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르포

쉬려다 날벼락? 졸음쉼터

시속 110km로 달리다 ‘꽝’, 4년간 사고 57건…운전자들 “진·출입로 제일 두려워”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5-17 17: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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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이 내려올 때가 많다. 운전 중 깜빡 졸다 끔찍한 사고가 터지고 소중한 생명이 사라진다. 교통안전공단 발표에 따르면 2012~2014년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942명 가운데 102명(10.8%)이 졸음운전으로 사망했으며, 졸음운전 치사율은 100명당 16.1명으로 전체 고속도로 치사율 9.1명보다 약 1.8배 높았다.

    따라서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는 2011년부터 전국 곳곳에 졸음쉼터를 설치해 5월 현재 총 191개를 운영 중이며, 올해 안에 14개를 증설할 예정이다. 3월 도로공사는 최근 10년간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 통계를 발표하고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는 졸음쉼터 설치 전인 2010년 353명에서 2015년 223명으로 줄었다”며 졸음쉼터의 효과를 홍보한 바 있다.



    사망 사고 8개월, 달라진 것 없다

    하지만 졸음쉼터의 위험성도 만만치 않다. 감사원이 3월 발표한 ‘고속도로 안전관리 실태’ 보고서는 △졸음쉼터 진·출입구 설치 기준이 없어 안전거리가 짧아 사고 발생이 우려되고 △안개 발생 시 시정거리 산출 기준이 없어 시정거리에 따른 과속 단속을 할 수 없으며 △안개 대비 안전 시설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졸음쉼터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지난해 12월까지 설치된 전국 졸음쉼터 179개 가운데 128개 변속차로가 버스정류장 기준(감속 200m, 가속 220m)보다 짧아 차량 진·출입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졸음쉼터에서 최근 5년간 크고 작은 사고가 잇달았다. 운전자들이 편하게 쉬어야 할 쉼터에서 왜 사고가 잦은 것일까. 비가 오고 안개가 짙은 날, 최근 사망사고가 있었던 졸음쉼터를 직접 찾아갔다.



    경기 용인시 남사졸음쉼터는 경부고속도로(부산 방면) 371.6km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 쉼터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화물트럭 운전자 A(59)씨가 쉼터로 진입하려고 2차로에서 5차로로 급히 진로를 바꿨고, 5차로에서 주행 중이던 B(29)씨가 A씨 차를 피하려다 쉼터에 주차 중이던 차량 3대를 잇달아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숨진 것.

    차를 타고 남사졸음쉼터 방향으로 이동해봤다. 쉼터 도착 3km 전 ‘제한속도 시속 110km, 1.5t 초과 화물차 및 건설기계는 시속 90km’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었다. 전방 2km, 1km, 500m에 쉼터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도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쉼터로 진입하는 구간이 지나치게 짧았다. 5차로에서 진입구간으로 진로를 변경할 수 있는 흰 점선구간이 약 200m에 불과했다. 제한속도 시속 40, 30km를 알리는 표지판도 10m 거리 사이에 놓여 있어 시속 110km로 달리던 자동차가 단시간에 속도를 줄여 들어오기엔 무리였다.

    주차 환경도 열악했다. 기존 5차로 옆에 2개 차로를 추가 설치했을 뿐, 보도블록이나 의자 등 휴식 공간이 전혀 없었다. 주차구역에는 ‘대형차량’ ‘소형차량’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지만 어디서 어디까지 대형 및 소형차량 주차 공간인지 명확지 않았으며, 차량 한 대가 들어가는 칸의 길이도 제각각 이었다. 주차된 차량 5대는 모두 주차구역 선 밖으로 차량 일부를 걸쳐놓고 있었다. 진입로 끝에서 자동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듯 들어와 맨 뒤에 있는 차량 뒤에 급정거했다.



    앞차도 뒤차도 불안

    쉼터 이용자인 화물차 기사 김모(49) 씨는 “쉼터는 갓길 옆의 갓길”이라고 말했다. 도로 옆에 추가 도로를 설치했을 뿐 운전자가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여기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들었다”면서도 “그래도 가끔 이곳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안전을 생각하면 휴게소에 주차하고 싶다. 하지만 휴게소는 번잡해 잠이 잘 안 와 차선책으로 졸음쉼터를 택한다. 쉬는 동안에도 불안하긴 하다. 밤에는 안내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고, 이곳을 벗어나 고속도로 본선에 합류하기 전 변속 구간이 짧아 액셀을 힘껏 밟아야 한다.”

    쉼터 바로 옆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5차로와 쉼터 사이에는 가드레일이 있고 쉼터 가장자리에 철제 펜스가 설치돼 있을 뿐이었다. 차량이 펜스 밖으로 추락하면 인근 하천으로 떨어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김씨가 쉼터 주변에 생긴 물웅덩이를 바라보며 “비나 눈이 오는 날 차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지지대라곤 얇은 펜스뿐인데…”라고 말했다. ‘주간동아’는 남사졸음쉼터의 안전 대책과 관련해 도로공사 측에 질의했지만 관계자는 “사고 당시 감속유도차선, 가상 과속방지턱이 설치돼 있었다. 향후 국토교통부 기준의 가·감속차로 기준이 마련되면 추가 보강하겠다”고만 밝혔다.

