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9

2000.01.27

돈도 벌고 스키도 타고 “오, 예~”

스키장 아르바이트 경쟁률 10:1 ‘인기 짱’… “몸은 고달퍼도 내 용돈 내가 번다”

  • 입력2006-06-27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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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도 벌고 스키도 타고 “오, 예~”
    “안전바 올리시구요, 폴대 찍지 마시구요, 천천히 일어나시구요, 재미있게 타세요.” 홍천 대명스키장 초심자 리프트 하차장. 설원으로 내려앉는 댄스음악 사이로 테너급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벌써 5시간째.

    한 남자의 목소리가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되고 있다. 20초마다 터치는 구호. 하루에도 수천번씩 외친다. 귓속을 파고드는 팔봉산 칼바람. 귀와 얼굴은 벌겋게 언지 오래다. 목이 아파온다. 꿀꺽. 마른 목을 축이려 침을 삼킨다. 음악에 맞춰 몸도 흔들어 본다. 그리곤 또다시 외친다. “안전바 올리시구요….”

    올해 대학 1학년인 김진민군. 그는 스키장 리프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친구들은 그를 무척 부러워한다. 돈도 많이 벌고 스키도 마음대로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그에게 자주 물어 본다. “자리 하나 없니? 있으면 나좀 소개시켜 줘.”

    스키 패트롤 윤준호군. K대 체육과 2학년. 스키 경력 9년의 베테랑. 빨간 스키복에 등 뒤엔 구급용 배낭을 메고 슬로프를 누빈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스키장에서 인기 ‘짱’이다. 그는 친구들과 만날 때면 으쓱해진다. 그가 ‘알바’(신세대들은 아르바이트를 줄여 ‘알바’라고 부른다)를 하고 있는 스키 패트롤 덕이다. 그도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 스키를 질리도록 탈 수 있고 돈도 듬뿍 받기 때문이다.

    “숙식제공, 월수 65만원, ‘몸파는’ 아르바이트.” 스키장 ‘알바’가 신세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 차원을 넘어 못해서 안달이다. 스키장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가 나가면 구름처럼 몰린다. 경쟁률 10대 1은 보통. 왜 그들은 스키장 ‘알바’를 하려고 안달할까.



    스키장 ‘알바’를 구하러 다녔던 김영준군(21·H대 1학년)의 말.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죠.

    ‘알바’ 자리도 많지 않은데 스키장 알바를 하면 돈 안들이고 스키도 배우니 얼마나 좋아요.”

    스키장엔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많다. 겨울철에만 한시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정식 직원을 고용하기 힘들다. 따라서 핵심 업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르바이트 학생들로 충원한다. 홍천 대명비발디파크 스키장의 경우 아르바이트만 900여명. 인원이 많은 만큼 아르바이트 분야도 다양하다. 렌탈, 패트롤, 리프트, 강사, 발권, 제설, 주차, 요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알바’들의 근무시간은 대략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한낮을 제외하고는 밖의 기온은 영하 10도 안팎. 오전 스키가 시작되기 전 20~30분간 안전교육과 서비스교육을 받는다. 교육이 끝나면 각자 위치로 돌아가 간단한 장비점검을 하고 근무에 들어간다.

    스키 알바의 꽃인 패트롤의 경우 오전 8시 조회가 끝나면 군대식 체력훈련을 한다. 스키를 신고 슬로프 중턱까지 산행하는 것. 강한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패트롤은 체력과 스키실력이 뛰어나야 한다. 대개 스키경력 3년차 이상의 고수들. 슬로프 오픈에 앞서 패트롤들이 먼저 슬로프와 펜스를 점검한다. 그들은 하루종일 슬로프에서 산다. 얼굴이 햇볕에 타 대부분 구릿빛. 이들은 항상 압박붕대 삼각건 부목 등의 장비를 등에 지고 다닌다. 보수는 하루에 2만7000원 선. 힘든 만큼 다른 ‘알바’들에 비해 임금이 센 편이다. 패트롤이 되기 위해선 스키실력과 체력이 뛰어나야 하기 때문에 대학 체육관련 학과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패트롤과 함께 인기를 끄는 ‘알바’는 스키 강사. 스키 강사는 대학 체육학과 학생들이나 스키동호회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고급인력들이다. 한 사람이 대개 7명의 교육생을 맡아 강습한다. 교육생은 개별로 모집하지 않고 카운터에서 접수한 뒤 강사에게 이관한다. 교육생이 없는 날은 ‘땡 잡는 날’이다.

