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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서

사랑을 키우는 콩나물 시루

사랑을 키우는 콩나물 시루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 한쪽에 앙증맞은 콩나물 시루 하나가 놓여 있었다.

부모님이 백화점에 물건 사러 가셨다가 경품으로 타왔다는 그 콩나물 시루는 옹기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물받이는 물론이고 표주박까지 달린 데다가 색깔이나 모양이 아름다워 누가 봐도 탐이 날 정도였다.

다음날 엄마와 나는 시루를 깨끗이 닦아서 맑은 물로 잘 헹구어낸 뒤 들뜬 마음으로 밤새 불린 노란 콩을 담았다.

“엄마, 이거 다 자라는 데 얼마나 걸릴까?”

스물여섯해가 가도록 콩나물 한번 길러본 적이 없는 철없는 맏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피식 웃고 마는 우리 어머니. 콩나물 시루에 대한 관심은 아버지도 대단하셨다.



수시로 정성스럽게 물을 뿌려 주고, 텔레비전을 보시다가도 “가서 콩나물 시루에 물 좀 주고 오너라” 하시는가 하면, “글쎄 오늘 아침에 열어 보았더니 하룻밤 사이에 쑤∼욱 자라 올랐더라구” 하시며 눈에 보이듯 잘자라는 콩나물이 대견스럽다는 듯 말씀하셨다.

우리 가족은 모두 다섯 식구다.

그나마 두 동생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 집에는 달랑 세 식구뿐인데, 얼마 전 아버지가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자연히 우리 세 식구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동안 서로 바쁜 탓에 함께 식사하기는커녕 얼굴보기도 힘들었던 우리 가족. 자연히 대화도 적어지고 각자 생활이 바빠 나몰라라 지내기 일쑤였는데….

몇해만에 한가함을 찾으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그동안 정리를 미뤄 둔 집안 곳곳을 매만지기 시작하셨고, 늘 빈집처럼 조용하던 우리 집이 조금씩 빛이 나고 윤이 나기 시작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연년생으로 삼남매를 길러오신 부모님의 마음이 혹시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는 마음,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썩는 건 아닌지, 행여 물이 모자라 잔뿌리가 생기는 건 아닌지 늘 걱정하고 다독거리는 마음으로 우리 삼남매를 키우셨으리라.

이 가을, 우리 가족의 첫 수확은 비단 하룻저녁 식단을 풍성하게 하는 것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콩나물 시루 속의 노란 콩이 어느새 통통한 콩나물로 자라 오르듯 우리 가족의 사랑도 그렇게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었다.

남경희/ 대전시 중구 석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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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8호 (p108~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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