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7

2016.07.20

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이열치열! 그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대구 육개장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6-07-15 16: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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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초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대명사인 육개장을 먹으려고 대구를 찾았다. 대구 낮 최고 기온이 34도에 육박했다. 요즘 서울에서 육개장을 단일 품목으로 파는 전문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유명 식당의 여러 메뉴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하지만 대구는 다르다. 육개장을 간판 메뉴로 내건 명가가 수두룩하다.

    육개장이란 말은 1869년 조선 후기 조리서 ‘규곤요람’에 처음 등장한다. ‘고기를 썰어서 장을 풀어 물을 많이 붓고 끓이되 썰어 넣은 고깃점이 푹 익어 풀리도록 끓인다. 잎을 썰지 않은 파를 그대로 넣고 기름 치고 후춧가루를 넣는다.’ 지금 대구의 육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20년대 육개장은 ‘대구탕반(大邱湯飯)’이란 이름으로 서울에서 외식 메뉴로 큰 인기를 얻었다. 26년 창간된 월간 취미잡지 ‘별건곤’은 이렇게 썼다.

    ‘대구탕반은 본명이 육개장인데 남도에서 즐겨먹던 개장과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쇠고기로 개장처럼 만든 것인데 지금은 대발전을 하야 본토(本土)인 대구에서 서울까지 진출을 하였다.’(1929년 12월 1일자)



    육개장은 ‘구장(狗醬)’에 ‘고기 육(肉·쇠고기)’자가 붙어 생긴 말이다. 개는 흔하고 소는 귀한 시절 서민은 복날이면 개장을, 양반은 육개장을 먹었다. 대구 육개장은 대구탕반이라고도 부르지만 1950년대 이후 따로국밥으로 분화, 발전했다. 전쟁통에 대구로 내려온 피난민 중 일부가 밥에 국을 말아주는 토렴 방식의 육개장을 싫어해 생긴 문화로 알려져 있다. 대구 육개장 문화와 비슷한 것은 경상도 전역에 퍼진 쇠고기국밥이다. 국물 형식은 비슷한데 육개장은 고기를 길게 썰거나 손으로 발라내는 것이 특징이다.



    대구 중구 서문교회 근처에 있는 ‘옛집 육개장’은 1940년대 후반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형되지 않은 ‘가장 대구적’인 육개장을 파는 노포로 유명하다. 사골로 육수를 내고 개고기와 비슷한 식감과 형태를 지닌 사태를 넣는다. 국물은 맑지만 기름지다. 고춧가루와 더불어 기름에 녹인 고추기름이 들어 있고 대파가 가득하다. 여기에 밥을 말아 먹는다. 파와 마늘, 밥의 전분에서 나온 단맛이 입맛을 돋운다. 고추기름은 매운맛과 기름 맛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간은 소금이나 조선간장으로 했다. 짠맛과 단맛, 기름기 등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맛들에 매운맛이 더해졌으니 이 음식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같은 중구의 경북대병원 인근에 자리한 ‘벙글벙글식당’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맛도 ‘옛집 육개장’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파와 더불어 무와 고사리도 들어가 있다. 국물 맛은 쇠고기국밥처럼 건건하고 달달하며 은근히 맵다.

    설탕으로 마무리한 부드러운 깍두기도 좋고 부추와 김을 무쳐 낸 반찬도 수준급이다. 육개장과 비빔밥, 수육이 메뉴의 전부다.

    대구 중심부인 중앙로 한쪽에는 오래된 식당이 많다. 좁은 골목 안쪽에 들어선 ‘진골목식당’도 대구 토박이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다. 식당 내부에는 이 집 명물인 호박전에 들어갈 호박들이 담장처럼 높이 쌓여 있다. 이 집 육개장은 육수에 된장을 많이 풀었다. 다른 육개장에 비해 맛이 진하고 된장 맛이 강하며 신맛도 난다. 대파는 기본이지만 우거지가 들어간 것이 대구식 추어탕과 많이 닮아 있다. 앞의 두 집에 비하면 맛과 모양새가 투박하지만 오래된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손색이 없다.

    대구식 육개장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먹는 데 집중하게 돼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더위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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