    스키 강사들의 애환도 많다. 대학 동아리에서 활동하다 스노보드 강사가 된 배경희양(Y대 체육학과). “‘폭탄’(스키운동 신경이 매우 느린 사람) 맞았을 때가 가장 허탈해요. 두세 시간 힘들여 강습했는데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다고 화낼 수도 없고. 어떤 때는 제가 울고 싶다니까요.”

    스키 강사가 되는 길은 두 가지. 강사 자격증을 따거나 스키학교에서 공개 테스트를 받아 합격하는 것. 93년부터 스키 강사를 한 최무용씨(Y대 사회체육과 졸)는 베테랑급 강사. 그는 출중한 실력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 일당 2000~3000원을 더 받는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패트롤이나 스키 강사가 되기 위해 첫해엔 거의 무료봉사다. 숙식만 제공받고 급료는 거의 없다.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단다.

    리프트 패트롤 강사 제설 등이 밖에서 근무하는 반면 실내에서 근무하는 ‘알바’들도 많다.

    “화장실은 왼쪽으로 가시고요. 담배 말입니까? 오른쪽 자판기에 있습니다. 렌탈은 앞쪽에 있습니다.” 손님들의 끝없는 질문에 온종일 입으로 서비스하는 사람들도 있다. 종합안내가 바로 그들. 안내 도우미 임보림씨(23)는 “하루종일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만 수백번 하지요. 웬만한 인내심이 없으면 하루도 견디지 못해요. 어떤 때는 손님들의 화풀이도 받아줘야 해요”라고 말한다. 스키를 빌려주는 렌탈도 몸으로 때우기는 마찬가지. 하루종일 서서 근무한다.

    관동대학교 1학년인 강봉수군. 그는 렌탈에 근무한다. “가장 즐거웠던 때요? 연예인들이 왔을 때요. 영화배우 박모씨가 렌탈하러 왔을 때 사인도 받았어요. 축구선수 하모씨도 봤다니까요. 그럴 땐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풀려요.” 신세대답다.

    알바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알바들 전용숙소가 따로 있다. 컨테이너 박스 크기만한 공간에 5명 정도 공동생활을 한다. 물론 남녀 기숙사는 분리돼 있다. 같은 분야에 근무하는 사람들끼리 한방을 쓴다. 힘들 때면 소줏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논하기도 한다. 공부하는 학구파도 있다. 실제로 조그만 책상에 걸터앉아 산업안전관리사 등 시험문제를 풀며 자격증 준비를 하는 알바들도 많다. 이들은 이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익힌다. 식사는 직원들과 함께 한다. 일식 삼찬. 음식은 잘 나온다.

    기숙사에서 철저히 지켜야 할 금기가 있다. 남녀혼숙 금지가 바로 그것. 이를 위해 순찰대가 따로 있다. 혼숙하다 걸리면 즉시 ‘해고’.

    이밖에도 독특한 ‘알바’들이 많다. 렌탈스키를 반출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감시맨, 자판기 동전만 수거하는 ‘동전털이맨’, 스키부츠 신은 콘도 입장객 출입을 차단하는 ‘막자맨’….

    대명레저에서 아르바이트를 관리하는 원문규씨는 “ 아르바이트 공고는 대개 10월경에 나갑니다. 경력자 우선으로 뽑습니다. 성실성에 가장 높은 선발 점수를 주고 서비스정신 등을 고려해 뽑습니다. 시즌이 끝날 때쯤 되면 스키를 마음껏 탈 수 있습니다”고 말한다.

