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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지성시

'정치 철학'이 부활하고 있다

佛誌, 70년대 이후 정치적 자유주의와 불평등 - 국가와 사회 관계 등 재조명 작업

  • 김세원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정치 철학'이 부활하고 있다

'정치 철학'이 부활하고 있다
50, 60년대 프랑스를 풍미했던 마르크시즘과 구조주의, 이른바 사회과학의 위세에 눌려 정치는 철학과 오랫동안 결별했다. 인간의 이성을 철저하게 불신하는 포스트모더니즘도 인간들이 어떻게 국가와 사회 시장을 구성하고 이끌어가며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지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몰락에 따른 이데올로기의 종말과 함께 질식상태에 있던 정치철학은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월간교양지 마가진 리테레르(Magazine Litteraire) 10월호는 알렝 르노 파리4대학 교 수와 필립 레노 파리2대학 교수의 역저 ‘정치철학사’의 출간을 계기로 ‘정치철학의 부활’이란 특집 을 마련했다. 이 특집은 70년대부터 계속되고 있는 주요 정치철학 논쟁들을 소개했다.

정치철학사는 △고대인들의 자유 △근대의 탄생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근대정치에 대한 비판 △현대 정치철학 등 총 5권 20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으로 저자들은 초역사적이면서 보편적인 가치를 추 구하는 정치철학의 부활을 당당하게 선언한다.

‘마가진 리테레르’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불평등, 국가와 사회와의 관계, 민주국가의 한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등 현대 주요 정치철학 논쟁에 영향을 미친 12명의 정치철학자를 재조명했다. 근대성의 모 델을 제안한 막스 베버, 전체주의는 악을 통속화하는 체제라고 공격하며 세계시민론을 제기한 한나 아 렌트, 마르크시즘과 실존주의를 결합시킨 장 폴 사르트르, 형이상학과 실천적 정치의 통합을 주장한 폴 리쾨르, 합리적 이성을 통한 민주주의를 추구한 위르겐 하버마스, 레오 스트라우스,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클로드 르포르, 존 롤스, 마르셀 고셰, 앤서니 기든스가 그들.

르노와 레노는 정치철학 부활의 기폭제로 존 롤스 미국하버드대교수가 1971년 출판한 ‘정의론’(正義論)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마가진 리테레르는 존 롤스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로 평가 하며 롤스의 영향을 받은 70년대 자유주의자와 자유지상론자, 80년대 공동체주의자와 평등론자들의 주 장과 양쪽 진영의 상호비판들을 다뤘다.



롤스는 홉스 로크 칸트로 이어지는 사회계약론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이른바 ‘차등의 원칙’을 제안함으로써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정의의 융합 가능성을 제시하고 사 적 소유의 보장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의 화해를 모색한다.

롤스는 개인의 자율성 보장의 원칙과 사회적 불평등은 가장 혜택을 적게 받는 사회구성원에게 가장 많 은 혜택이 돌아가는 조건 아래서만 허용돼야 한다는 차등의 원칙이 정의로운 국가를 이루는 도덕적 기 초라고 주장했다.

철저하게 자유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는 로버트 노직은 74년 ‘무정부주의,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란 저 서를 통해 ‘정의론’에서 사적인 소유를 제한하는 차등의 원칙을 비판한다. ‘정의론’의 핵심인 차등 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산의 분배를 맡을 제3의 기구가 있어야 한다. 제3의 기구는 다름 아닌 국가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은 개인적 자유의 침해를 의미한다.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려면 개인의 자유에 대 한 어떤 구속이나 강제, 국가에 의한 재분배도 용납될 수 없다. 따라서 노직은 고전적 자유주의가 내세 웠던 야경국가처럼 국가의 역할은 공공질서 유지와 국가방위로 최소화돼야 한다는 이른바 최소정부론 (Etat Minimal)을 주창한다.

