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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의 좌절

“내일 모레면 50인데…우짤꼬?”

기업체 부장·고위 공무원·교수 등 중년 엘리트들 “생존이냐 사표냐” 싱숭생숭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내일 모레면 50인데…우짤꼬?”



전문가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생산성은 45세가 정점입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의 생산성은 떨어지는 유형이 있고, 현상유지형이 있는가 하면, 비록 적은 사람이나마 상승형이 있죠. 앞으로 정부나 모든 기업은 45세를 기준으로 사람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하게 될 것입니다.”

직장인 고충 해결 전문 카운슬링 회사인 ‘코아컨설팅’(www.jinseo.co.kr) 박진서대표의 말이다. 자, 당신은 어떤 유형에 속하는가. 감소형인가, 현상유지형인가, 아니면 상승형인가.

나이 45세부터 55세는 인생의 순환기. 청장년기와는 또 다른, 그러나 정말로 심각한 갈등과 고민들이 생겨나는 시기다. 아이들은 크고, 집은 좁고, 돈은 점점 더 필요해지고, 체력은 달리고, 직장에서는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갈 곳은 많아도 오라는 곳은 드물고, 미래에의 비전은 점점 더 줄어들고…. 바로 이러한 고민의 한 복판에 50세라는 나이가 있다. 50세가 아직 안되었건 이미 지났건 간에 상관없이 50세 언저리의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이러한 고민을 안고 산다.

지금까지 ‘잘 나갔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부장자리까지는 올라왔지만, 임원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직장의 꽃인 이사 자리를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50대 초반인 모 기업의 고참 K부장. 상사로부터의 신망도 두텁고 후배들도 잘 따른다. 실력도 갖췄다. 직장내의 누구나 그의 이사진급을 예상하고 있고 잘 가면 사장까지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금보다 다소 비중이 작은 다른 부장자리로 인사발령이 나면서 그는 심각한 회의감에 빠졌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라는 얘기인지 기다리라는 얘기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일반기업만의 현상이 아니다. 모든 조직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50세가 되기 전에’ 무엇인가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거의 강박관념처럼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 언론계의 한 인사는 “50세 정도에서 나름대로 비전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길을 찾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공무원 사회의 경우 IMF 이후 ‘철밥통’의 신화는 점점 깨지고 있는 추세다. 최근 들어서는 3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 개방 임용제에 따라 ‘능력있는 전문가’들이 공무원들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연공 서열에 따라 느긋하게 기다리면, 혹은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줄을 잘 서고 잘 ‘비비는’ 재주만 있다면 국장급까지는 어떻게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 과거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의 풍토.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 출세 가도의 상징이었던 1급까지의 고속 승진이 이제는 ‘50대 퇴출’ 공포를 가져오는 실정이다. 장-차관을 바라보기 힘든 현실에서 대부분의 1급 자리는 퇴직을 준비하는 자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경제부처 안에서 ‘잘 나가는’ 간부로 꼽혀온 엘리트들이 잇따라 민간기업으로 옮기거나 벤처기업인으로 변신하자 공직 사회는 크게 술렁거렸다. ‘더 늦기 전에 변신하자’는 분위기가 공직 기강을 흔들 정도가 됐다.

교수사회에서도 대다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의 한 교수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연구 여건이 교수 이직의 명분이지만, 사실 더 늙기 전에(50대가 되기 전에) 시간과 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비전을 찾겠다는 것이 많은 교수들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해 오던 직장에서 더이상의 희망이 없음을 알고 정치권 진출을 생각해보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최근 들어 여러 곳에서 50세 엘리트들이 진로에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비록 소수지만 공직사회나 언론계 경제계 인사 중 일부는 내년 4월 총선을 탈출구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만 해도 평소에 준비된, 소위 ‘나는 전문가’임을 뒷받침할 만한 ‘포트폴리오 커리어링’ (Portfolio Careering)이 잘된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상당수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직장인들은 ‘자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박진서대표는 “이들 중고령자는 고도성장기를 거치는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위기의식 부재 상태에 놓여 있기 쉽다”면서 “이들은 정보통신기술마저 습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아직도 필요한 인간’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가 뒤통수를 얻어 맞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한다. 최근 사장급만 70여명을 ‘취직시킨’ 헤드헌팅업체 ‘KK컨설팅’의 김국길사장도 “70여명 중에 85%가 40대 중후반의 나이였다”면서 “50세만 조금 넘어가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김사장 역시 “바깥 사회의 환경은 너무 빨리 변화하는데 우리나라 50대는 자기 경력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무조건 변화를 두려워하며 자기 굴레를 깨지 않으려는 특성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제 한달여 뒤면 뉴 밀레니엄. 그야말로 사회가 ‘생각하는 속도만큼 변하는’ 정보화 사회가 만개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똑같은 21세기라도 두려움으로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만한 기대감으로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과연 어느 쪽인가. 김국길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변하지 않는다면, 이제 남은 여생의 행복도 찾을 수 없다.”



주간동아 211호 (p48~49)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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