    다음으로 경기 광주시 번천졸음쉼터를 찾았다. 중부고속도로(하남 방면) 353.3km에 위치한 번천졸음쉼터에서는 2011년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버스정류장이던 이곳은 졸음쉼터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진·출입 구간이나 면적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곳도 2개 차로만큼의 구간이 확보돼 있었다. 즉 차량이 진·출입하고 주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마련한 것이다. 트레일러 운전사 박모(52) 씨가 차에서 내려 차량을 살펴보고 있었다. 진입 차량에 치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박씨는 “평소 졸음쉼터를 이용하지 않는데 차에 문제가 생겨 잠시 정차했다”며 “대형차는 여기 위험해서 못 온다. 사고 나기 쉬운 곳인데 우리 같은 직업운전사가 피해라도 입으면 큰일 난다. 지금도 위험한 상황인 걸 알지만 쉼터 공간이 협소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곳도 대형·소형차 주차 표지판이 의미 없이 세워져 있었다. 특히 소형차 주차 표지판은 주차장의 가장 앞쪽에서 두 번째에 놓여 있어 그 범위를 알 수 없었다. 쉼터에는 ‘차량은 가장 앞쪽부터 차례로 주차하라’는 안내 문구가 있었지만 실제 차량들은 주차선을 지키지 않고 듬성듬성 세워져 있었다. 막 진입한 차가 우왕좌왕하다 사고 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맨 앞에 주차한 차량 3대는 정해진 주차구역을 벗어나 오른쪽 펜스에 최대한 붙어 있었고, 맨 뒤에 선 차량은 자신의 주차 위치가 불안한지 계속 비상등을 깜박였다.

    맞은편인 중부고속도로 하행선(통영 방면)에도 같은 이름의 졸음쉼터가 있다. 쉼터 중간쯤 4m 너비의 보도블록이 있어 그나마 덜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졸음쉼터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사흘 전 졸음쉼터에서 큰 교통사고가 있었다. ‘쾅’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연기가 퍼졌다”며 “쉼터 바로 아래 살고 있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졸음쉼터의 위험성이 높은 이유는 자체 설치 기준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는 변속차로 길이는 국토교통부의 버스정류장 설치 기준을 참고해 마련했는데, 감속차로는 최소 170m, 가속차로는 최소 200m이다. 고속으로 달리던 차가 급히 감속하거나, 막 시동을 건 차가 고속도로 본선으로 합류하기엔 너무 짧다는 지적이 많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졸음쉼터는 설계 당시부터 제대로 된 설치 기준이 부족했다. 특히 변속차로는 안전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구간이기 때문에 휴게소를 기준으로 설치해야지, 버스정류장 기준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해설 2013’에 따르면, 시속 100km로 제한된 도로의 휴게소 진입 감속차로는 최소 215m, 진출 가속차로는 370m로 설계하고, 시속 120km로 제한된 경우 감속차로는 최소 265m, 가속차로는 560m로 설계해야 한다.



    시설 확충 무리, 연간 예산 17억 원 불과

    졸음쉼터와 관련한 사고 예방 대책도 부족한 실정이다. 도로공사 측은 “진·출입구 불법 주·정차 방지 시설을 마련하고, 사고 취약 구간 및 선형 불량 구간에 컬러레인을 설치했으며, 속도 제한·감속 유도를 표시하고, 가상 과속방지턱과 충격흡수시설 등을 추가하는 등 안전시설을 보강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가 둘러본 졸음쉼터의 차량들은 여전히 주차 공간 밖에 차를 세우거나 속도 제한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사고 발생 시 긴급전화 수단도 없었다. 졸음쉼터의 설계 기준에 따르면 안전시설은 ‘본선 분리 가드레일, 진입부 충격흡수시설, 폐쇄회로(CC)TV 1개소’뿐이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휴대전화가 작동하지 않으면 급히 연락할 수단이 전무한 것이다. 인근 휴게소까지는 수십km 떨어진 경우가 보통이라 상황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졸음쉼터는 운전자의 피로를 풀어줘 졸음운전을 방지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다수 쉼터는 ‘일단 공간만 만들어놓은’ 느낌이 강하다. 안전 및 편의시설이 열악해 특히 밤에 이용하기가 불안하다. 도로공사 측에서 안전시설을 좀 더 보완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은 3월 “2011~2014년 졸음쉼터 내부 및 부근에서 교통사고 57건이 발생했다”며 “도로공사 사장은 현재 운영 중인 졸음쉼터의 변속차로 적정 여부를 재검토해 변속차로를 추가 설치하는 등 졸음쉼터의 진·출입구 안전성을 강화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졸음쉼터에 편성된 도로공사의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주간동아’는 도로공사 측에 향후 안전시설 확충 계획에 대해 질의했지만, 도로공사 관계자는 “연간 17억 원가량의 예산을 편성해 가드레일 등 안전시설을 보강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쉼터 대지를 확충하고 차로를 늘리는 등 근본적인 대책에 사용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액수다.

    교통 전문가는 “졸음쉼터의 순기능을 살리는 방향으로 보완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수범 교수는 “졸음쉼터는 장소마다 질적 편차가 크다. 일부 장소는 편하게 쉴 수 있는 반면, 일부는 사고가 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제부터 신설하는 졸음쉼터에라도 제대로 된 설계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변속차로와 주차 공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려면 졸음쉼터를 제대로 운영하려는 도로공사 측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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