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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한민국 개조론

“친박도 친노도 무의미, ‘가치’ 세우는 세력만 살아남는다”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인터뷰 |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친박도 친노도 무의미, ‘가치’ 세우는 세력만 살아남는다”

흔히 19대 국회를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말한다. 많은 이가 지적했듯, 대한민국 국회는 매번 ‘역대 최악’이라는 타이틀을 경신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반응해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대의제 본연의 기능 대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눈을 밝힌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도대체 왜 한국 정치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입법부를 입법부답게, 정당을 정당답게 만들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은 무엇인가.



유승민 연설이 감동적이었던 이유

“친박도 친노도 무의미,  ‘가치’ 세우는 세력만 살아남는다”

홍중식 기자

이에 답할 수 있는 인물로 김수진(61)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떠올린 것은 그가 지난해 초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가 발행하는 학술지 ‘시민과 세계’에 기고한 글 때문이었다. 정당이 고유의 정체성이나 가치 같은 집단적 요인 대신 개인 이익만을 좇는 한국 정치의 한계를 비판한 글이었다. 또 한 번의 국회가 끝나고 새로운 국회를 위한 총선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서구 정치와 한국 정치를 비교해가며 문제의 뿌리를 추적하는 그의 분석은 귀 기울일 만하다. 인터뷰는 1월 23일 오전 서울 방배동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 정치권의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정당 지지율 순위가 뒤바뀔 정도로 숨 가쁘다. 최근 상황을 평가하자면.▼
“안철수 의원의 선택부터 이야기해보자. 솔직히 내 눈에는 그가 새로운 가치를 위해 창당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선언하는 기자회견만 해도, 본인은 비장했겠지만 감동이 크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다. 그 직전에 그가 문재인 대표와 벌인 일련의 논쟁이 노선이나 지향점에 관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는 공천권을 둘러싼 갈등, 이해관계의 충돌로 읽혔을 뿐이다. 국민의당 창당 이후 행보도 다르지 않다. 콘텐츠가 명확지 않은 것이다. 연이은 영입 역시 뚜렷한 노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엄청났던 지지율이 빠른 속도로 빠진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지난해 여름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남긴 연설을 복기해보자. 그때 나는 굉장히 감탄했다. 당시의 갈등 역시 본질은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의 공천 다툼이었지만, 큰 힘에 찍혀 밀려나는 순간 유승민은 이를 가치의 싸움으로 만들어버렸다.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는 무엇인지, 보수는 어떤 가치로 거듭나야 하는지 언급하면서다. 새누리당은 원래 이익 다툼을 가치의 싸움으로 포장하는 데 능하다. 총선에서도 이런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승부는 뻔하다고 생각한다.”

“친박도 친노도 무의미,  ‘가치’ 세우는 세력만 살아남는다”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 선언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 같은 관점에서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의 최근 행보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을 영입하면서 상승세로 반전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하기 짝이 없을 앞으로의 과정을 생각하면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지만, 분명 그는 경제민주화라는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문재인 대표의 영입 연설에서는 더민주당이 경제적 불평등이나 격차, 차별 해소 같은 어젠다를 선점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문제가 2016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탈당을 고심하던 박영선 의원 같은 이도 잔류를 선택한 것 아니겠나.
결론은 하나다. 중요한 것은 가치이고 지향점이다. 우리 당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정확히 설명하는 세력만이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다. 아무리 새로운 정치를 말해도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주지 못하면, 국회의원은 되고 싶은데 공천받을 길은 막막한 사람들만 모여들 뿐이다. 누구보다 유권자가 이를 꿰뚫어본다.”





