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특집 | 藥食 궁합

위험한 약들의 세계

고혈압약과 소염진통제, 두드러기약과 감기약, 아스피린과 위장약은 상극

  • 이지현 동국대 약학대학 외래교수 pharmdschool@gmail.com

    입력2016-05-17 15: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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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복용과 관련한 심각한 문제들 중 하나가 바로 ‘다약제병용(polypharmacy)’이다. 이는 한 명의 환자가 2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나라는 특히 노년층에서 이 문제가 심각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이 하루 평균 복용하는 약의 개수는 약 6.7개다. 가끔 노인이 약국에 와 “약만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하곤 한다. 여기에 자녀들이 챙겨주는 영양제나 소화제, 진통제까지 먹다 보면 하루 동안 약 먹는 횟수가 밥 먹는 횟수보다 많아진다. 젊은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만큼 약에 거부감이 없는 나라가 또 있을까.  

    문제는 여러 약을 섞어 먹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성질환자의 경우 복용하는 약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와 같이 질병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뇌졸중, 심근경색 등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 만성질환자의 경우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중복되지 않는지, 다른 약과 상호작용이 없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먼저 부작용 보고 건수가 가장 많은 문제의 약으로 진통제가 있다. 가정상비약인 감기약 가운데 ‘효과 빠른 코감기약’이라고 표시된 약에도 진통제 성분이 들어 있으며 ‘기침 가래 목감기약’이라고 적힌 약에도 진통제 성분이 포함돼 있다. 감기에 걸린 듯하면 사람들은 흔히 임의로 이런 약을 조합해 먹는데, 이 경우 진통제를 2~3배 용량으로 복용하는 것과 같아 간 기능이 손상되거나 속 쓰림, 위궤양 등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고혈압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소염진통제를 먹으면 혈압약의 효능이 떨어져 혈압이 일시적으로 높아진다. 천식 환자가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천식 발작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이 경우 소염진통제는 피하고 해열진통제(아세트아미노펜 성분)를 선택해야 한다. 이는 바르는 소염진통제나 파스류에도 해당된다. 무심코 소염진통제 성분의 파스를 붙였다 천식 발작으로 호흡 곤란이 와 병원 응급실을 찾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코감기약 성분은 요도괄약근 수축시켜

    산도가 낮은 장에서 작용하도록 설계된 약을 ‘장용정’이라 부른다. 아스피린 장용정이 대표적인데 아스피린이 위산과다, 위궤양 같은 위장관계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장에 가서 흡수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약을 위산을 낮추는 위장약과 함께 먹으면 위장에서 약이 녹아버려 위장관 부작용을 고스란히 얻게 된다. 장용정 변비약은 위에서 약효가 작용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뿐 아니라 위장약 자체가 약물 대사에 영향을 미쳐 많은 약의 효능을 방해하거나 부작용을 증가시킨다.

    급성 심근경색이나 심장 스텐트 시술 후 혈액 응고를 방지하고자 처방하는 클로피도그렐이란 약이 있다. 특정 위산 억제제를 함께 복용할 경우 위장약이 이 약의 효과를 떨어뜨려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일반약으로 구매할 수 있고 감기약에 흔히 처방되는 시메티딘이라는 위산 억제제는 천식약, 간질약, 항혈액응고제 등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약과 상호작용을 한다. 오메프라졸 등의 위산 분비 억제제는 항진균제와 병용 시 항진균제의 효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약효와 관련된 상호작용뿐 아니라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위험한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신경안정제와 졸음 부작용이 있는 항히스타민제를 함께 복용하면 심각한 졸음으로 교통사고나 낙상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항히스타민제는 두드러기약이나 코감기약, 종합감기약에 함유돼 있는 성분으로 반드시 복용 전 졸음 부작용을 확인해야 한다.

    종합감기약에 많이 들어 있는 디펜히드라민, 슈도에페드린 등 코감기약 성분은 요도괄약근을 수축시켜 갑자기 소변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립샘 비대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의 경우 코감기약 선택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다른 약과의 궁합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우울증약은 세로토닌이란 물질을 증가시키는데, 기침감기약이나 일반약으로 판매되는 갱년기 증상 치료제와 함께 복용할 경우 세로토닌이 과하게 높아져 ‘세로토닌 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다. 세로토닌 증후군은 신경과 근육에 이상이 생기고 심한 경우 정신 착란, 혼수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부작용이다. 안전한 갱년기 치료제라고 선전하는 일반약 가운데 ‘세인트존스워트’ 또는 ‘성요한풀’ ‘히페리시엽’으로 표기되는 성분이 있는데 이는 St. John’s wort로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식물성 우울증 치료제로 알려진 생약 성분이다.



    복용약을 의사와 약사에게 반드시 알려야

    이 생약 성분은 항우울제와 같은 작용을 하는 만큼 기침감기약 성분인 덱스트로메토르판과 함께 복용할 경우 세로토닌 증후군의 위험이 있으므로 중복 복용을 피해야 한다. 항우울제는 우울증 치료뿐 아니라 다이어트 처방에도 많이 쓰이므로 다이어트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라면 반드시 성분을 확인해야 한다. 항우울제인 세인트존스워트는 약물 대사에도 영향을 미쳐 많은 약과 상호작용을 하므로 간단한 감기약이라도 반드시 의사나 약사와 상담한 뒤 약을 선택해야 한다.

    이 밖에도 약이 체내 환경을 변화시켜 약효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혈압약으로 많이 쓰는 이뇨제는 소변을 배설하게 하면서 우리 몸에 있는 나트륨, 칼륨 같은 전해질도 함께 빠져나가게 만든다. 전해질이 불균형해지면 어지러움, 피로 같은 가벼운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일부 심장약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부작용을 증가시키는 등 건강을 위협하는 약물 상호작용의 원인이 되므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의사나 약사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을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완전한 오해다. 의약품 안심 서비스(Drug Utilization Review·DUR)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 서비스는 동일 기간 복용하도록 처방된 약의 상호작용을 검토해줄 뿐이다. 받아둔 약을 뒤늦게 복용해 처방 일수와 투약일이 다른 경우, 일반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환자 본인이 얘기하지 않으면 의사나 약사가 알아낼 방법이 없다.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 가능한 일반약,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건강기능식품 등도 심각한 상호작용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새 약을 먹기 전 반드시 의사나 약사와 상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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