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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안에서 데굴데굴, 못해서 더 사랑해요

철학자가 되는 시간, 맨몸 서핑

  •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파도 안에서 데굴데굴, 못해서 더 사랑해요



언제나 처음 
하는 기분이 들어 
즐거운 서핑. [GettyImages]

언제나 처음 하는 기분이 들어 즐거운 서핑. [GettyImages]

영대 현모 님 유튜브 방송 하나 하세요. 

현모 웬 유튜브요? 

영대 ‘안현모의 불알못’. 불어를 알지 못하는 현모 님이 불어를 배우는 프로. 

현모 푸하하하, 저 지금 음료수 마시고 있단 말이에요!! 



영대 ‘불알못’을 ‘불잘알’로 만들어드립니다! 

현모 아, 뿜을 뻔. ㅠㅠ 그나저나 날씨가 환상이에요! 올해 첫 서핑을 개시했답니다!! 

영대 태어나서 서핑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인터넷 서핑만…. 

현모 저는 완전 좋아해요. 서핑. ㅠㅠ 

영대 저는 물 공포가 있어요. 어릴 때 만리포 바다에서 빠져 죽을 뻔한 이후로. ㅜㅜ 

현모 헉! 그럼 물 얘기 꺼내지도 말까요? 

영대 아~ ㅋ 말을 못 할 정도는 아니고, 전동으로 된 걸 타는 정도는 해요. 

현모 저는 서핑이 무동력 운동이라 진짜 좋은 건데…. 

영대 근데 여기서 서핑이란 게 파도 파이프 사이를 통과하는 그거 맞죠? 

현모 네네. 보통 서핑 하면 광고에 나오는 그런 멋진 장면을 떠올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서핑을 한다고 하면 그런 상상을 하시는데, 저 엄청 못 타요. 근데 모순적이게도 저는 제가 서핑을 잘 못해서 더 사랑해요! 

영대 못해서 사랑한다…. 뭔가 철학적이네요. 서핑의 매력이 뭔데요? 

현모 일단 제가 물을 무척 좋아하고요, 또 자연에서 노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서핑까지 시작한 건데 생각만큼 빨리빨리 잘하게 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 일주일 하드트레이닝을 하면 잘할 줄 알고 포르투갈로 서핑 캠프까지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벼락치기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영대 포르투갈이 서핑으로 유명해요?

현모 네. 포르투갈에서 세계적인 대회도 많이 열리고, 되게 유명해요.

영대 와우, 처음 알았네요. 미국 캘리포니아나 하와이만 떠올랐는데.

현모 암튼 캠프 이후로 욕심을 버리고 틈날 때마다 조금씩 익혀야겠다고 맘을 고쳐먹었어요. 그때부터 내 생애에 파도 파이프를 촤악~ 가르는 수준급 서퍼가 되긴 글렀다는 걸 알고 계속 초보인 상태로 틈틈이 다녔죠. 그러다 깨달았어요!

영대 ?

현모 내가 뭔가를 이렇게 못하면서 좋아하는 게 거의 처음이란 걸요.

영대 오호. 재미나면서 한편으론 좀 이해돼요. 스스로 좌절감만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적당히 못할 때 진정한 아마추어로서 그 자체를 즐기고 집중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뭐든지 어느 순간 잘하면 준프로가 되잖아요. 장비에도 집착하게 되고. 

현모 그죠. 그래서 어떤 기분이냐면, 서핑을 하러 가면 늘 아이가 된 기분이에요~! 언제나 처음 하는 기분! 그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 

영대 어떤 느낌인지 너무 궁금하다.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박해윤 기자]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박해윤 기자]

현모 영대 님은 저처럼 해도 해도 제자리걸음인데 좋아하시는 거 있어요? 

영대 저는 ㅋㅋㅋ 웃기지만 바둑 중계를 그렇게 봐요. 

현모 아하! 

영대 중요한 건 바둑을 전혀 몰라요.ㅋㅋ 

현모 전혀요? 

영대 네. 배운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어요. 

현모 규칙은 알 거 아니에요. 

영대 해설이 그렇다고 하니까 아는 거지, 저한테 판단하거나 설명해보라고 하면 못 해요. ㅋ
 
현모 오 마이 갓! 너무 신기. 그럼 화면 보면서 딴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 집중하고 보는 거예요? 

영대 정말 집중해서 봅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 본 게 아니라 수십 년째 보고 있어요. 

