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4

2016.02.03

국제

독재자 무가베의 ‘백세인생’

짐바브웨 철권통치 36년…후계자는 42세 연하 부인?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truth21c@empas.com

    입력2016-02-01 1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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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1일 92회 생일을 맞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이 ‘세계 최고령 독재자’라는 기록을 새롭게 쓰고 있다. 1980년 영국으로부터 짐바브웨가 독립한 이래 지금까지 통치해온 그는 임기가 2018년까지여서 앞으로 2년간 권좌에 앉아 있을 수 있다. 무가베는 “100세까지도 대통령을 할 수 있다”면서 “신께서 나에게 긴 수명을 허락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무가베는 매년 초호화 생일잔치를 벌이면서 노익장을 과시해왔다. 100만 달러(약 12억 원)가 들어간 지난해 91회 생일잔치는 세계 3대 폭포 가운데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 인근에 자리한 한 고급호텔 골프장에서 열렸다. 잔칫상에는 대형 케이크 7개와 캐비아, 고급 위스키는 물론 코끼리 2마리, 들소 2마리, 영양 2마리, 임팔라 5마리 등 진귀한 야생동물 고기로 만든 음식들이 올라왔다. 올해도 집권여당인 아프리카 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은 80만 달러를 들여 생일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제1야당 민주변화운동(MDC)과 시민단체들은 생일잔치 비용을 자선단체나 병원 등에 기부하라고 요구하지만, Zanu-PF는 요지부동이다.



    방대한 지하자원, 그러나 세계 최빈국

    무가베는 독립영웅이자 건국의 아버지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5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포트헤어대를 졸업한 이후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 70년대 백인이 통치하던 로디지아(짐바브웨의 전 이름)의 해방을 위해 게릴라 투쟁을 전개했다. 게릴라 지도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독립 이후 초대 총리에 취임했고, 87년 총리직을 없애고 대통령제를 신설한 후 초대 대통령에 당선했다.
    이후 그는 권력 유지를 위해 반대파를 숙청하고 고문을 자행하는 등 인권 탄압도 서슴지 않았다. 욕실 25개가 딸린 2600만 달러(약 313억3000만 원)짜리 저택에 사는 등 부정축재에 몰두해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부인 그레이스(50) 역시 사치로 악명이 높다. 그는 무가베의 비서 출신으로 영부인 자리에 올랐으나, 그 과정이 지금까지도 구설에 오른다. 무가베는 투병 중인 아내가 있었지만 유부녀인 그레이스와 불륜에 빠졌고, 공군 조종사인 그레이스의 남편을 교육 명목으로 중국으로 장기 파견해 두 사람이 이혼하도록 유도했다.
    무가베는 아내가 죽자 1996년 그레이스와 재혼했다. 이후 그레이스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구찌 등 명품 쇼핑에 열을 올려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사왔다. ‘짐바브웨의 마리 앙투아네트’ ‘구찌 그레이스’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2009년에는 홍콩에서 명품 쇼핑을 하다 자신을 촬영하던 사진기자를 폭행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짐바브웨는 영국 식민지였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비교적 잘사는 나라에 속했다. 일찍이 유럽인들이 이 지역을 ‘아프리카의 진주’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렀을 정도. 기후 조건과 토지 상태가 양호하고 경작지도 넓어 식량 창고 노릇을 했다. 국기에 광물자원을 뜻하는 노란색을 사용할 정도로 천연자원도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세계   2위 매장량을 자랑하는 백금, 3위인 크로뮴과 리튬 등 희토류로 분류되는 광물 30여 종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우라늄 매장도 확인됐다.
    그러나 무가베의 독재와 실정이 누적되면서 짐바브웨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전락한 상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42달러(약 125만5000원)로 세계 156위다. 국민의 고통은 이미 한계선을 넘어섰다. 인구 1200만 명 가운데 3분의 1이 식량 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300만 명이 고향을 떠나 남아공 등 이웃국가로 일찌감치 떠났다. 실업률은 95%. 특히 짐바브웨는 세계적으로 인플레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인플레율이 5000억%에 달해 화폐는 말 그대로 휴지조각이다.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2015년 6월 자국 화폐인 짐바브웨달러를 폐기했다. 지금은 미국 달러화와 남아공 랜드화가 통용되고 있으며, 1월 1일부터 중국 위안화도 법적으로 공용통화가 됐다. 중국이 지난해 말 만기가 도래한 짐바브웨의 채무 4000만 달러(약 482억 원)를 탕감해주자 짐바브웨 정부가 그 보답으로 시행한 조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2월 짐바브웨를 방문해 발전소 건설 등을 위해 12억 달러 차관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짐바브웨는 중국의 지원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상태다.
    게다가 최근 들어 무가베의 건강에도 노란불이 켜졌다. 짐바브웨 정부는 그의 건강 악화설을 강력히 부인하지만, 보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다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터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만날 당시 제대로 걷지 못했고, 지난해 10월 인도를 방문했을 때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악수하려다 넘어질 뻔해 경호원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야권에서 그의 건강 문제를 제기하자 영부인 그레이스는 “무가베 대통령이 100세가 될 때까지 통치할 수 있도록 특수 휠체어를 제작할 것”이라면서 “내가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그가 계속 집권할 수 있게 도울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미 수렴청정?

    무가베 유고 사태가 발생할 경우 누가 짐바브웨를 통치할지는 불확실하다. 그가 후계자를 지목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에머슨 음난가와(60) 제1부통령과 펠레케젤라 음포코(75) 제2부통령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누가 유력한지는 알 수 없다. 이를 이용해 무가베는 충성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무가베가 지난해 말부터 한 달간 두바이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첫 두 주는 음포코 제2부통령이, 뒤의 두 주는 음난가와 제1부통령이 각각 대통령 대행을 맡았다. Zanu-PF 내에선 두 사람의 지지세력들이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다.
    무가베가 가장 믿을 수 있는 부인 그레이스에게 권력을 넘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실제로 그레이스는 최근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다. Zanu-PF 여성연맹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무가베를 대신해 국내외를 방문하며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한 지방행사에 참석해서는 “일부는 내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왜 안 되느냐. 나 역시 짐바브웨 국민이 아니냐”라고 반문해 대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그레이스가 이미 수렴청정을 하고 있거나, 고령의 무가베를 조종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을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무가베는 2018년 차기 대통령선거에도 Zanu-PF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권력욕의 화신인 그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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