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스포츠

명장(名將)과 복장(福將) 사이 류중일 삼성 감독의 고민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무색게 한 2016시즌 초반 대몰락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6-05-17 14: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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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동안 666경기에서 400승을 거두며 승률 0.611,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 그리고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을 거둔 감독.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이룬 업적이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은 한국 프로야구의 ‘3김’이라 부르는 김응용 전 감독,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도 다가서지 못한 대기록이다. 명장 칭호를 받는 데 부족함이 없는 성적. 그러나 류 감독은 2016년 자신의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강팀은 망해도 3년 간다?

    올 시즌 개막 전 삼성 전력에 대해 야구해설가 등 전문가들은 대부분 “윤성환과 안지만을 정상적으로 기용할 경우 4위권 전력”이라고 분석했다. 그 바탕에는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의 프로야구 버전 ‘강팀은 망해도 3년은 간다’가 있었다. 삼성은 지난해 말 대주주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뀐 뒤 그동안 다른 구단을 압도했던 재정 지원이 감소하며 팀 운영 흐름이 바뀌었다. 리그 최고 3루수로 꼽히는 박석민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했지만 붙잡지 못했고, 폭등한 몸값을 감당하지 못해 외국인 타자 야마이코 나바로도 일본 지바롯데 마린스에 뺏겼다. 팀의 3번과 5번 타자가 동시에 팀을 떠난 것이다.

    여기에 팀 마무리 투수이던 임창용은 지난해 불법 해외원정 도박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삼성은 임창용을 방출했다. 윤성환과 안지만은 같은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스프링캠프부터 팀 분위기가 정상적일 수 없었다. 삼성은 시즌 초반 마운드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윤성환과 안지만을 조기 복귀시켰다. 채태인을 넥센 히어로즈로 보내고 잠수함 투수 김대우를 영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과 박한이, 차우찬 등 주축 전력의 부상 속에서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가까스로 전력을 추슬러 5월 10일 5위권까지 회복했지만 지난 5년간 보여준 절대적 강팀의 면모는 찾기 어렵다.

    류 감독은 그동안 빼어난 성적을 올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명 지도자로 꼽혔지만, 이제 많은 것이 달라진 환경에서 진정한 리더십과 전술전략 등 감독으로서 능력을 보여줘야 할 상황이다. 류 감독을 비판하는 일부 시선은 그동안 삼성의 전력이 워낙 뛰어나 감독 공헌도가 낮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올 시즌 한화, 1990년대 중반 이후 LG 트윈스 등 아무리 좋은 전력을 갖춰도 감독의 리더십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팀 성적이 달라진 사례는 수없이 많다.



    류 감독은 투수코치 등 참모진에게 귀를 열고 선수들에게는 격의 없이 다가가는 친근한 리더십으로 스타가 많은 삼성을 하나로 응집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자신의 전문 영역인 수비 포메이션 시스템 등의 완성도는 리그 정상급이다.

    하지만 삼성의 안팎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여전히 구단은 우승이 목표지만 환경이 다르다. 한 해설가는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 삼성은 감독이 원하는 전력을 맞춰주는 팀이었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내부 FA는 필요하다 싶으면 파격적인 액수를 투자했다. 2004년 이후 외부 FA 영입이 없다고 하지만 장원삼의 현금 트레이드, 해외에서 뛰던 이승엽, 임창용의 복귀 등은 모두 거액의 FA계약 이상으로 팀 전력 상승을 이끌었다”며 “과거처럼 파격적인 투자를 할 수 없는 팀 상황에 맞춰 자신만의 색깔을 팀에 투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해설가는 “그동안 마운드 쪽만큼은 류 감독이 크게 고민을 안 해도 잘 돌아갔다. 외국인 투수에 대한 투자가 항상 좋았던 데다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진에 있고 다른 팀에 가면 주전 마무리급인 불펜이 3명씩 있었다. 흔들리고 있는 투수 전력의 재건이 올 시즌 성적은 물론 앞으로도 삼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류 감독도 마운드 전력 약화를 이미 지난 시즌 말부터 고민했다. 삼성은 2014시즌이 끝나고 배영수와 권혁이 FA자격을 획득했지만 붙잡지 않았다. 배영수는 한때 팀 에이스였고 권혁은 리그 최고 좌완 불펜 요원이었지만 거액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미 완성된 팀 전력과 신인 육성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시즌부터 류 감독은 “퓨처스(2군)에 가도 선수가 없다. 빨리 키워야 하는데 큰일”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구단과 생각의 차이가 존재했다.



    마무리 투수에 대한 고뇌

    마운드 전력이 조금씩 균열되고 있을 때 불법 해외원정 도박 사건이 터졌다. 팀 불펜의 중심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 이탈하면서 삼성 전력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임창용이 있었다면 7회 심창민→8회 안지만→9회 임창용으로 이어지는 불펜이 건재할 수 있었다.

    2005년 선동열 전 감독 때부터 설계된 삼성 마운드 전력의 근간은 강력한 불펜이다. 선발투수가 6회까지 전력을 다하면 막강한 불펜들이 승리를 지켜주는 구조였다. 그러나 가장 정점인 마무리 투수가 흔들리면서 삼성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류 감독은 팀 에이스인 차우찬을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 보직을 바꾸는 고민을 개막 직전까지 했다.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마무리 투수에 대한 깊은 고심이다.

    대구 경북고를 졸업한 류 감독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다. 현역 시절 최고 유격수였고 골든글러브 수상자였다. 특히 1987년 삼성 입단 후 선수, 코치, 감독까지 단 한순간도 푸른색 유니폼을 벗은 적이 없다. 프로야구 세계에서 한 팀에, 그것도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이 선수부터 감독까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는 류 감독이 유일하다.

    스스로도 이 부분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그러나 류 감독의 계약기간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성격 좋은 류 감독은 종종 “올해로 30년 근속했다. 더 할 수 있을까”라며 웃지만 많은 고뇌가 담겨 있다. 올해 재계약에 성공한다 해도 시즌이 끝나면 차우찬과 팀의 4번 타자 최형우가 FA자격을 획득한다. 모두 해외 진출에 관심이 높다. 이승엽은 2017시즌까지 뛰고 은퇴하겠다는 마음을 이미 굳혔다.

    감독 부임 후 첫 5년이 최고 선수들과 함께 보낸 영광의 시기였다면 6년째인 올해는 변화기, 그리고 재계약한다면 내년부터 3년은 류 감독이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않은 리빌딩, 팀 재건 시기가 될 전망이다. 류 감독은 강팀을 잘 지휘하는 능력,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서 흔들리지 않고 전력을 다하는 능력은 입증했지만 조범현 kt 위즈 감독, 김경문 NC 다이노스 감독 등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리빌딩은 생소한 영역이다. 류 감독은 “올 시즌 초반 어려움은 예상했지만 외국인 타자 아롬 발디리스의 부진이 매우 뼈아프고 외국인 투수 콜린 벨레스터의 부상 여파도 크다. 부상 선수도 참 많은데, 2011년에도 시즌 초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승했다”며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인 긍정적인 신념을 지키고 있다. 2010년대 한국 프로야구 최고 감독은 이제 자신이 진정한 명장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할 혹독한 시험대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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