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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짝짓기 프로그램

“TV 사랑고백 뭐가 쪽팔려요”

‘멋진 만남’ ‘이브의 성’ 등 짝짓기 신청 밀물… “가볍고 이벤트 치중” 비판도

  • 문 철 기자 fullmoon@donga.com

“TV 사랑고백 뭐가 쪽팔려요”

“TV 사랑고백 뭐가 쪽팔려요”
K대 1학년인 강모씨는 지난주 목요일 SBS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의 ‘청춘의 찜’ 코너에 출연했다. 한달 전 축제에서 우연히 마주쳐 첫눈에 호감을 느낀 남성에게 애정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청춘의 찜’은 젊은 미혼 여성이 평소 ‘찍어둔’ 남성을 방송에 불러내 공개적으로 교제를 신청하는 코너. 자신을 ‘찜’한 여성이 누군지도 모른 채 방송에 출연한 상대 남성은 즉석에서 그녀의 구애에 대해 ‘Yes, No’로 답변을 한다.

“용기를 내서 엽서신청을 했더니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남자가 절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괜찮아요. 그저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에 나오기로 했던 거니까요.”

출연자 중복출연 물의도

그날 결국 강씨는 ‘찜’한 남성으로부터 ‘No’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겉모습만 비춰볼 때, 그녀 는 그다지 크게 상심한 기색이 없다. 과연 신세대다.

이같이 대담하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신세대를 겨냥해 제작된 ‘TV 짝짓기’ 프로그램이 수개월째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장수하고 있다. 현재 TV에서 방영 중인 프로그램만 해도 SBS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 ‘기분 좋은 밤’ 중 ‘결혼할까요’ 코너와 MBC ‘사랑의 스튜디오’ ‘이브의 성’ 등 네개. 94년 방영되기 시작해 5년째 진행중인 ‘사랑의 스튜디오’는 ‘단체 미팅’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올해 신설된 나머지 세 프로는 ‘1대 1’ 만남을 강조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원조격인 ‘…멋진 만남’은 지난 2월 첫방송을 시작한 이래 시청률 순위 10위권 내에 진입하는 등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10개월째 방영되고 있다. 이 프로가 인기를 얻자 뒤이어, 역시 ‘공개적인 구애-즉석 답변’ 형식을 띤 ‘이브의 성’과 노총각의 맞선 성공작전을 펴는 ‘결혼합시다’ 코너 등이 속속 제작됐다.

인기가 높으면 제작에 무리수도 따르고, 뒷말도 무성하게 마련. 지난 여름에는 한 여성출연자가 ‘…멋진 만남’과 ‘사랑의 스튜디오’ 두 프로그램에 중복 출연한 것이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고, PC통신이나 언론매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 시청자 참여란에는 “방송계 사람과 짜고 한다는 말이 있다” “이런 프로에 출연하는 여자는 예쁘고 능력있고 거의 치마만 입고 나오는 ‘전형적인’ 여자들이다” “처음 만난 여자와 몇마디 대화만 시켜놓고 결정하라고 하면 결국 외모가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 아닌가” 등의 비판적 의견이 올라오기도 한다. 상대방에 느끼는 호감도를 즉석에서 평가하는 것 역시 신중해야 할 남녀간의 애정문제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버린다는 비난이나, 출연자가 거부당하는 모습을 리얼타임으로 보여주는 설정이 ‘가학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디어 비평가 김병록씨는 “남녀간의 만남을 소재로 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내용이 지나치게 가볍고 ‘이벤트 만들기’에 치중되고 있다”고 문제를 지적한다.

“올바른 시청자 참여는 출연자가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성의 사랑을 얻기 위해 스타일을 고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결혼할까요’) 식의 연출은 자칫 시청자들의 다양한 개성을 말살할 우려가 있습니다. 결국 사랑에 성공하려면 ‘잘나야 한다’는 스테레오 타입을 유포시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목소리에 대해 프로그램 제작진들도 할말은 많다. ‘멋진 만남’의 하승보PD는 “짧은 만남을 통해 교제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주선하는 게 아니라 교제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뿐이다. 시청자들 역시 ‘이 프로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과 사랑이 결정된다’는 식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조작이나 연출’ 의혹에 대해서도 제작진들은 투명성을 애써 강조한다.

“출연자는 100% 신청사연을 토대로 결정하며, 프로포즈받는 사람은 방송에서 상대방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 제작진은 일부 극적 연출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할 따름인데, 이런 이벤트 역시 출연자 자신이 ‘이런 것을 해보면 어떻겠는가’고 적극적으로 제안해오는 경우가 많다.”(‘이브의 성’ 채웅 작가)

지난 여름 한 여성의 겹치기 출연으로 ‘조작’ 의혹이 불거졌던 사건은 아주 예외적인 단 한번의 사례였을 뿐이라는 것.

