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1

1999.12.02

정형근, 밟힐수록 산다?

‘서경원 재수사’에 퇴출 위기… 영남선 “DJ와 맞대결하는 투사” 되레 인기

  • 문 철 기자 fullmoon@donga.com

    입력2007-03-12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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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근, 밟힐수록 산다?
    지금 나는 앉아도 죽고, 서도 죽고, 어쨌거나 죽게 돼있다. 그러니 죽어도 꽥하고 죽어야 되는 것 아니냐.” “간첩죄로 복역한 평민당 출신 서경원전의원을 동원해 나의 국회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정권이다. 이런 부도덕한 정권이 보내주는 감옥이라면 영광스럽게 언제든지 갈 것이다.”

    ‘DJ 저격수’ ‘DJ 킬러’로 불리는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의 발언이 최근 들어 더욱 격해진 느낌이다. 비장감과 독기도 엿보인다. 자신에 대한 여권의 ‘퇴출작전’이 본격화하면서부터 더 그래 보인다.

    실제로 정의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독 안에 든 쥐‘가 가 돼가는 듯하다. 그는 한달도 안되는 사이에 여권으로부터 3건의 고소-고발을 당했다. 유례없는 일이다.

    먼저 10월2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언론문건 폭로 직후 이강래 전청와대정무수석이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어 서경원 전평민당의원의 고소-고발이 뒤따랐고 11월4일 부산집회에서의 ‘빨치산식 수법’ 발언 직후 국민회의가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했다. 여당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그를 국회에서 퇴출시키는 방안을 고려중이고 검찰은 사법처리를 검토하고 있다.

    여권 ‘정보루트 차단’ 압박작전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옥죄고 있는 것은 ‘쉽게 예기치 못했던’ 검찰의 서경원전의원 사건 재수사다. 여권에서는 이를 일석이조의 번득이는 아이디어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DJ가 서전의원으로부터 1만달러 를 받았다는 혐의를 풀어주면서 정의원은 옭아맬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 특히 서전의원 사건을 맡았 던 정의원의 ‘고문행적’을 문제삼아 그를 ‘제2의 이근안’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마저 엿보인다.

    그간 여권을 호되게 괴롭혔던 정의원의 ‘정보 루트 차단작전’도 한창 진행중이다. 국민회의 한화갑사무총장은 11월15일 “정의원의 사설팀에 대한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다. 때가 되면 공개할 것”이라고 ‘예고편’을 내보냈다. 이어 11월19일 국민회의 김영환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원의 한건주의 폭로는 조직적인 정치공작팀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정의원은 서울 여의도 삼도오피스텔 807호에 사설정보팀을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국민회의는 정의원이 정보팀의 활동비 일부를 한나라당 당비로 지급했다며 이를 정치 쟁점화했다.

    이같은 여권의 대공세는 정의원의 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을 경우 정권의 사활이 걸린 내년 총선에서까지 그의 공작정치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국민회의 이윤수의원은 “정형근을 이대로 놔두면 내년 총선 때 정형근 같은 사람이 100명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여권은 최소한 정의원이 다음 총선에서는 출마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정의원 집이나 의원회관에는 “가족을 몰살시키고 나도 죽겠다” “정형근과 정형근 가족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나 며칠 안에 똑똑히 보여주겠다”는 식의 협박전화가 수없이 걸려왔다. 언론문건 폭로 직후엔 10여분마다 한번씩, 빨치산식 수법 발언 이후에는 빈도수가 더 높아졌다고 정의원측은 주장했다.

    정가에서는 ‘정형근의 007정치’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가 겪고 있는 난관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도 되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그가 ‘반DJ 투쟁’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정보 맨’ 출신의 초보정치인에서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는 ‘대중정치인’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

    11월4일 한나라당의 부산집회에서는 그의 ‘인기’가 두드러졌다. 그의 연설에 환호하던 군중은 집회를 마친 뒤 그를 에워싸고 ‘정형근’을 연호했다. 일부에선 ‘정형근을 청와대로’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국민회의가 “부산집회는 정의원의 한나라당 총재 취임식을 방불케 했다”고 비꼬았을 정도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도 “정의원이 현재 ‘반DJ정서’가 강한 영남권, 특히 PK지역에서 ‘DJ와 맞대결하는 투사’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정형근 사수(死守)’ 의지를 공공연히 강조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원들은 11월15일 모임을 갖고 “정의원의 신상에 변화가 올 경우 부산의원들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8일에도 부산의원들은 “정의원과 부산의원 전체가 생사고락을 같이할 것” 이라고 ‘선언’했다.

    여권의 불모지인 부산에서 활동중인 국민회의 노무현부총재는 얼마 전 당총재단회의에서 “정의원을 사법처리할 경우 부산이나 영남권 정서를 크게 자극할 수 있으며 한나라당에 확실한 선거운동이 될 것” 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정의원의 공격용 화살은 늘 DJ를 겨냥하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신과 DJ와의 전쟁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나는 김대중대통령의 친인척과 관련된 비리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터뜨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폭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회창총재의 한 측근은 “정의원이 근자에 여론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들이 많다”고 말했다. 정의원 주위인사들도 “부산에 현재 맹주가 아무도 없는데…”라며 정의원에게 적극적 행보를 권유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의원의 행보에 대해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여당의 ‘과민대응’을 역이용해 정치적으로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데만 신경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의원의 향후 정치적 입지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결국 타협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여권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강력히 부인한다.

    정의원은 과연 살아남아 16대 금배지를 달 수 있을까.

    찰떡궁합 ‘李-鄭 단짝’ 권태기 왔나

    ‘언론문건’ 계기 갈등 … 이총재 협상노선에 정의원 “흥!”


    “당이 나만 사지(死地)에 몰아넣고 있다.”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은 11월16일 이회창총재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거센 항의를 했다. “왜 내가 언론문건 국정조사의 증인으로 거론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항의의 뜻으로 며칠간 당과의 연락을 끊었다. 이총재에 대한 정의원의 불만이 공개적으로 표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은 지난 97년 대선 직전 ‘DJ비자금’ 폭로사건 때부터 최근까지 ‘찰떡 궁합’을 과시해왔다. 그러나 10월25일 언론문건 폭로 이후 두 사람 사이에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의원의 폭로에는 실수가 없다’는 이총재의 ‘믿음’이 깨진 데다 이총재와 이도준기자의 관계에까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총재가 홍역을 치르게 된 게 계기였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총재가 강경노선을 버리고 협상노선을 선택함에 따라 여야 총무가 국회정상화에 합의한 것이었다.

    이에 앞서 정의원은 총무협상이 진행되자 주요당직자회의 등을 통해 강경노선의 견지를 거듭 주장했다. “옷로비 특검에서 곧 ‘대박’이 터질 것이며 그것은 검찰의 입장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드는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여야총무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계속 강하게 밀고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총재는 정의원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협상을 타결시켰고, 결국 정의원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 이와 함께 정의원은 당지도부가 총무회담에서 체포동의안 문제에 완전하게 합의하지 못하는 등 자신에 대한 배려가 소홀했던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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