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9

2000.01.27

머피 갤러리는 상류층 사교장?

서울 유엔빌리지 전망 좋은 화랑… 政財界· 예술계 인사들 북적

  • 입력2006-06-27 11: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머피 갤러리는 상류층 사교장?
    “지난 번 엘렌 킴 머피 갤러리 파티에 가셨어요?”

    요즘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인사처럼 오고가는 말이다.

    최근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정재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엘렌 킴 머피 갤러리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 꼭대기에 있다. 교통이 불편하지만 평일에도 웬만한 인사동 화랑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중 상당수는 전시보다는 갤러리 자체를 보러 온다.

    엘렌 킴 머피 갤러리에 관련된 소문은 다양하다. 원래 권력층의 은밀한 파티를 하던 곳이라느니, 유력 인사들이 모여 새로운 상류사회를 이루고 있다느니, 대표인 엘렌 킴이 권력층과 어떻게 가깝다느니 하는 것 등이다. 돈만 내면 누구나 갤러리를 빌려 파티를 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소문 중 일부는 허황됐지만 일부는 근거가 없지않았다.

    이 갤러리의 원 소유주는 일본인. 미니멀하면서 건물 안에서 방과 길과 정원이 만나는, 이야기가 풍부한 공간으로 설계됐다. 건물 2, 3층에서는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북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데 와이드 스크린으로 펼쳐진 서울 풍경에 누구나 감탄사를 터뜨릴 정도다. 그래서 잡지나 화보 담당자라면 한번쯤 촬영해보기를 원하는 장소로 꼽히기도 한다.



    “권력층의 은밀한 파티장소” 입소문

    이 갤러리 김은애(엘렌 킴)대표는 89년 동숭아트센터 운영에 참여하는 것으로 미술계와 인연을 맺었다. 원래 큐레이터 겸 출판 에디터로, 한번 이혼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92년 당시 모토롤러 한국 지사장이 었던 테리 머피씨와 재혼하고 9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카’라는 화랑을 인수했다. 곧 이 화랑은 엘렌 킴 머피 갤러리로 이름을 바꿨고 97년 김대표는 지금 건물에 장기 임대로 같은 이름의 화랑을 열었다. 문을 열기 전까지 이곳에는 전기선도 없었다고 한다. 김대표는 “한 번도 사람이 산 적이 없던 곳”이라고 말했다.

    김대표가 사교계 화제의 중심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청담동 멋쟁이들의 유행이 된 와인파티, 시가파티를 처음 시작하기도 했던 김대표는 밸런타인, 성탄절, 새해 등에 맞춰 1년에 12회 이상 실내를 바꾸고 모임을 열어 엘렌 킴 머피 갤러리의 이름을 알렸다. 남편 머피씨가 한때 시카고의 코튼 클럽에서 콘트라베이시스트로 활동해서 재즈 팬이 된 김대표는 한 달에 한 번씩 재즈 라이브 공연도 연다. 재즈 가수 윤희정씨가 김대표의 고교 동창으로 이곳에 가장 자주 오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김대표는 특히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 돕기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큰 파티는 대개 자선모임이거나 작가의 작품설명회를 겸한다.

    파티에 참석했던 한 방송인은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분위기가 외국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말했다. 또한 파티에 초청됐던 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100명 정도 참석했는데 알 만한 사람들이 많았다. 재벌회장 인척 등 재계 컬렉터들과 교수들, 디자이너들, 연극인과 방송인 등이 왔다”고 전한다. 또 주한 외교관들과 구치, 포드 등 외국 기업 한국지사 대표 등도 엘렌 킴 머피 갤러리의 손님들로 꼽힌다. 패션 런칭쇼 같은 대관 형식의 파티도 간혹 열리는데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기금마련 파티도 ‘청소비만 내고’ 이곳에서 열렸다.

    미술계 내부에서 엘렌 킴 머피 갤러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특히 기획전으로 열린 ‘90년대의 정황전’ 관계자들 사이에서 갤러리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란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한 작가는 “화상으로서 작품을 팔겠다는 자세가 분명하고 열성적인 것이 맘에 든다”고 말한다. 한 미술평론가는 “모임에 참석했다가 그림 보증섰다는 말을 들을까봐 아예 안간다”고 했지만 한 화랑 대표는 “상류층을 겨냥하는 전략이지만 거래되는 작품의 수준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엘렌 킴 머피 갤러리의 작가 감상 모임의 경우 식사비(3만~5만원)를 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고 자선 모임도 공개돼 있다. 이곳을 잘 아는 한 인사는 “그림보다는 누구와 친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찾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수많은 상업 화랑 중 하나일 뿐인 엘렌 킴 머피 갤러리가 이처럼 ‘선택받은 사람들의 상류 사회’로 주목 받게 된 과정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속물적 자화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친한 사람들 불러 파티해요”

    많을 땐 1백여명 모여… “보통사람도 오세요”


    인터뷰를 위해 엘렌 킴 머피 갤러리를 찾았을 때는 화랑 소장전을 겸한 상설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컬렉션이 500여점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해 연말 열렸던 ‘90년대의 정황’전 중 일부도 소장 작품으로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마침 2층 전시장에서는 한 의류회사의 패션 카탈로그를 촬영하느라 시끌벅적 했다.

    3층에 관장 김은애씨(46)의 ‘살림집’이 있다. 김씨가 머물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도구들이 갖춰진 또 하나의 전시실이다. 문에는 김관장이 만든 플라스틱 조각이 걸려 있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기봉의 ‘사라짐’ 연작이 눈에 띈다. 미국에서 막 돌아왔다는 그녀는 꽤 피곤해 보였다.

    “Y2K로 백악관 통신망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남편이 근무하는 모토롤러사가 무선통신을 책임지게 돼있었기 때문에 백악관에서 함께 새해를 맞았어요.”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의 소개로 만난 그녀의 남편 테리 머피씨는 지금 시카고에 있다. 두 달에 한 번 남편이 한국에 오고, 한 달에 한 번 그녀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엘렌 킴 머피 갤러리의 일을 겸해 미국에 간다고 했다.

    “혼자 큰 집에 있으니까 심심하죠. 그래서 친한 사람 하나 둘씩 불러 음식을 직접 해 먹이고 숟가락 하나씩 더 놓다보니, 50명, 100명이 모일 때도 있게 된 거죠.”

    화려한 사교계의 여주인공이라는 소문과 달리 그녀에게는 보통의 아줌마 같은 면이 있다. 그것이 ‘친화력’이란 평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 “파티 주인은 된장찌개 같은 맛이 있어야 해요. 대신 당당하고 만만치 않게 보여야 하기도 하죠. 도도하게 보이려고 미술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녀는 어떤 사람들을 파티에 부르는 것일까.

    “내가 단순한 사람을 좋아해서 교수, 학자들이 많아요. 재계 인사들이나 연예인들은 자선활동이나 그림,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들만 와요. 작가 설명회를 겸한 파티엔 동네 아줌마들도 많이 오고요. 처음엔 정치인들도 좀 왔는데 자기 얘기만 하고 5분쯤 있다 가버려서 분위기만 망치더라구요. 정치인들, 참 촌스러워요.”

    유재건 국민회의부총재, 이부영 한나라당원내총무, 박찬종전의원 정도가 교분있는 정치인들이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정계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예전에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서로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관계가 유지됐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저런 소문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재미있는 일도 없는데 엘렌이나 보러 가자’고 오는 사람들을 보면 흐뭇해요. 갤러리에 오는 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