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6

2022.09.16

박쥐가 말벌 소리를 내는 까닭은?

[궤도 밖의 과학] 포식자 올빼미가 싫어하는 말벌 흉내내기 전략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2-09-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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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상황에서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은밀하게 숨기도 하지만, 간혹 큰 소리를 내거나 몸에 힘을 주며 허세를 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능력 중 하나로 속에 무시무시한 힘을 감추고 있기도, 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기도 하다. 중요한 건 이러한 방식들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꽤 오랫동안 지구에서 버텨낸 곤충이나 동물의 경우 이런 생존 전략을 굉장히 잘 사용하는 편이다.

    서로 잡아먹거나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경쟁하는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서 다양한 전략들이 발전해왔다. 주변 환경과 비슷한 무늬나 색으로 변하는 보호색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어져온 기술이다. 보호색은 크게 두 가지 능력으로 활용이 가능한데, 천적을 피하기 위한 숨는 능력과 먹이를 사냥할 때 필요한 은폐 능력이다.

    생존과 먹이 사냥을 위한 보호색

    카멜레온. [GETTYIMAGES]

    카멜레온. [GETTYIMAGES]

    우선 보호색으로 무척이나 잘 알려진 카멜레온의 경우 과거에는 다른 동물들처럼 몸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색소를 섞거나 분산시켜 피부색이 변하는 것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피부의 결정구조를 나노 수준으로 바꾸면서 다양한 빛의 파장을 활용하는 신기한 광학적 변화가 변신의 핵심 기술인 것으로 드러났다. 카멜레온의 피부에는 빛을 반사하는 얇은 층이 2개나 존재하는데, 이러한 피부층을 수축 혹은 이완시키는 과정에서 아주 미세한 격자의 간격과 구조가 바뀐다. 빛은 이런 구조 속에서 반사되거나 간섭이 일어나는데, 바뀐 빛의 경로로 인해 파장대가 이전과 달라지고 결국 피부색이 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일상적인 상태의 카멜레온은 주로 녹색을 띠지만, 피부에 다른 변화가 가해지면 빨간색이나 노란색 등으로 바뀐다. 이처럼 색소 없이 색이 나타나는 것을 구조색이라고 하며, 주변 환경의 영향뿐 아니라 이성에게 구애하거나 화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몸의 색을 바꾸기도 한다.

    난초사마귀(왼쪽)와 마다가스카르 토종 도마뱀. [GETTYIMAGES]

    난초사마귀(왼쪽)와 마다가스카르 토종 도마뱀. [GETTYIMAGES]

    숨는 목적이 생존이 아니라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다. 난초꽃을 닮은 난초사마귀의 경우 겉보기엔 약한 식물 같지만, 방심하고 가까이 갔다가는 순식간에 먹혀버린다. 나무에 붙어 있으면 아예 알 수가 없는 마다가스카르 토종 도마뱀도 마찬가지다. 1848년 영국에서 처음 발견된 검은색 가지나방은 원래 흰색이었으나, 산업혁명으로 주요 서식지가 온통 석탄으로 검게 뒤덮이자 새 같은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검은색을 보호색으로 갖게 됐다. 밝은색 나방의 생존율이 떨어져 환경에서 도태되고, 살아남은 어두운색 나방의 개체수가 늘어난 것이다. 다만 진화 흐름에서 갑자기 변한 나방의 색은 168년 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는데, 과학자들은 가지나방의 DNA를 이루는 40만 개의 염기를 모두 분석해 어떤 유전자가 추가돼 날개색이 검게 변했는지 알아냈다.

    먹고 먹히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목숨 건 전략

    보호색과 반대되는 색으로 경계색이 있다. 경계색은 눈에 매우 잘 띄는 색으로, 그만큼 포식자들이 달려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다행히 경계색을 지닌 부류는 강력한 힘이나 독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화려한 독버섯에 몇 번 당하고 나면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듯, 화려한 색을 보고 오히려 천적이 겁을 먹곤 한다.



