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커버스토리 | 헛물켜는 서울시 청년사업

‘청춘1번가’엔 청춘이 없다

서울시의 조급함과 준비 부족이 낳은 실패…교육과 시장분석으로 성공한 ‘열정도’와 대비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5-18 08: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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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7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을 찾았다. 서울시의 청년지원사업으로 유명한 ‘청춘1번가’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서울풍물시장 2층으로 가면 한눈에 청춘1번가를 찾을 수 있다. 중고물품 가게 일색인 공간 한쪽에 ‘청춘1번가’라고 쓰인 큰 글씨가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복고풍으로 꾸민 청춘1번가 입구로 들어가면 깔끔하게 정리된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가게 문은 대부분 굳게 닫혀 있고, 닫힌 문 위로 ‘오픈 준비 중’이라는 문구만 조그마하게 붙어 있었다.

    서울시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총 10개 가게가 성업 중이어야 하지만 현재 청춘1번가에는 생활한복 가게와 수공예 장신구 가게 등 딱 두 곳만 운영 중이다. 황금연휴기간이라 서울풍물시장에 구경 온 손님은 많았지만, 청춘1번가에 들어왔다 썰렁한 분위기만 확인하고는 금세 발걸음을 돌렸다. 기자가 청춘1번가에 머물렀던 1시간 동안 두 가게에는 단 한 명의 손님도 찾아오지 않았다.

    청춘1번가는 청년임대주택, 청년수당 등 여러 방면으로 진행 중인 서울시의 청년지원사업 가운데 하나다. 서울시는 2015년 9월 청춘1번가를 개장하면서 민간조직인 ‘서울풍물시장활성화사업단’(사업단)에게 사업 운영 전권을 맡겼다. 쇠퇴한 풍물시장에 ‘청년’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로 활기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청년 창업도 지원하겠다는 게 당초 취지였다.



    갑작스럽게 해체한 사업단

    청춘1번가에 대한 서울시의 지원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서울시는 시 소유지인 서울풍물시장 2층 일부에 사업 공간을 따로 만들어주고 입주하는 청년 사업가에게 6개월간 공유세(서울시 재산을 이용하는 세금)를 면제하는 한편, 장사에 필요한 기물도 지원해주기로 했다. 6개월이 지나면 공유세가 지원되는 형식으로 계약을 연장해주거나 청년 사업가가 원하면 서울풍물시장상인회와 협의해 적정 수준의 공유세를 내고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



    장사를 처음 시작하는 청년 창업가에게는 충분히 좋은 조건이었지만 사업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당초 청년 창업가들은 서울시와 6개월 계약을 맺고 이곳에 들어왔지만 기한을 채우지 못한 채 입점한 10개 가게가 2월 모두 자리를 비웠다. 풍물시장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수공예품 작가들의 가게가 입점했고, ‘청춘1번가’라는 이름과 영업공간도 제공했지만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곳을 떠났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서울시는 일부 가게가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모든 상가가 동시에 재계약을 포기한 것에 대해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손님이 적어 매출이 크게 오르지 않았고 냉·난방이 안 되는 등 시설의 열악함 때문에 작가들의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청춘1번가는 입소문을 타고 슬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가들에게 재계약을 권유했지만 전부 거절했다. 6개월간 무료로 장소를 빌려주는 건 분명히 좋은 조건인데 단 한 명도 남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 측 주장과 달리 청년 사업자들에게도 나갈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청춘1번가에서 가게를 열었던 A씨는 “시설에 대한 큰 불만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서울풍물시장 자체를 젊은 손님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춘1번가는 20, 30대를 겨냥한 테마존 형식의 가게들이 입점해 있는데 시장 자체를 젊은 층이 찾지 않으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만족스러운 매출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재계약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청춘1번가의 시범사업인 ‘청춘시장’(상자기사 참조) 때부터 함께했던 B씨는 “사업단이 갑자기 해체된 것이 문제였다. 사업단의 사업 방향에 동의해 시범사업부터 올해 2월까지 함께했지만 갑자기 사업단 해체 소식을 듣고는 그만뒀다. 사업단 해체 이후 서울시가 재계약을 권유하긴 했지만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할지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다. 새 사업단도 없고 정확히 이 사업이 추구하는 방향을 모르는 상황에서 재계약할 수는 없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사업단이 서울시에 제출해 승인받은 ‘서울풍물시장 활성화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사업단의 청년지원사업 위탁운영 기간은 2014년 9월 1일부터 2016년 8월 31일까지 2년간이다(표 참조). 이 계획안에 따라 서울시는 사업 전권을 사업단 측에 맡겼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31일 사업단이 갑자기 해체됐다. 갑작스러운 사업단 해체에 손해를 본 것은 청춘1번가에 입점한 상인들이었다. 사업단 해체 시점인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서울시의 재계약 권유 시점인 올해 2월 14일까지 청년 상인들은 어느 곳의 관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사업단 해체가 서울시와 서울풍물시장상인회의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시 사업단 관계자는 “예정된 (위탁운영) 사업 기간은 2년이었지만 지난해 말 서울시와 상인회의 요구로 사업단이 더는 사업을 맡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단 단장이 다른 맡은 일이 많아서 운영이 힘들었고 상인회에서도 그럴 바에는 새로운 사업단을 꾸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 사업단과 재계약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조급함과 베끼기 식 운영의 폐해

