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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外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外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外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뜨인돌/ 472쪽/ 1만9800원

윤리적 질문에 반드시 정답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답이 다 다를 수 있다. 그 질문을 품고 씹고 또 곱씹어서 자신만의 진주알 같은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나치독일의 ‘최종해결(유대인 대량학살 계획)’을 마련한 아돌프 아이히만을 포함해 1100명의 나치전범을 심판대에 세워 ‘나치 헌터’로 불린 시몬 비젠탈(1908~2005)이 남긴 질문과 그것에 대한 53명의 다양한 해답을 담았다. 

비젠탈은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89명의 일가친척을 잃고 아내와 단둘이 살아남았다. 1948년 오스트리아 빈에 유대인역사기록센터를 세운 뒤 이를 토대로 나치전범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풍화시키지 않기 위한 시설’이 그의 이름을 따 건립된 것은 이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함이다. 



비젠탈이 1969년 발표한 에세이 ‘해바라기’가 이 책의 1장을 이룬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담은 이 글은 강제노역을 하러 가는 길에 본, 독일군 병사들의 무덤가에 줄지어 핀 꽃 이름에서 제목을 따왔다. 가해자는 죽어서 꽃 한 송이라도 갖는 데 반해, 피해자인 유대인은 나비 한 마리 날아오지 않을 구덩이에 던져지는 비참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환기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해바라기 한 그루라도 심길 무덤을 꿈꾸며 생존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1940년 말 병원 밖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비젠탈은 온몸에 흰 붕대를 감고 죽어가던 나치 친위대 장교에게 불려갔다. 수용소에 있는 유대인 중 아무나 한 명을 불러달라고 해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었다. 장교는 그에게 자신이 갓난아기와 아기 엄마를 포함해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죄악을 고백하며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비젠탈은 말없이 손을 잡아줬을 뿐 용서한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 채 병실을 나와버렸다. 죽어가면서 참회하는 이를 외면한 것이 과연 옳을까. 같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그 장교를 용서할 자격이 있을까. 

비젠탈이 지킨 침묵과 끝내 꺼낼 수 없었던 용서의 말 사이에 짙은 심연이 있다. 그 심연에서 피어나는 꽃이 바로 해바라기 아니었을까. 비젠탈의 글을 읽고 같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철학자, 성직자, 예술가, 심지어 나치전범이 보낸 답변이 이 책의 2부를 이룬다. 그렇게 1976년 출간됐다 1997년 전후세대 필자들의 글이 추가됐다. 거기엔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를 용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보스니아 인종학살 생존자의 답변과 ‘중국 정부의 모진 탄압에도 중국인에 대한 연민을 잃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는 달라이 라마의 답변도 담겼다. 

서로 다른 의견이 교차하는 글들을 읽다 보면 참회만큼, 아니 참회 이상으로 용서 역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참회를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면 진정한 용서를 위해선 따뜻한 자비만큼 냉철한 이성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2005년 ‘해바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될 당시 누락된 글들을 모두 수록한 완역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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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세계사
모토무라 료지 지음/ 서수지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324쪽/ 1만7000원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자신의 역작 ‘전쟁과 평화’ 서문에서 역사가들의 지적 게으름을 비판했다. 역사학자들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에 매몰돼 재미없는 글쓰기에만 매진한다는 것. 일본 서양사학자인 모토무라 료지 도쿄대 명예교수는 재미없는 역사 서술에 대한 톨스토이의 지적을 전면 수용해 역사학자인 자신조차 ‘하품이 나오고, 읽기 싫어지는’ 역사책을 덮고 방대한 인류사를 간명한 키워드로 엮었다. ‘천하무적 세계사’는 관용(Tolerance), 동시대성(Simultaneity), 결핍(Deficiency), 대이동(Huge Migration), 유일신(Monotheism), 개방성(Openness), 현재성(Nowness) 등 일곱 가지 주제로 역사를 설명한다. 

특히 인류사를 관통하는 현재성을 서술한 마지막 장 ‘현재성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진다’는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저자는 현대인의 과거사 이해는 결국 미뤄 짐작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면서 역사 속 인물과 자신을 무리하게 동화시키기보다 관점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즐거운 역사 이해가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E. H.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표현의 유쾌 버전인 셈. 고대 로마제국 연구자로서 중국제국을 비교사적 관점에서 접근해 ‘중화민족의 허상’과 ‘중국에서 왜 민주주의가 뿌리 못 내렸나’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한 내용도 흥미롭다. 