이들 프로를 즐겨 보는 신세대들 역시 ‘고지식한 어른들’의 비판에 대해 “도대체 문제가 뭔데?” 라고 반문한다. 통신이나 인터넷의 시청자 옴부즈맨 코너에 올라오는 반응은 대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너무너무 좋은 프로” “데이트 코스가 너무 좋았어요.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세요” “이렇게 좋은 프로에 노처녀 우리 언니를 출연시키고 싶어요” 등 ‘애교 어린’ 응원.

출연신청 역시 줄을 이어 ‘못말리는 데이트’는 지금까지 3000명 가량의 신청접수를 받았고, 여성 공개구애 창구인 ‘청춘의 찜’에도 일주일에 10여명이 신청해 온다고 한다. ‘이브의 성’도 일주일에 120여건의 신청이 인터넷과 PC통신, 편지 등으로 날아온다. 미성년자는 출연할 수 없는데도 중고등학생 신청자가 줄을 잇는다고.

명문대에 다니는 ‘청춘의 찜’ 출연자 강씨는 “이런 프로그램이 ‘나쁘다’는 생각을 했다면 출연신청을 했겠느냐”며 “학교 친구들 중에도 TV에 나와 고백하는 걸 ‘쪽팔린다’고 생각하는 애들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요즘 신세대들의 새로운 풍속도입니다. 우리 프로그램은 그런 트렌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해서 제작하는 것일 뿐이고요. TV는 대중매체입니다. 다수가 즐겁게 볼 수 있다면 오락프로로서 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보수적인 기성세대의 잣대만 갖고 지나치게 부정적 판단을 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하승보PD의 말처럼 남녀간의 만남을 가볍게 즐기려 하는 것은 요즘 젊은이들의 대체적 경향이다.

마음과마음정신의학센터 정혜신소장은 이같은 프로그램들의 ‘호황’에 대해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의 ‘가학성’을 즐긴다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출연자들의 ‘노출증’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연애란 매우 은밀한 프라이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TV에 나와 공개하는 것은 ‘심리적 노출증’의 일종입니다. 현실적인 인간관계에서 충분한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경우 좀더 색다른 자극을 받기 위해 자신의 사생활을 많은 사람 앞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죠. 이런 프로그램에 신청자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남에게 자신을 보여줌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입증이겠고요. 그렇다고 이것을 굳이 ‘병리적 현상’이라고 볼 필요는 없고, 다만 현대인의 다양한 성적 취향 중 한 단면이라고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TV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인 만큼 현존하는 트렌드를 보여주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며 ‘관음증’을 즐기는 듯한 찜찜함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 맞선에 성공하기 위해 이것저것 애써 연습하는 출연자나 프로포즈가 실패해 ‘썰렁해진’ 촬영장 분위기를 감추기 위해 엔딩멘트를 서두르는 MC를 볼 때마다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조작·연출이라니요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청춘의 찜’ 출연자 사연에 의해 결정


‘조작’ 혹은 ‘연출’이 아닌가 라는 의혹에 대해….

“일부 장면(찜당한 남성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약간의 ‘연출’이 개입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출연자 선정이나 최후의 선택 과정에는 전혀 조작이 개입되지 않는다. 심지어 스튜디오의 극적 긴장감을 위해 방송 전까지는 MC와 PD까지도 여성출연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출연자 결정은 100% 신청에 의해 이뤄지는가.

“‘못말리는 데이트’의 경우 출연 여성을 다양화하기 위해 단체나 기관에 추천을 의뢰하는 때가 있다. 물론 추천인 중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출연한다. 하지만 ‘청춘의 찜’은 전적으로 신청자의 사연에 의해 결정한다. 만일 출연자를 작위적인 섭외로 결정한다면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이 가능했겠는가. 그건 ‘연출’로 불가능한 것이다.”

-프로포즈에 실패하는 모습을 방영하는 게 가학적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결정의 순간’을 집어넣기는 했지만 가급적 성사 결과를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결과를 조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출연자들에게 “이렇게 방송에까지 나온 여자분의 용기를 봐서 너무 까다롭게 선택하진 말아달라”고 슬쩍 귀띔은 한다. 그러나 그렇게 부탁해봐도 남자출연자들은 모두 고집스럽게 자기 생각대로 결정하더라(웃음).”

일본 TV프로그램의 모방설도 있다.

“일본 프로그램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공식적으로 사서 제작하는 프로(‘러브 트레인’)도 있지만, ‘… 멋진 만남’은 전혀 모방 프로가 아니다. 오히려 일본 아사히TV에서 ‘한국의 인기프로’라고 취재한 적은 있다. 종종 인터넷에 모방 의혹이 올라오곤 하는데,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는 없다.” (시청자들에게 ‘보거스 피디’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하PD는 “절대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개인적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사진촬영은 할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주간동아 212호 (p72~73)

문 철 기자 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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