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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구의 세상이 때론 진실을 말하죠”

데뷔 40주년, 배우 인생 방점 찍은 윤석화

  • 구희언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hawkeye@donga.com

“허구의 세상이 때론 진실을 말하죠”

“허구의 세상이 때론  진실을 말하죠”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연극배우 윤석화(60)가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로 돌아온다. 1998년 연극 ‘마스터 클래스’에서 칼라스 역을 맡은 이후 18년 만이다. 75년 민중극단의 연극 ‘꿀맛’으로 데뷔해 83년 연극 ‘신의 아그네스’로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97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미국 뉴욕 공연 캐스팅 과정에서 제외되며 슬럼프에 빠졌다. 이듬해 출연한 ‘마스터 클래스’는 그런 그에게 ‘이해랑연극상’을 안겨주고 심연에서 끌어올려준 작품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예술이 필요해

3월 10일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마스터 클래스’ 연습에 한창인 그를 1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만났다. 설치극장 정미소와 공연제작사 들꽃컴퍼니 대표로도 활동 중인 그는 이름 앞에 붙는 여러 수식어 중에서도 ‘연극배우’라는 말이 가장 좋다고 했다.
“막상 40주년이 되니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연극은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남길 수 있는 것도 없고,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외롭고 쓸쓸할 때도 있지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처럼, 쓸쓸하기에 오늘도 이 길을 걷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날 때 같이 꽃피우고 싶은 동지가 있었고, 민들레 씨앗처럼 슬쩍 날아와 준 친구가 위로가 됐죠. 무엇보다도 관객. 가뭄이 들었을 때도 단비가 돼주고, 홍수가 났을 때 구호품이 돼준 고마운 분들이죠.”
이번 작품에서는 그와 오랜 인연을 맺은 연극계의 거장 임영웅이 연출을, 지휘자 구자범이 음악감독과 반주자 역을 맡았다. 그는 “40년간 내가 왜 이 길을 걸었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 작품에 녹아 있다”고 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대답, 걸어온 길의 의미가 이 작품에 녹아 있어요. 칼라스처럼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지만 그의 예술 정신, 그토록 오페라를 사랑한 마음만큼은 배우고 싶었어요. 관객에게는 예술이 도대체 이 시대 왜 필요한 것인지를 꼭 들려주고 싶었고요.”
먹고살기도 바쁜 시대, 예술을 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먹고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면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물질은 조금 부족해도 행복할 수 있지만 생각이 결여되면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불행하다. 중요한 건 정신의 양식”이라고 강조했다. 책을 많이 읽고, 음악과 미술을 가까이한다는 그는 음악회에 갔을 때 큰 영감을 얻는다. 그는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내가 저 소리를 내는 게 가능할까’ 가늠해보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과학이나 셈법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누구나 가난을 무릅써야 했던 과거보다 풍요로운 지금이 그때보다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물질을 경계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신, 가치, 철학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을 접하면 자기다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커지거든요.”
18년 만에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려니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그는 “모노드라마를 했을 때보다도 대사가 많다. 오페라 아리아에 이탈리아어까지 익혀야 해서 다 외울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고 전처럼 에너지가 나올까 걱정도 되지만, 그렇기에 전보다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했다. 전에는 칼라스를 하기에 이른 나이였다면, 이제 제 나이를 찾은 것 같다. 에너지를 표출하고 잘 컨트롤하기 위해 피트니스센터에서 개인 강습(PT)을 받고 있다. 36회를 끊었는데 벌써 20번은 나갔다”며 웃었다.
인생 대부분을 ‘무대’라는 허구의 땅에서 살아온 윤석화. 그는 “그 허구의 세상이 때론 진실을 말한다. 무대에 오르는 건 일상의 타성에 빠져 있던 내가 무대라는 땅에서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배우는 평생 배워야 해서 배우인 것 같아요. 새로운 작품을 하면 철저히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깨달음을 얻는데, 그걸 관객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요. 왜 아직도 배우를 하느냐고 물으면 ‘어려워서 한다’고 말해요. 다 이뤘다면 내려올 수도 있지만,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그래서 괴롭기도 하죠. 가끔은 스스로 살아 있는 악기 같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또 다른 형태, 모양, 느낌, 색을 전달하는 휴먼 악기 말이죠.”



이제, 치열하기보다 자유롭게

무대에서 바닥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지만, 무대만 내려오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는 그다. 그는 “왕비과, 공주과라는 오해가 많지만 사실은 살림 좋아하는 무수리”라며 웃었다.
“손주 볼 나이에 아들딸을 키우다 보니 여러모로 시간을 쪼개 써야 해서 무수리가 될 수밖에 없었죠. 요즘은 아침 6시, 6시 반이면 일어나 아이들을 깨워 학교 보내고, 커피 마시고 기도하고 일과를 시작해요.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 공연 준비도 하고 기획까지 해내야 하니 멀티플레이어가 따로 없죠. 한번은 정육점에서 장을 봤는데 정신이 없어서 주인아저씨 휴대전화를 바꿔 들고 왔더라니까요(웃음).”
2003년 아들 수민, 2007년 딸 수화를 입양한 그는 10년 넘게 미혼모 복지시설인 동방사회복지회에서 국내 입양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입양기관과 미혼모 자립을 위한 콘서트도 지속해서 연다.
“아이에게는 사랑이 최고 묘약이에요. ‘저 아이의 씨가 어떨까’를 고민하거나 입양의 부정적인 사례만 보고 입양을 꺼리는 분도 있는데, 그건 확률적인 문제일 뿐이죠. 자기 자식이라고 말썽 피우지 않을 거라는 법도 없잖아요? 사랑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베이스를 깔고 아이를 대한다면 언젠가는 아이들이 한 그루 나무가 돼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울 거예요. 큰 나무, 작은 나무, 때로는 들풀로도 자라나겠지만 들풀이면 어떻고 큰 나무면 어떤가요.”
그의 인생에도 가뭄기가 있었고, 홍수로 모든 게 쓸려가버린 일도 있었다. 그는 “그때마다 기도했다. 믿음이 없고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했다면 아마 죽어도 백번은 죽었을 것”이라며 “힘든 상황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 건 관객과 동료였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이 ‘예술과 삶이라는 게 저렇게 치열한 거구나’를 느끼고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배우를 할 거라는 그는 이제 치열하게 살기보다 어떤 배역이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즐기고 싶다고 했다.
“새로 자라는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목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잖아요. 이제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치열한 작업은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요.” 








주간동아 2016.02.03 1024호 (p108~109)

구희언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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