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2

2019.08.16

정민아의 시네똑똑

자연과 시간의 결을 존중하는 건축

정다운 감독의 ‘이타미 준의 바다’

  •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yedam98@hanmail.net

    입력2019-08-16 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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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유동룡, 이타미 준. 

    재일한국인 건축가는 한국 국적을 평생 유지했고, 유동룡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일본에서 교육을 마쳤다. 그의 이름 ‘준’은 좋은 친구였던 작곡가 고(故) 길옥윤의 예명에서 따왔고, ‘이타미’는 그가 처음으로 이용했던 공항 명에서 가져왔다. ‘이타미 준’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현 시미즈에서 성장한 유동룡이 건축가로서 스스로에게 만들어준 이름이다. 

    그에게 건축은 여행이다. 그리고 여행은 곧 건축으로 연결됐다. 국적이나 출신 학교 때문에 주류에서 활동할 수 없었던 그는 1968년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열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을 여행했다. 경북 경주와 서울 종로의 오래된 옛집들을 보면서 그는 빛과 바람,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내는 건축의 생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나간다. 평생을 여행자로 살아온 그는 자신의 삶이 건축에도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도자기를 사랑했던 이유는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마음으로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집을 짓고 싶어서였다. 삶의 여정에서 스스로 확립한 건축 철학은 경계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를 품은 건축, 빛을 존중하고 바람을 허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과 함께 모습도 달라지는 삶의 건축. 어쩌면 그는 고독한 내면을 차분하게 다독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여백의 아름다움을 담아냈을 것이다. 이런 그만의 건축 철학은 말년에 거대한 행운으로 열매 맺는다. 

    고베에서 도시락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건축주가 제주에 리조트를 짓겠다고 그에게 연락해온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들이 만났을 때 두 사람 모두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서귀포시 포도호텔과 수풍석박물관은 빛과 바람, 돌과 소리를 품은 여백의 예술품이다. 건축주는 건축가의 철학을 존중했고, 말년의 이타미 준은 자신의 필생의 역작을 남겼다. 



    영화와 사진, 건축을 전공한 정다운 감독은 이 신비로운 예술가 이타미 준의 건축들 위로 양방언의 음악과 최백호의 노래, 그리고 유지태의 목소리를 겹쳐놓았다. 2011년 별세한 이타미 준을 알아왔고 그의 철학에 감동받은 많은 주변인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회상한다. 자신의 길을 이어가는 딸들, 건축 철학을 구축하는 길에 함께했던 도반들, 시간의 건축에 감명받은 건축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설명을 잔뜩 곁들여 그의 위대함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소년의 작은 발걸음을 따라가며 우리는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꼼꼼히 보고 느낀다. 공간과 풍경을 통해 이야기하는 이미지텔링에 초점을 맞추는 이 예술 다큐멘터리 안에서 이타미 준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자연의 위로가 전해진다. 덤으로 가수 최백호의 무심한 목소리에 담긴 고독감이 아이러니하게도 생에 온기를 더한다. 빛의 풍경과 바람의 소리가 기이하게도 촉감과 냄새로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극장용 다큐멘터리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세심하고 정성스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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