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6

..

누구를 위한 소보원인가

쥐꼬리 예산에 전문인력 태부족, 분쟁조정 한계…일부선 “해체” 주장도

  • 입력2006-03-02 15: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누구를 위한 소보원인가
    3월9일 서울 염곡동 한국소비자보호원 1층 소비자정보센터. 방문객을 위한 상담창구와 전화부스는 불이 나고 있었다. 수화기에다 대고 ‘잠깐만 끊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 뒤 머리에 쓴 이어폰으로 다른 전화통화를 하는 직원도 있었다. 그는 다른 손으론 상담접수 서류를 꾸미고 있었다. 34명의 직원들은 보통 두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한다.

    기자가 담당과장과 만나고 있는데 국회의원 비서관이 전화로 그를 찾았다. “여기 쭛쭛쭛의원 사무실이오. 우리가 아는 사람이 피해를 봤는데 소보원이 좀 빨리 처리해줘야겠는데….” 과장이 “기자가 찾아와서 인터뷰 중”이라고 하자 그 비서관은 “인터뷰는 나중에 하고 이 전화부터 받아요”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이처럼 바쁘다.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소보원을 ‘애타게’ 찾는다. 소비자 주권이 강조되는 때라 소보원에 거는 소비자들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인사-예산권은 모두 정부에

    그러나 최근 일부 소비자단체에서 소보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나오고 있다. 소보원을 지금 당장 해체하라는 주장도 있다. 소비자보호원은 과연 소비자에게 어떤 존재인가.

    먼저 한국소비자보호원 홈페이지(www.cpb.or.kr)와 관계자의 설명을 통해 소보원이 어떤 곳인지 스케치 해 봤다. “소보원은 87년 소비자보호법에 의해 설립된 정부출연기관이다. 원장은 대통령이, 임원들은 재정경제부 장관이 임명한다. 올해 예산은 100억여원, 직원은 250명 정도다. 인사-예산권을 모두 정부가 갖고 있다.



    소보원은 소비자상담 및 피해구제, 분쟁조정, 정책연구, 소비자안전, 시험검사를 수행한다. 한 마디로 소비자문제의 ‘종합백화점’ 같은 곳이다. 99년 1년간 소비자상담은 25만여건, 피해자구제는 1만3844건, 구제신청건 대비 조정실패율 20%, 정책연구 부문에선 제조물책임법 입법을 이끌어낸 것이 주목할 만한 성과이며 언론에 공개되는 소비자안전과 관련 제품시험 결과나 소비자문제 연구조사 발표는 80여건에 이른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나오는 이들 발표를 통해 소보원은 우리 사회에서 소비자운동의 방향을 잡는다. 운전학원, 이동통신업체, 의류업체, 콘도, 부동산중개업소, 가전제품업체, 인터넷기업, 식품회사 등 거의 모든 업종이 소보원의 도마에 올려진다. 소보원은 기자들끼리 쓰는 말로 여론을 선도하는 ‘영양가’ 있는 기관 중 하나다.

    이렇듯 화려한 면모를 자랑하는 소보원이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다. 소보원은 그들의 말대로 전문성과 체계성을 갖춘 국내 유일의 소비자보호기관이지만 수도권 이외 지방소비자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1995년 소보원에 접수된 17만3000여건의 피해구제신청 중 서울-인천-경기지역 신청건수가 16만1000건으로 93.4%를 차지했다.

    소보원이 내놓는 각종 실험-조사-발표관행에 대해서도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2월11일 소보원은 서울시내에서 재배된 배추에서 인체에 유해한 아연이 일일 섭취허용량인 6000㎕/㎘을 초과해 7155㎕/㎘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 내용은 일부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뤄졌다. 그러나 이는 소보원의 큰 착오였다. 실무자가 ㎎을 ㎕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1000을 곱해야 하는데 100을 곱했다는 것이다.

    한국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소보원이 낸 조사자료를 게재한 언론을 상대로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청구하는 사례가 종종 들어온다고 한다. 지난 1월말 많은 언론사들은 생활한복이 햇볕이나 마찰에 약하다는 소보원의 조사결과를 보도했다. 해당 한복제조업체는 그중 한 언론사에 대해 반론보도청구를 했다. “불량품이 아니다. 생활한복은 색이 바랜 느낌을 주도록 제조한다. 제조기법상의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이 언론사는 반론보도를 받아줬다. 언론중재위원회 관계자는 “전혀 근거없는 허위사실은 반론보도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3월9일 오후 2시 서울지법 559호 법정에선 소보원이 피고소인이 된 두 건의 소송에 대한 공판이 동시에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소보원은 “시판두부 22종 중 18종에 안전성 논란이 있는 유전자재조합성분이 들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때 소보원이 낸 보도자료에 이름이 적시된 풀무원과 13개 두부업자들이 “소보원의 섣부른 발표로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낸 것이다. 풀무원이 요구한 손해배상금은 106억원. 이날 법정을 찾은 풀무원 관계자는 소보원 발표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소보원에 보낸 의견서를 공개했다. ‘유전자재조합식품 검증과 관련해선 허용한계치를 정하는 정량분석방법이 개발 중에 있다. 각국은 검사결과 판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소보원 내부에서 보는 소보원의 문제는 무엇일까. 소보원 한 관계자의 말을 요약해 본다.

