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1

2022.03.18

윤석열식 공수처 개혁 다음 총선까지 어려울 듯

[이종훈의 政說] 공수처의 권력형 비리 수사 독점 깨기, 여소야대서 난망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2-03-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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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동아DB]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동아DB]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설립 후 3월 11일 드디어 처음으로 기소를 했다. 그런데 날짜가 특이하다. 20대 대선 결과가 발표된 다음 날이다. 정권교체가 확정된 날이기도 하다.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한데, 공수처는 왜 하필 이날 기소를 했을까.

    공수처, 1년 만에 위상 급변

    공수처는 검찰개혁을 상징한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곧 ‘권력형 비리’ 수사를 주저하자 이를 대신하게 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깨면서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했지만 성과는 부진했다.

    출발은 화려했다. 지난해 1월 21일 공수처 현판식에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윤호중 전 국회 법사위원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반면 1주년이던 올해 1월 21일 공수처는 비공개 자체 기념식을 가졌을 뿐이다. 1년 만에 위상이 급변한 것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해당 자리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고 미흡했던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공직사회 부패 척결, 권력기관 견제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기대를 되새기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업무에 임하겠다”고 사과했다. 무엇이 미흡했다는 것일까. 김 처장이 첫 번째로 든 것은 바로 정치적 중립성이다. 그는 제도 개선안을 제시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선별해 입건한다는 저간의 의구심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공수처장이 사건을 선별해 입건하도록 한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공수처장이 사건을 선별해 입건하도록 한 시스템”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김 처장 본인이 ‘선별 입건’하도록 했다는 자백에 가깝다. 사건 선별 과정에서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 제22조는 “수사처 소속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외부로부터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공수처는 1년 동안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중 으뜸은 역시 정치적 중립성 훼손이다.



    공수처는 설립 후 1년 동안 24건을 입건했다. 이 가운데 야권 대선 후보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관련 사건이 4건이다. 진보 성향 단체인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사세행)이 고발한 사건만 7건이다. 이들 사건에 대한 수사가 부실해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연속으로 기각되는 민망한 일도 벌어졌다. 윤 당선인과 부인 김건희 씨, 국민의힘 의원 89명, 외신을 비롯한 국내외 기자 170여 명, 심지어 대학생까지 통신조회를 해 불법사찰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논란 대상이었다. 폐지론까지 일고 있는 가운데 윤 당선인은 2월 14일 사법 분야 공약 발표 기자회견 자리에서 “공수처가 계속 정치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야당 의원 거의 전원에 대한 통신사찰을 감행한다든지 하게 되면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뿐 아니라 공수처 제도에 대한 국민의 근본적인 회의를 바탕으로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폐지 언급에 검찰개혁의 상징이자 대표적 성과로 공수처를 내세웠던 문재인 대통령이 일단 놀랐을 것이다. 공수처 역시 위기감을 느꼈을 테다. 그런 점에서 이번 1호 기소는 ‘알박기’에 가깝다. 공수처를 폐지하지 말라는 일종의 시위다. 공수처는 1호 기소 직후인 3월 13일 선별 입건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사건사무규칙’ 시행에 들어갔다. 이런 노력이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까. 윤 당선인의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

    “공수처 우월적 지위 조정”

    윤 당선인은 일단 속도를 조절 중이다. 3월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잘못된 제도라도 법에 이미 설치된 기관을 함부로 없앨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수처의 우월적 지위를 조정해 다른 수사기관이 하려는 사건을 뺏어서 하려는 건 못 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구하면 검경이 이첩하도록 한 공수처법 제24조를 개정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경도 고위공직자 관련 비리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 공수처가 사건을 선별하거나 묻어버리는 일을 방지하겠다는 생각이다.

    속도 조절에도 불구하고 윤 당선인의 뜻이 당장 관철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공수처법 제24조 개정이 힘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채용한 공수처 검사들이 진보 성향일 가능성이 높은 점도 윤 당선인 입장에서는 걸림돌이다. 이들은 현 정부 관련 권력형 비리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설지 의문을 사고 있다. 차기 정부가 보수 성향의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먼지떨이 식 수사에 집중할지도 모를 일이다.

    공수처가 문재인 정부의 권력형 비리 수사에 실패하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검찰개혁은 이미 빛바랜 상태다. 공수처법 제24조 개정은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돼야 가능해진다. 공수처장과 공수처 검사의 임기는 3년이다. 공수처장과 공수처 검사도 그즈음에야 교체할 수 있다. 그때까지는 공수처장과 공수처 검사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주길 바라야 할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선 전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아쉬움으로 남는 게 몇 가지 있다. 공수처 설치 불발과 국가보안법을 폐지 못 한 일도 그렇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늦었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감회가 매우 깊다”고 밝혔다. 지금도 같은 심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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