2004년 박근혜와 2016년 박근혜

▼ 답이 그렇게 명확하다면 한국 정치가 현재의 이해관계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경위는 무엇이라고 봐야 하나.▼
“민주화 이후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출발점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민주화 투쟁 이후 ‘양김’(김대중, 김영삼)이 갈라진 것이 따지고 보면 지역이라는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노선만 놓고 봐서는 단일화를 통해 노태우 후보에 맞서는 게 순리였겠지만, 그들의 선택은 달랐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로 단일화돼 대통령이 됐다면 현재 구도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민주화의 에너지를 그대로 개혁 작업에 투입했다면, 오히려 한국 정당은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민주화 세력이 분점하는 구도로 재정립됐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스페인이 바로 그런 사례였다. 1975년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사망한 뒤 치른 첫 번째 정초 선거(Founding Election)에서 UCD(민주중도연맹)라는 범민주 단일세력이 승리했고, 권위주의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던 정치세력을 일소한 후 사회당과 국민당으로 갈라져 양당체제를 굳혔다.
어떻든 이후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을 기준으로 보면 민심은 분명 왼쪽으로 움직여왔다. 이전 한국 정치의 중심추가 워낙 오른쪽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함께 외환위기가 터졌고,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를 피할 수 없었다. 이전까지 한국의 성장 경로였던 제조업 기반 발전 모델에서는 정부가 자금을 쥐고 통제하는 일이 중요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이 모델은 끝났고, 대안을 모색하기도 전에 금융 중심의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린다.
이후 벌어진 일은 모두 아는 바와 같다. 김대중 대통령 본인은 ‘대중경제론’이라는 만만찮은 콘텐츠로 무장한 정치인이었지만 본인의 뜻을 펼칠 기회가 없었고, 노무현 정부는 경제지표상으로는 나아졌을지 몰라도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을 되돌릴 실력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50대 유권자가 빠른 속도로 보수화된 이유는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명예퇴직을 당한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에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결과 민심은 다시 우클릭을 시작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집권으로 연결됐다.
지금의 야권 주류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 무렵 호남 유권자의 지지에 PK(부산·경남)만 규합하면 열린우리당을 전국 정당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PK 출신의 젊은 인재들을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으로 발탁해 포진시켰던 배경이다. 이렇게 특정 지역에 자리를 주고 기회를 주면 자신들을 찍어주리라는 단견이었다. 지향점이나 가치관이 아닌 이익으로 세력을 규합하려 했다는 뜻이다.”

“친박도 친노도 무의미,  ‘가치’ 세우는 세력만 살아남는다”

2004년 3월 24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당직자들이 현판을 천막당사로 옮기고 있다. 동아일보


▼ 당시 야당, 그러니까 지금 여권의 대응이 훨씬 현명했다는 뜻인가.▼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가치의 싸움을 시작한 게 바로 그 무렵이다. 노무현 정부가 이른바 3대 개혁법안 싸움을 시작하자, 박근혜 대표는 당의 컬러를 영남당 혹은 권위주의 후신정당이 아니라 보수정당이라고 못 박아버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수세에 몰렸던 재계와 부유층, 보수 성향의 언론과 시민단체가 이러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이른바 범보수연대의 출현이다. 이렇게 해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35%의 유권자가 만들어졌고, 여권은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다.
반면 최근 새누리당 주류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2004~2008년 한나라당을 혁신했던 박근혜 대표가 지금의 박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책과 가치는 사라지고 친박, 진박(진짜 친박근혜)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원래 새누리당은 정체성으로 승부하는 당이지 인물로 장사하는 정당이 아니다. 여권 주류가 자신들의 강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 5년 단임 대통령제나 지역별 소선거구제 같은 정치제도가 상황을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개헌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같은 배경일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유럽 정치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나 역시 장기적으로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나 내각제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이를 도입하면 오히려 일당 장기집권의 가능성이 더 크다.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장기집권이 나타난 사례로 흔히 일본 자민당, 독일 기민당,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사민당을 꼽는다. 예컨대 일본 자민당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옆에 사회당이라는 위협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적 유권자들이 결집해 자민당을 옹위했던 것이다.