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73년 ‘법, 정통성, 자유’란 저서를 통해 사회 계약론에 기초한 롤스의 사회연대를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는 원자화된 개인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허구이며 사회정의도 신기루나 다름없다. 사회적 불평등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의 계획에 따라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가의 개입에 맞서 싸우는 작업으로 평생을 보낸 하이에크에게 시장은 최고의 경제질서 창출자이자 가장 효율적으로 수많은 정보와 가치들을 조화 시키는 중재자다. 국가보다는 원초적 질서(Ordre Spontane)를 가진 시장이 자원이나 소득을 분배하는 데 적합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하이에크는 자유주의자보다는 자유지상론자에 가깝다.

70년대 중반 자유주의가 서구사회에서 위세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은 73년 석유파동으로 정부부채와 공공 지출이 급증하면서 2차대전 후 본격적으로 도입됐던 사회복지제도가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복지혜택 및 관료조직 축소, 민영화 등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정책이 서구사회를 지배했 다. 그러나 국가역할 최소화에 따른 개인주의의 범람과 빈부격차의 심화는 사회적 유대를 무너뜨렸다. 프랑스나 미국 같은 다문화사회에서는 정체성의 위기가 나타났다. 자유주의의 이같은 부작용이 80년대 들어 공동체론자들의 등장을 촉진했다.

찰스 테일러, 앨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산델, 마이爺 왈처 등 공동체론자들은 자유보다는 평등과 사회정의를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매킨타이어는 롤스나 노직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사회보다 자율적인 개인을 우선하는 것을 비판한다. 원 자화된 개인의 집합체인 현대 서구사회에서 사회정의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다원 주의에 의해 분열된 사회는 공동체적인 삶을 상실한 상태다. 현대사회에 있어 정치란 정통성과 윤리에 근거한 합의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간의 계약일 뿐이다. 다원주의사회는 궁극적으로 일종의 지속적인 내 전상태로 치닫게 된다.

공동체론자들은 저서 ‘신들의 전쟁’에서 사회에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며 특정 가치 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의 신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 막스 베버의 다원주의에 긍정적이든 부정 적이든 영향을 받았다. 프린스턴대 교수인 마이클 볼저는 ‘정의의 영역’에서 평준화되고 순응적인 사 회를 전제로 한 평등은 신기루라고 주장한다. 그에 있어 평등론자의 목표는 모든 지배로부터 해방된 사 회다. 개인간의 차이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등은 곧 다원주의 속에서의 평등이다. 어떤 사회적 가치가 특정 집단에 의해 독점되거나 특정가치가 지배도구로 쓰이지 않는 경우에 한해 사 회는 평등에 접근할 수 있다. 볼저는 다양한 언어 역사 문화가 섞여 있는 정치공동체의 경우 구성원간 에 협력이 가능하다고 본다. 르노와 레노는 롤스의 자유주의에 공동체주의를 보완함으로써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근대적 가치의 부정과 긍정이라는 대립적 경향 사이에서 보다 바람직한 정치철학의 가능성을 찾는다.

70년대 이후의 주요 정치철학자들

△1971=‘정의론’ 존 롤스(미국)

△1972=‘반(反)외디푸스-자본주의와 정신분열’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프랑스)

△1973=‘법, 정통성, 자유’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미국)

△1974=‘무정부주의, 국가, 유토피아’ 로버트 노직(미국)

△1975=‘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 미셸 푸코(프랑스)

△1975=‘마키아벨리적 계기’ J.G.A. 포코크(미국)

△1978=‘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 프랑수아 퓌레(프랑스)

△1981=‘덕(德)을 넘어서’ 앨래스데어 매킨타이어(미국)

△1982=‘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마이클 샌들(미국)

△1983=‘정의의 영역’ 마이클 왈처(미국)

△1985=‘세계의 환멸-종교의 정치사’ 마르셀 고셰(프랑스)

△1986=‘19~20세기 정치에 관한 에세이’ 클로드 르포르(프랑스)

△1992=‘법과 민주주의’ 위르겐 하버마스(독일)

△1992=‘다문화주의-차이와 민주주의’ 찰스 테일러(미국)




주간동아 209호 (p46~47)

김세원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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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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