    “유전자재조합이나 환경호르몬 문제는 첨단검사시설을 요구한다. 그러나 올해 검사장비 도입에 책정된 예산은 2억원뿐이다. 기업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번 배추실험 실수도 일반직 직원이 검사하다 그렇게 된 것이다. 전문인력은 아직 부족하다. 의료분쟁 담당자의 경우 의사는 한 명도 없다.

    돌발적인 소비자문제가 터져도 소보원은 기민한 대응이 어렵다. 관련예산을 일일이 재경부에 결제받느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건물까지 대주겠다며 소보원 지방지사 설립을 환영한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 갈 사람이 없다.”

    1년치 예산이 걸려 있는 풀무원과의 소송에서 소보원은 수임료가 없어 변호사를 구하지 못했다. 민간 환경단체소속 변호사가 무료 변론해 주고 있다. 소보원 창립 당시 정부는 직원들에게 국가출연기관 최고대우를 해줬다. 그러나 이제 이들의 대우는 공무원보다도 못해졌다. 소보원 직원들은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소보원의 한 직원은 정부에 불만을 터뜨렸다. “정부는 소보원에 점점 인색해지고 있다. ‘출연기관은 자급자족하라’는 것이 정부 원칙이다. 정부는 소보원에도 이를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소비자를 보호하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가.”

    녹색소비자연대 이덕승사무총장은 한 발 더 나가 소보원의 해체를 주장했다. 그에게 그 이유를 들어보았다.

    “정부는 원론적으로 말해 소비자운동을 정부경제정책의 틀 안에서 ‘관리’하기 위해 소보원을 만들었다. 소보원은 소비자상담창구를 독점함으로써 소비자정보를 독점하고 있다. 소보원은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의제 설정도 독점한다. 정부는 소보원을 통해 소비자운동이 너무 ‘튀지’ 않도록 ‘원격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소보원의 ‘위상’도 절묘하다. 정부는 소보원을 통해 소비자운동을 지원한다고 생색은 내면서 국가출연기관이기 때문에 직접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 즉 소비자문제에 관한 한 한국에선 행정기관에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이는 일본의 ‘국민생활센터’라는 조직구조에서 따온 것으로, 소비자보호기관을 대통령 직속에 두고 있는 미국과 대비된다.

    소보원은 기업조사도 할 수 없고 소비자피해구제와 분쟁조정기능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소비자보호를 위한 서비스와 전문조사의 수요는 엄청난데 이를 소보원이라는 한정된 인력과 예산에 묶어두는 것도 문제다. 이러니 소비자와 기업으로부터 ‘불편하다’ ‘표적 조사다’라는 불만이 나온다.

    새로운 소비자시대를 맞아 소보원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한다. 대신 정부는 동네마다 소비자보호센터를 만들어 상담-중재기능을 민간 소비자단체에 맡기면 된다. 그럴 경우 국가가 틀어쥔 소비자정보가 개방된다. 소비자상담이 소비자운동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날 것이다. 큰 규모의 분쟁은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법원에 맡기면 소비자보호에 훨씬 효과적이다.

    정부는 소보원이란 어중간한 장치 뒤에서 나와 소비자문제를 직접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소보원은 정책 전문기관으로 변화되는 게 나을 것 같다.”

    또 전화불통 … “으! 속터져”

    ‘접속’ 하늘의 별따기 … 인터넷 상담 답변도 ‘함흥차사’


    정현규씨는 “어떻게 하루종일 통화가 안될 수 있느냐”며 1월10일 한국소비자보호원에 항의했다. 전화불통. 이는 소보원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불만으로 상담원이 늘어난 지금도 계속된다. 기자는 3월8일 오후 7시20분 소보원 소비자정보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야근상담중이니 기다리라’는 안내음이 10여회 반복됐다. 잠시 후 ‘통화가 폭주하니 다시 전화하라’는 안내음이 2회 나오더니 뚝 끊겨 버렸다. 기자는 계속 전화했지만 결국 이날 오후 8시 상담업무가 끝날 때까지 상담원과 통화하는 데 실패했다.

    소보원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피해구제신청을 받는다. 그런데 요즘엔 소보원의 홈페이지가 왜 그리 속도가 느리고 신청이 안먹히느냐며 불만을 터뜨리는 네티즌들이 자주 보인다.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네요. 벌써 두 번째… 2일 전… 지금. 복구 부탁드립니다”(강형인), “피해구제 및 소비자보호법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함흥차사입니다”(이경철), “무슨 오류가 그리도 많은지, 조회속도도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조금만 ‘업’하실 생각은 없습니까”(이수경). 허인구씨는 등기우편으로 자료를 보내 상담을 신청했으나 “답변이 없다”고 말했다.

    김민성씨는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그런 말은 하도 들어서 훤하다는 듯 중간에 자르는 상담태도에 몹시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으로부터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 소비자는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는가.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