    사업단 관계자는 또한 “사업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도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범 기간(2014년 11월~2015년 2월)을 빼면 4개월 만에 사업단이 해체됐다. 사업계획안에 2년을 위탁운영한다고 돼 있던 만큼 계획대로 전부 진행한 뒤 평가하고 그에 따라 결정을 했어야 하는데, 단순히 당시 실적이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한다고 4개월 만에 사업단과 계약을 해지한 서울시와 상인회가 너무 성급했던 측면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사업 시작 전 초기 조사의 문제점도 짚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서울시와 사업단은 서울풍물시장의 고유 특성에 대한 고민 없이 이미 성공한 다른 지역의 사업 매뉴얼을 그대로 따르려 했다. 청년 사업자가 입점해 전통시장이 활성화된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등 다른 지역 전통시장의 성공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일반 전통시장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시장이기 때문에 고정 고객이 있는 반면, 풍물시장은 고객 대부분이 오며가며 구경만 한다. 취급하는 물건도 다르다. 일반 시장은 주로 생필품을 취급해 단골고객을 만들기 수월하다. 반면 풍물시장은 골동품과 생활 잡화를 파는 특성상 단골고객 유치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시장 여건이 차이가 나는 만큼 상인의 성향이나 시장 형태 등 다양한 사안을 고려해 계획을 짰어야 하는데 다른 성공 사례만 보고 너무 쉽게 접근한 듯싶다.”

    전문가들 의견도 다르지 않다. 청춘1번가가 성공하려면 사업 시작 전 사전조사가 더 필요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남대일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장은 하나의 생태계와 같다. 청춘1번가 또한 쇠퇴하는 풍물시장의 생태계에 젊은 상인이라는 새로운 종을 이식해 시장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 시도가 성공하려면 확실한 시장 분석이 선행됐어야 한다. 단순히 자금 지원을 해주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시장이라는 생태계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해줄 새로운 업종 또는 시장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업종의 상인들을 선발해 사업을 진행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거리와 상권을 함께 살린 청년 창업의 좋은 사례로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자리 잡은 ‘열정도’를 들었다. 그는 “열정도는 원래 인쇄공장이 모여 있어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요즘 관심이 집중되는 음식점 같은 새로운 업종을 유치함으로써 사람들 발길을 되돌려놓았다. 현재 열정도의 성공은 원효로 일대를 새로운 시장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서울시는 4월 새로 꾸민 ‘서울풍물시장사업단’과 손잡고 다시 ‘청춘1번가’를 열었다. 서울시와 새로운 사업단은 5월 말까지 10개 가게 전부 입점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 문을 연 가게는 두 곳뿐으로, 목표 달성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태다. 



