위광고 및 부당 이익, 시간외 근무수당 미지급 등으로 지난 5년간 무려 1000여 차례나 소환장을 받았고, 노동착취 감시(Sweatshop Watch) 등 4개의 인권 단체들로 부터 수차례 고소를 당했지만, ‘사이판의 옷 공장’은 지금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가동중이다. 사이판이 미국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지역이라는 점이 가장 큰 방패다. 사이판산 유명 의류제품 생산량은 이미 기존 대량 생산지인 말레이시아와 자메이카를 앞지르고 있다.

    미국 영토 밖으로 눈을 돌리면 노동 착취의 피해는 더욱 심각해진다. 생산지가 미국 바깥이고 노동자가 미국시민이 아닐 뿐, 미국 시장을 위해 미국상표 제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는 미국경제권 안에서의 경제행위와 다를 바 없다.

    미국 시민단체들의 감시망에 걸려든 대표적인 사례는 게스, 월트디즈니, 나이키, 빅토리아 시크릿 등 대기업 의류제품 생산 공장들이다. 월트디즈니의 경우 아이티 공장에서 ‘101마리의 강아지’ 옷을 생산하고 있는데, 19달러99센트짜리 옷 한 벌을 불과 6센트의 생산 원가로 만들어낸다.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시간당 57센트. 주 48시간 일해야 고작 손에 쥐는 것은 27달러27센트이다. 3인 가족의 최소 생활비 3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혹한 노동력 착취다.

    대형 유통체인업체인 월마트와 K마트, J.C.페니는 니카라과에서 공장을 가동한다. 무역 자유지역 내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15센트 미만. 하루 12시간의 노동에, 옷벗기고 몸 수색하기, 성추행 등 온갖 악조건이 횡행한다. 두 갓난아이의 일주일분 우유값 4달러8센트를 벌려면 아이 엄마는 시간당 23센트를 받아가면서 꼬박 이틀 동안 월마트의 의류 바느질을 해대야 한다.

    중국 동남해 연안의 나이키 공장. 평균 임금은 시간당 16센트 이하. 일주일을 벌어봐야 6달러92센트이고, 1년이래야 358달러84센트이다. 하루 11~12시간 작업에 투입되며 일주일에 노는 날은 없다. 하루라도 쉴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한다. 작업시간 중 대화는 일체 금지. 임신부는 해고되고, 정해진 시간 안에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무임금으로 할당량을 마저 만들어 낼 때까지 작업 라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멕시코 국경 아쿠나 지역의 제봉공장에서 시간당 57센트를 받고 디즈니의 라이온 킹 인형을 꿰매는 멕시코 여인들의 꿈은 미국의 최저 임금인 시간당 5달러15센트라도 받는 것이다. 결국 멕시코 여인의 발길은 멕시코 국경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미국 밀입국은 물론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설혹 목숨을 건져 국경을 넘는다 해도 그녀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이 아닌 사창가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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