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2

1999.12.09

할머니와 Mr. 가위손

  • 입력2007-04-26 13:5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젊은 총각 있수?”

    “들어오세요, 할머니.”

    “아니, 매번 미안해서 그러지….”

    우리 어머니는 동네에서 15년 동안 ‘헤어 숍’을 운영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이곳의 지킴이가 되었다.



    군대 들어가기 전 남들이 꺼리는, 아니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일에 나는 과감히 도전을 했었다.

    이젠 군대에서의 경력과, 사회에 나와 직접 손님들의 머리를 만지는 횟수가 늘면 늘수록 자신감과 어떤 성취감을 느끼곤 한다.

    우리 미용실은 실장도 남자다. 큰 번화가에 있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동네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내가 이곳의 지킴이가 된 지 3년.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들르는 ‘정류소’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우리집엔 2주에 한 번 꼴로 꼭 들르시는 단골(?) 할머니가 계시다.

    지난 월요일 오후. 그날도 어김없이 미용실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80세가 넘으신 백발의 할머니.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발음도 잘 안되시는 말씀으로 “젊은 총각 바쁘지 않나? 나 머리 좀 잘라야 하는데…” 할머니는 바깥에서 몇 번이나 배회하시다가 손이 비면 들어오신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손자 같은 미용사가 이제는 다른 어느 누구의 손보다 편안하고 마음에 드시나 보다.

    “할머니, 오늘은 조금 더 길게 잘랐어요. 요즘 날씨가 쌀쌀해서… 너무 짧게 자르면 감기에 걸리시거든요. 며칠 지나 지저분하다고 생각되시면 다시 오세요. 그때도 잘라드릴게요”

    “어이구 총각 고마워라. 저번엔 총각이 없어 못잘랐는데… 많이 길었지? 매번 미안해서….”

    머리를 자르시고 돌아가신 지 10분 아니 5분 뒤면 여지없이 또 ‘딸랑딸랑’. “이거 먹고 해. 이번엔 열개밖에 못샀어”

    변함없이 오늘도 조그마한 야쿠르트를 사서 문 옆에 두고 가신다. 머리를 공짜로 하신다는 게 부담스럽고 미안하신 모양이다. 나에게도 80이 넘으신 할머니가 계시다. 체구도 비슷하고 말투도 헤어스타일도 너무 비슷하다. 물론 우리 할머니도 내가 잘라드리니 머리 모양이 비슷할 수밖에 없겠지만….

    내 직업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진짜 우리 할머니, 그리고 야쿠르트(?) 할머니, 정말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