현모 말도 안 돼!!! 언젠가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인가요? 

영대 관심이 있어 보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따로 배우려 노력한 적이 없고, 아예 엄두도 안 내봤어요. 멋진 클래식 연주나 피겨 스케이팅을 감상하는 것처럼 최고 두뇌들이 놓는 한 수 한 수를 경탄하며 보는 거죠. 왜 보는진 모르겠지만 유명한 대국은 다 챙겨 봤어요. 

현모 와…. 한마디로 영대 님은 바둑을 정말로 좋아하는 거고, 저는 서핑을 정말로 좋아하는 거네요. 영대 님의 경우 바둑알을 직접 놓진 않는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영대 ‘알’ 이야기가 많네요. 

현모 -.- 뭔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것을 꼭 잘할 거라고 오해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일 수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서핑을 3시간 한다고 치면 3시간 동안 일어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넘어지고 진짜 그게 전부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깊이 깨달은 거예요. 넘어지는 나 자신이 무척 좋더라고요! 서야만 좋을 거 같은데 말이죠. 

영대 아, 새롭다. 

현모 이 미련한 짓을 계속하는 내 모습이 웃음이 나면서도 긍지가 느껴지고, 그 무익함이 호사스럽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요.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박해윤 기자]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박해윤 기자]

영대 재미난 발견이네요. 보통 우리는 효능감에 좌우되잖아요. 공부도 성적이 오르는 과목을 더 파고들고. 이런 게 연애에도 정치에도 경제에도 다 적용된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효능감이 없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아! 현모 님은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었고 적어도 사람들이 보기엔 못하는 게 없는 분이니까, 못해도 상관없이 뭔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좋은 건 아닐까요? 

현모 맞아요. 경제적 효능에 지배되지 않고 오로지 감성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천진한 여유로움이 좋기도 해요. 서핑을 10년간 했으면서 어떻게 이거밖에 못하냐고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그러니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어 더 좋아요.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어느 순간 압박감으로 바뀌면 잘하다가도 못하게 되잖아요. 

영대 오늘 말씀 듣고 저도 반성한 부분이 있어요.

현모 반성까지요?

영대 좋아한다는 것과 잘한다는 것을 늘 같은 개념으로 보고 동일시했는데, 서핑을 못하는데도 즐겁기만 하다는 말이 되게 신선했어요. 저는 영어가 좀 그랬으면….

현모 사실 낚시든, 스키든, 뭐든 다 하다 보면 잘하려 기를 쓰고 경쟁하게 되는데, 저는 뻔질나게 서핑을 다니고 혼자 바다에서 첨벙거려도 한없이 편안하고 행복하더란 거죠. 본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취미까지 잘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어떤 면에선 직업만큼이나 취미 활동도 시선이 외부로 향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영대 심지어 휴가도 남들 눈을 의식하잖아요.

현모 솔직히 서핑은 얼굴 타고 주름 생기고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파도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고도 또 보드를 질질 끌고 들어가 패들 하고 테이크오프 하고 풍덩하고. 이걸 반복하는 나 자신이 무척 좋아요.

영대 꿋꿋하고 강한 스타일인 듯.

경제적 효능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로지 감성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서핑. [GettyImages]

경제적 효능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로지 감성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서핑. [GettyImages]

현모 서핑만 하면 철학자가 돼요. 생각해보세요. 자전거 탈 때도 귀에 뭔가를 꽂고 있는데 서핑을 할 때는 음악도 못 들어요. 휴대전화도 못 갖고 있고. 진짜 맨몸이라고요. 

영대 맨몸요??? 

현모 몸+보드=끝. 

영대 아, 순간 착각. ㅎㅎㅎㅎㅎ 

현모 맨몸이라고요. 알몸이 아니라 ㅎㅎㅎㅎㅎㅎ 

영대 자꾸 ‘알’ 얘기를 하니까. 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맨몸을 알몸으로 보다니. 

현모 저 명란알 엄청 좋아함. ㅎㅎㅎㅎ 

영대 와, 미쳐버려. ㅎㅎㅎㅎㅎㅎ 저도 외갓집이 젓갈의 고장 강경이었는데…. 

현모 세상에 만리포 바다에 빠졌었다더니 이번엔 삼천포네요. 

영대 ‘맨몸’에서 중심을 잃었어요. 서핑하다 퐁당…. 

(계속)





주간동아 1285호 (p58~60)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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