    “대의 위한 수단으로 청년 활용 말라”

    청춘1번가를 나와 오후 5시쯤 용산에 자리 잡은 ‘열정도’ 상가를 찾았다. ‘열정도’에는 치킨, 감자튀김, 주꾸미, 고기, 간단한 안주 등을 취급하는 가게 5곳이 한쪽 거리에 늘어서 있다. 저녁식사를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가게들은 한산했다. 그중 주꾸미 집에 들어가 식사 주문을 했다. 주꾸미가 식탁으로 옮겨져 불 위로 오를 때쯤 어느새 주변 테이블 4개가 꽉 찼다. 간혹 중국인 관광객도 있었지만 종업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친절하고 유쾌하게 응대했다.

    주꾸미가 익어갈 무렵 주위를 돌아보니 인근 식당들도 손님으로 꽉 찼다. 저녁 6시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오는 길, ‘열정도’는 들어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거리였다. 가게 5곳에서 손님들이 즐겁게 식사하고 대화하는 소리가 왁자하게 새어나왔다. 인근 사무실 불이 꺼지고 조용해진 원효로 일대를 ‘열정도’가 혼자 밝히고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나 국가 지원사업도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특별한 지원 없이 청년들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골목이 오히려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열정도’는 2014년 11월 용산구 원효로 사이 작은 골목에 가게 3곳이 함께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세 가게의 성공으로 두 가게가 더 늘어 현재는 5곳이 영업 중이다. ‘열정도’를 만든 주인공은 ‘청년장사꾼’이라는 일종의 청년 창업 연합 회사다. 청년장사꾼은 창업교육, 외식창업, 문화프로젝트를 통해 청년들의 창업을 돕고 매장을 세워 지역 활성화를 이루고자 조직된 회사다. 이들은 채용 형식을 통해 창업 희망자들을 모은다. 채용된 직원들은 2주간 청년장사꾼으로부터 창업교육을 받고 10주간은 인턴으로 현장을 경험하며 요식업 창업의 노하우를 쌓게 된다. 이 중 일부 직원은 실제로 가게를 열어 직접 운영하거나 청년장사꾼 이름으로 운영되는 가게에 지분투자를 해 운영에 참여하게 된다. 청년장사꾼은 현재 ‘열정도’에 5곳을 포함해 종로구 경복궁 서촌 일대 2곳, 마포구 2곳, 용산구 이태원 2곳 등 총 11곳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김규 청년장사꾼 대표에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좋은 실적을 낸 비결을 물었다. 김 대표는 “서울시 등 지자체가 지원하는 사업과 청년장사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울시 청년지원사업은 장사로 청년들이 직접 일어서는 것은 부가적인 목적이고 일차적 목표는 쇠락한 지역이나 시장을 살리는 데 있다. 살려야 하는 대상이 다르니 당연히 방향도 다르다. 청년지원사업에 투입되는 청년 상인의 경우 대개 장사 경험이 없어서 특별한 교육이 없으면 아무리 임차료를 지원해준다 해도 버텨내지 못하는 사례가 더 많은 듯하다. 대의를 위한 수단으로 청년을 활용할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정말 잘살 수 있는 창업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남 교수도 단순히 자금과 시설만 지원해주는 청년지원사업에는 한계가 있다는 김 대표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단순히 청년 상인을 데려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며 “처음 상인들을 모집할 때 교육을 실시해 자생력을 높이고 사업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피드백 과정을 통해 재교육을 시키는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은 청춘1번가의 새로운 사업운영 주체인 서울풍물시장사업단 측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청춘 1번가 사업의 새로운 사업단을 맡은 권영식 단장은 “자생력을 갖춘 청년 상인을 선발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며 “현재 풍물시장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업종을 선별한 후 청춘1번가에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끌어나갈 의지가 있는 청년 상인을 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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