저자의 비판처럼 역사를 토막 내 암기하는, 현재성 없는 ‘입시용’ 역사교육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양으로서 세계사 읽기 방법(敎養としての 「世界史」 の讀み方)’이라는 일본어 원제처럼 세계사를 읽는 일곱 가지 키워드를 통해 교양의 근육을 키우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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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피탈
존 란체스터 지음/ 이순미 옮김/ 서울문화사/ 704쪽/ 1만6800원 

2019년 맨부커상 후보작에 선정됐으며,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라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함께 받은 소설. 언론인 출신 작가 존 란체스터가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한 2009년 영국 런던의 부촌인 ‘피프스 로드’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았다. 

영국 수도 런던, 그것도 부촌에 사는 주민들의 걱정은 서울 부촌에 사는 사람들의 고민과 퍽 닮았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부동산 가격. 순조롭게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주민들이 미소 지을 때쯤 정체불명의 문구가 쓰인 엽서가 등장한다. 엽서에는 ‘우리는 당신이 가진 것을 원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고, 그들이 사는 집을 찍은 사진이 동봉돼 있었다. 정체불명의 엽서는 평화롭던 거리에 파문을 일으킨다. 대체 누가 왜 이 거리를 감시하고 있을까. ‘캐피탈’은 세계 금융위기에 운명이 달라진 사람들의 다양한 변화상을 담고 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外
피아노 앞의 여자들
버지니아 로이드 지음/ 정은지 옮김/ 앨리스/ 340쪽/ 1만6000원 

마리아 아나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5세 위 누나이자 피아노 영재. 3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11세 이후에는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노래 부르며 유럽 순회공연을 다녔다. 딸을 ‘유럽 최고 피아니스트’라고 극찬한 아버지는 마리아가 18세가 되자 모든 공연 활동을 중단시킨다. 결혼 적령기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마리아는 동생 볼프강이 세계적 작곡가로 명성을 쌓아가는 동안 무명의 음악가로 묻혀버렸다. 

많은 여자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놀리며 피아노를 배운다. 그러나 정작 무대에 서는 피아노 연주자는 요즘에도 남성이 대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7세 때부터 13년간 정통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지만, 정작 성인이 돼 밥벌이로 한 일은 피아노와 거리가 먼 책 편집이었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세상 어디에도 재즈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여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피아노 곁을 떠난 것이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참석한 여고 동창회에서 “너 지금도 피아노 하지?”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은 것을 계기로 저자는 자신의 유년기를 꽉 채운 ‘피아노 시기’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자신처럼 촉망받는 피아노 연주자였지만, 결혼 이후 꿈을 포기해야 했던 자신의 할머니 테일러 여사의 생애를 발견한다. 

피아노 치는 ‘호주의 김지영’은 다른 시대를 산 2명의 여성(자신과 할머니)이 어떻게 피아노 연주를 추구했는지, 그리고 왜 피아노를 버렸는지를 차분한 어조로 추적해간다. 그 여정에서 만난, 피아노 앞에서 ‘사라진’ 숱한 여성의 삶도 책에 담았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外
세상에 속지 않는 법
박남주 지음/ 비사이드/ 288쪽/ 1만5000원 

누적 조회수 1000만 뷰를 돌파한 유튜브 채널 ‘법알못 가이드’의 운영자가 전하는 법률 가이드북. 현재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손쉽게 접하지만, 법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답을 찾기 힘들다. 법률 지식을 제대로 몰라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유튜버의 법률 선생님’으로 통하는 저자가 일상에서 발생하는 다양하고 소소한 법적 문제의 해결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놓았다. ‘내 게시물 함부로 퍼간 사람, 처벌할 수 있나요?’ ‘중고 거래 사기꾼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요?’ ‘경비실에서 맡겨진 택배가 없어졌다면 누구에게 따져야 하나요?’처럼 생활밀착형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으로 구성돼 있어 술술 읽힌다. 어려운 법률 용어나 이론적 설명은 최소화하고 상황별 대처법, 도움이 되는 기관이나 사이트 이름, 내용증명 같은 법률 문서 작성법까지 자세히 정리돼 있다.






주간동아 2019.11.08 1213호 (p67~69)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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