개헌 논의 10년, 핀란드의 경우

한국의 경우 강력한 좌파 정당이 없어 가치를 중심으로한 분화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 그 대신 보수진영은 급진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상대 정당이나 세력에게 급진파라는 색깔을 씌운다. 분단 상황을 이용해 없는 사회당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들의 결집을 노리는 셈이다. 이 전략이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의 보수정치세력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각제가 도입된다면 장기집권 시나리오는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간 우리가 대통령제를 운영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와 경험이 아깝다. 내각제를 도입하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고,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줄을 이을 것이다. 내각제를 선뜻 응원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통일을 생각한다면 내각제가 맞다. 독일 사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통일 이후 지금의 북한 지역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 호남을 능가하는 가혹한 차별에 시달릴 게 뻔하다. 이들의 정치적 불만을 다독이려면,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보다 각 세력의 목소리가 탄력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내각제가 낫다.”
▼  지역주의를 허물기 위해서는 입법부 절반을 비례대표로 뽑는 이른바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답이라는 의견도 있다. 여권을 중심으로 이원집정제 제안도 꾸준히 나온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내각제가 결합하는 안에 보수진영이 동의할지 극히 의심스럽다. 지역기반을 상당 부분 무력화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내각제로 가는 중간 과정 차원에서 이원집정제를 먼저 해보자는 것도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원집정제를 제대로 실시해본 나라는 선진민주국가를 통틀어 핀란드가 유일무이하지만, 이는 우르호 칼레바 케코넨이라는 걸출한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경을 접하던 소련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국가 명운이 달려 있던 핀란드는, 이 부분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케코넨에게 외교·국방 전권을 부여한 대통령직을 20여 년간 맡겼다.
핀란드가 순수내각제 개헌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 역시 케코넨 대통령의 은퇴에 소련 붕괴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그러고도 10년을 연구했다. 의회 내에 거당적 헌법개정연구위원회를 만들고 고민을 거듭했다. 우리도 개헌을 하자면 그 정도 시야를 가져야 한다. 의회 임기 1~2회를 가뿐히 넘는 장기적인 플랜으로 추진해야 당리당략이나 개인적 이해와는 무관한 큰 틀의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간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질 테고, 정당들 역시 내각제라는 흐름에 맞게 변신할 수 있다. 여당이 이번 정권 임기 내 개헌을 하겠다고 나서면 야당은 결사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 제도는 긴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
▼ 결국은 동력이 문제다.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로 나아가도록 각 정당을 강제할 힘은 유권자밖에 없는 것 아닌가.▼
“우리 헌법의 틀은 분명 대의민주주의지만, 자세히 보면 참여민주주의 성격을 갖는 헌법적 근거가 곳곳에 있다. 1970년대 이후 세계 민주주의는 분명 진화해왔다. 대의제의 활력이나 효용이 한계에 이르면서 정치인들끼리 이익을 주고받는 카르텔 정당 현상이 곳곳에서 고착화하자, 이에 대항해 결사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사이버스페이스를 활용해 유권자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확장해나가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굳이 이름 짓자면 포스트모던한 아고라의 출현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의기제는 엉망이었지만, 반대로 그 덕에 참여기제가 발달해온 측면이 있다. 제도권 정치 못지않게 광장의 목소리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스템이다. 결국 이러한 장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이 힘으로 제도정치의 한계를 보완해 변화로 연결할 방법은 무엇이냐가 관건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참여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정당마저 출현하고 있다.



브랜드가 승리를 만든다

통상 민주국가에서 거대한 위기가 대안적 정치담론으로 만들어지는 데는 10년쯤 걸린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제위기에 처했던 미국은 80년대 중반에야 그 대응책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최근 민주당 버니 샌더스 대선 예비후보처럼 이전과 전혀 다른 색깔의 후보가 출현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신자유주의 이후 방향 전환을 고민하는 목소리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무조건 긍정적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미국만 해도 트럼프 현상이나 티파티 같은 정반대 현상이 함께 튀어나오지 않았나. 공론장의 여론을 합리적으로 이끄는 정치적 견인이 중요하다.
지난해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은 예상 외로 참패했다. 온라인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에드워드 밀리밴드 대표의 인기가 막상 투표장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반면 1997년 토니 블레어의 승리는 개인의 인기가 아니라 ‘제3의 길’이라는 브랜드가 만들어냈다. 2000년 미국 공화당의 대선 승리 역시 조지 W 부시라는 후보 개인이 아니라 ‘네오콘(신보수주의)’이라는 지향점의 성공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친박이냐 친노(친노무현)냐는 분수령이 될 수 없다. 각자가 지향하는 가치를 브랜드로 만들어 유권자를 설득하는 세력만이 승리를 거둔다. 그것만이 이해관계와 인물 중심 이합집산에 매몰돼 있는 한국 정치를 바꿔나갈 유일한 길이다.”

※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구 정치를 프리즘으로 정당과 정치제도 문제에 천착해온 김수진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5년부터 이화여대에 재직하고 있다. 유럽정치연구회 회장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을 지냈고, 저서로는 ‘유럽민주주의와 노동정치’ ‘민주주의와 계급정치’ ‘한국 민주주의와 정당정치’ 등이 있다. 학술활동과 더불어 현실 정치에 대해서도 왕성한 발언을 이어온 대표적인 학자다.






주간동아 2016.02.03 1024호 (p16~19)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인터뷰 |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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