    독화살개구리. [GETTYIMAGES]

    독화살개구리. [GETTYIMAGES]

    중남미 열대우림에 사는 독화살개구리는 색깔이 빨갛거나 파랗고 알록달록한 데다, 크기도 3㎝ 정도로 아주 작지만 독성이 무척 강해 사람에게도 치명적이다.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동물을 사냥할 때 독화살개구리의 독을 채취해 화살에 발라 썼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재미있는 건 독화살개구리가 스스로 독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식물은 대부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알칼로이드라는 독성 물질을 갖는데, 이를 섭취하는 흰개미를 독화살개구리가 잡아먹고 가공까지 마친 후에야 피부에서 독을 내뿜을 수 있다고 한다. 어리거나 자연적으로 고립된 독화살개구리는 독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생에서 한 번이라도 독화살개구리에게 당해 고생해본 경험이 있는 포식자라면, 독이 있든 없든 화려하고 조그만 개구리를 멀리서 보자마자 마치 독극물의 해골 마크를 만난 것처럼 조심스럽게 피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게 바로 경계색이 가진 무시무시한 능력이다.

    흡사한 형태로 위장하는 의태

    몸의 색뿐 아니라 형태까지도 완벽하게 동화돼 경이로울 만큼 놀라운 방식으로 자신을 숨기는 전략도 있다. 그중 하나는 천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공격해오는 대상에게 겁을 주려고 특수한 모습 또는 행동을 하는 의태다. 어떻게 천적에게 먹히지 않으면서 영양분도 섭취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발달한 감각기관이나 특화된 신체 부위는 물론, 특이한 형태나 행동까지 포함하면 생존을 위한 절박한 심정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대벌레. [GETTYIMAGES]

    대벌레. [GETTYIMAGES]

    들판에 숨어 있는 녹색 메뚜기 같은 부류는 쉽게 보이지 않으며, 아예 자벌레나 대벌레 등은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색이나 모양, 형태까지 바꾸기도 한다. 특히 대벌레는 누군가 건드려도 나뭇가지가 떨어지는 것처럼 땅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진다. 목숨이 사라질지 모르는 심각한 위해 상황에서도 끝까지 의태를 유지하는 프로의식이다. 밤나방과에 속하는 으름밤나방은 낙엽하고 똑같이 생겼다. 성충의 날개는 오래된 낙엽과 완벽하게 닮아서 그냥 가을이 오면 바닥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아무도 찾지 못한다.

    의태는 보통 베이츠 의태와 뮐러 의태로 구분된다. 먼저 베이츠 의태는 헨리 베이츠라는 곤충학자가 나비 종류를 연구하다 발견했다. 독이 없거나 주로 먹히는 데 충실한 덜 위험한 동물이 독이 있거나 악취가 나는 위험한 동물과 비슷하게 의태를 하면 포식자는 혹시 위험한가 싶어 자리를 피한다. 공갈이나 허세로 구분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전략인데, 목숨으로 승부수를 거는 무시무시한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꽃등에. [GETTYIMAGES]

    꽃등에. [GETTYIMAGES]

    포식자가 어쩌다 실수로 의태를 한 동물을 먹으면 당연히 독이 없을뿐더러 맛도 있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독이 있는 위험한 동물까지 먹으려고 시도하기에 원래라면 포식자가 피했어야 할 동물까지 전부 잡아먹히고, 포식자 역시 위험한 동물을 먹다 크게 피해를 본다. 그렇게 한참 독이나 악취에 당하고 나면 또 안 먹지만, 중간에 다시 의태를 한 동물이 나타나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그간 쌓아둔 공포심은 사라진다. 원래대로라면 독이 있는 동물은 포식자에게 웬만하면 잘 먹히지 않아서 개체가 쭉쭉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뜬금없이 베이츠 의태를 한 동물들 때문에 충분히 세력을 넓힐 수가 없다. 가끔 벌인 줄 알고 놀라서 보면 꽃등에인 경우가 있다. 꽃등에는 파리목에 속하며 꿀을 빨아 먹지만 꿀벌처럼 쏘진 못한다. 자세히 보면 날개가 4장인 꿀벌과 달리 파리처럼 날개가 2장이고, 배에 있는 줄무늬나 눈의 크기도 다르다. 이런 경우가 베이츠 의태다.