    스키가 끝난 오후 10시30분. 제설 ‘알바’들이 밤새 눈을 뿌리기 위해 슬로프를 올라가고 있다. 하얀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설원엔 밤새 제설소리만이 팔봉산을 지키고 있었다.

    “알바? 안해본 게 없어요”

    6년간 20여종 경험… “돈 벌어서 유학갈 거예요”


    신문배달 우유배달 서빙 바텐더 보험세일즈 백화점판매원 주방장보조 세일도우미 골프장경기도우미…. 그의 손발이 거쳐간 직종만도 20여개. 아르바이트에 관한 한 ‘천당에서 지옥까지’ 모두 경험했다.

    강혜주씨. 스물네 살 용띠. 부산예술문화대학 2학년. 현재 스키장 리프트 안내원. 사람들은 그를 ‘알바(아르바이트) 도사’라 부른다. ‘알바’에 관한 한 안해본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기 때문. 처음 ‘알바’에 발을 디딘 것은 고2 때. 외삼촌이 커피숍을 하는 친구 따라 커피숍에 놀러갔다가 심부름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뒤 ‘돈 만지는 재미’에 빠져 틈만 나면 ‘알바’를 했다.

    대학 진학 뒤엔 학비와 용돈까지 스스로 조달했다. 그렇다고 집안이 어렵지도 않다. 그러나 부모님에게 손벌리기 싫어 줄기차게(?) ‘알바’를 했다.

    “경험을 쌓기 위해 ‘알바’를 하죠. 알바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잔머리 굴리지 말고 성실하게 일해야 해요. 일단 신용을 얻으면 페이도 쑥쑥 늘죠.”

    그가 추천하는 최고의 ‘알바’는 골프 경기 도우미. 숙식 제공에 월 150만원 정도 번다. 공기 좋고 운동도 되고 보수 좋고 ‘일석삼조’란다.

    “돈벌어서 일본 유학갈 거예요. 컴퓨터그래픽 전문가가 될 거예요.”

    그는 ‘알바’도 목적을 갖고 해야 힘도 덜 들고 보람도 크다고 말한다.


    스키장에 웬 “군고구마 사려”?

    ‘고구마 알바’ 노진완씨… “저도 정식 알바 직원이에요”


    “앗! 군고구마다.” 홍천대명스키장 2층 곤돌라커피숍 베란다. 한 사내가 고구마를 굽고 있다. 빵모자에 펑퍼짐한 털바지를 입는 전통(?) ‘군고구마 유니폼’ 복장이 아니다. 말끔한 스키파카에 황토색 부츠까지 신은 공식 유니폼패션이다. 멋쟁이 군고구마 아저씨의 이름은 노진완(23). 대학 2학년이다. 그가 군고구마를 굽고 있지만 자신의 사업(?)은 아니다. 회사에 소속된 정식 아르바이트다.

    “스키좀 배울까 하고 왔는데 제 보직이 군고구마 굽는 거래요. 아르바이트에 귀천이 있나요 뭐. 멋지게 스키타며 아르바이트를 하지는 않아도 따뜻해서 좋아요.”

    그의 집은 목포. 목포에선 눈구경하기도 힘들다. 군 제대 뒤 눈구경도 실컷하고 돈도 좀 벌까 해서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하루종일 고구마만 굽는 게 심심하다. 그래서 고구마 구우며 단어도 외우고 컴퓨터 공부도 하며 즐겁게 보낸다.

    “손님들이 가끔 고구마 굽는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요. 반말도 하고 막 대하기도 하고. 반말하는 손님이 제일 싫어요.”

    보직상 스키타는 것을 구경만 하지만 남들보다 좋을 때도 있다. 바로 연예인들의 스키장 공연 때다. 2층 영업장(?)에서 보면 자리다툼할 필요도 없고 불이 있어 따뜻해 단연 VIP자리다.

    “지난번엔 가수 유승준이 왔는데요, 와! 캡이더라구요. 그런 공연은 처음 봤죠. 위에서 보니까 죽이더라구요. 어, 추워. 오늘은 가수들 공연 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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