    뮐러 의태는 요제프 뮐러라는 곤충학자가 발견한 의태로, 두 종류의 위험한 동물이 서로를 닮게 진화하면서 만들어진다. 이건 베이츠 의태와 달리 허세가 아니기에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특별한 색의 동물을 먹었다가 호되게 당한 포식자가 있다면 이후 비슷한 색의 동물을 다 피한다. 즉 포식자가 두 동물로부터 먹어선 안 된다는 정보를 평소보다 빠르게 학습하게 되고, 결국 두 종류의 동물 모두 생태계에서 잡아먹히는 비율이 급격히 줄어들어 종족 보존이 유리해진다. 열대지방의 독나비나 말벌이 그렇다.

    종을 넘어서는, 오직 생존만을 위한 위대한 도전

    2019년 저명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표지에는 누가 봐도 쌍둥이처럼 닮은 나비 두 마리가 실렸다. 재미있는 건 정말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종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는 멜포메네길쭉나비(Heliconius melpomene amaryllis)고, 나머지 하나는 붉은점알락독나비(Heliconius erato)다. 전혀 다른 이 둘은 어떻게 똑같은 색깔과 패턴을 얻게 됐을까. 일단 계통학적으로 아무리 살펴봐도 두 나비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 대신 조심하고 피해야 할 포식자가 같을 뿐이다. 어느 쪽이 따라 했는지가 확실한 베이츠 의태와 달리 뮐러 의태는 전후 관계가 불분명하지만, 미국과 영국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필요에 따라 이 둘이 같은 무늬가 된 원인을 ‘유전자 흐름’에서 발견했다.

    유전자 흐름은 어떤 생물 집단의 유전자가 다른 집단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유전자가 이동하는 방식은 품종이나 계통이 다른 암수가 교배하는 교잡이다. 서로 다른 종이지만 진화 과정에서 교잡이 일어났고, 포식자를 상대하기에 유리한 형태의 유전자인 공통적인 무늬가 계속 퍼져나갔다. 어쩌면 생존을 위해 종이라는 한계마저 넘어선 시도였으리라.

    심지어 의태는 곤충끼리만 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포유류 중에서 곤충의 행동을 모방한 최초의 베이츠 의태 사례가 등장했다. 놀랍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인 모습 베끼기 전략이 아니라 소리를 비슷하게 따라 한다. 바로 박쥐가 포식자인 올빼미를 피하려고 말벌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다. 이탈리아 연구팀은 몇 년 전 야외에서 큰생쥐귀박쥐(Myotis myotis)를 포획했는데, 그물에서 떼어내려고 했더니 말벌처럼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후 천적인 올빼미에게 큰생쥐귀박쥐가 내는 말벌 소리를 녹음해 들려줬더니 스피커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연구진은 과거 올빼미는 말벌에 쏘인 적이 있으며 그로 인해 큰생쥐귀박쥐가 내는 소리에도 겁을 낸다고 추측했다. 올빼미의 청각 능력까지 감안하면 우리가 듣는 것보다 아마도 훨씬 더 말벌 소리에 가깝게 들릴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포유류가 곤충 소리를 모방하는 매우 이례적인 베이츠 의태 사례로 남았다.

    곤충이든, 파충류든, 포유류든 생존이 가장 중요한 동물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이건 본래 가진 능력이 위협적이든,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다. 각자 타고난 상황에서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에 유리한 전략을 고심하며, 하루라도 더 살고자 노력했기에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 가끔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만이 대단하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를 포함해 살아남은 모든 생명체가 승자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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