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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 와인 포 유

칠레 대통령 가문 ‘에라주리즈’ 명품 와인을 만든 신의 한 수는?

칠레 대통령 가문 ‘에라주리즈’ 명품 와인을 만든 신의 한 수는?

‘에라주리즈’의 포도밭 전경. [사진 제공 · ㈜아영FBC]

‘에라주리즈’의 포도밭 전경. [사진 제공 · ㈜아영FBC]

칠레의 와인 역사는 의외로 길다.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칠레에 정착하면서 와인 양조가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는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이 좋은 포도를 선호해 와인 생산은 질보다 양 위주였다. 칠레 와인이 고급화 길로 들어선 것은 19세기 중반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 같은 프랑스 품종을 도입하면서부터다. 고급화를 이끈 주역 가운데 하나가 ‘에라주리즈’(Errazuriz·외래어 표기법은 에라수리스이며, 와인과 와이너리의 경우 ‘에라주리즈’로 표기)다.


천혜의 와인산지 ‘아콩카과 밸리’

최근 한국을 방문한 에두아르도 채드윅 ‘에라주리즈’ 회장. [사진 제공 · ㈜아영FBC]

최근 한국을 방문한 에두아르도 채드윅 ‘에라주리즈’ 회장. [사진 제공 · ㈜아영FBC]

에라수리스는 대통령 4명과 대주교 2명을 배출한 칠레 명문가다. ‘에라주리즈’ 와이너리를 설립한 돈 막시미아노 에라수리스(Don Maximiano Errazuriz·1832~1890)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고 성공한 기업가였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 가스회사를 설립해 수도 산티아고에 가로등을 설치했고, 나라가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는 개인 재산을 선뜻 내놓을 정도로 애국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1870년 돈 막시미아노는 칠레도 명품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에라주리즈’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당시 와이너리는 대부분 산티아고에서 가까운 마이포 밸리(Maipo Valley)에 자리 잡았지만, 그는 말을 타고 직접 좋은 땅을 찾아 나섰다. 그가 선택한 곳은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아콩카과 밸리(Aconcagua Valley)였다.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돈 막시미아노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아콩카과 밸리는 이제 천혜의 와인산지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콩카과 밸리는 안데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아콩카과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룬 계곡이다. 아콩카과강은 상류, 중류, 하류마다 토양과 기후가 다양해 포도를 특성에 따라 재배할 수 있는 곳이다. 돈 막시미아노는 와이너리 노동자를 위해 집, 학교, 교회를 짓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2013년 서울에서 열린 베를린 와인 테이스팅. [사진 제공 · ㈜아영FBC]

2013년 서울에서 열린 베를린 와인 테이스팅. [사진 제공 · ㈜아영FBC]

현재 돈 막시미아노의 5대손인 에두아르도 채드윅(Eduardo Chadwick) 회장이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다. 채드윅 회장 역시 칠레 와인의 품질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4년 그는 베를린 와인 테이스팅을 개최했다. 베를린 와인 테이스팅은 ‘에라주리즈’ 와인을 포함해 전 세계 명품 와인 16종을 놓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우열을 가리는 행사였다. 누구도 칠레 와인을 명품으로 인정하지 않던 당시, 사람들은 무슨 배짱으로 저러나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에라주리즈’ 와인들이 샤토 라피트(Chateau Lafite)와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같은 명품을 제치고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채드윅 회장은 2014년까지 10년간 전 세계 16개국 주요 도시에서 와인 테이스팅을 개최했다. 품질로 칠레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의지였다. 서울에서도 2008년과 2013년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있었는데, 2013년 서울 테이스팅에서는 ‘에라주리즈’의 아이콘급 와인인 돈 막시미아노가 1위에 올랐다. 

설립자 이름을 딴 돈 막시미아노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품종으로 카르미네르(Carmenere), 말벡(Malbec) 등을 블렌딩해 클래식 보르도 스타일로 만들었다. 묵직한 보디감과 매끈한 질감이 특징이다. 최근 돈 막시미아노의 최신 빈티지인 2016년산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기후가 선선했던 2016년산 와인은 잘 익은 베리류의 달콤함에 꽃향과 후추향이 우아하게 곁들고 있다.


감초, 커피, 담배…복합미의 진수 보여줘

돈 막시미아노, 맥스 리제르바 카베르네 소비뇽, 맥스 리제르바 샤르도네. (왼쪽부터) [사진 제공 · ㈜아영FBC]

돈 막시미아노, 맥스 리제르바 카베르네 소비뇽, 맥스 리제르바 샤르도네. (왼쪽부터) [사진 제공 · ㈜아영FBC]

2016년처럼 선선했던 2008년산도 비교 시음을 했다. 11년간 숙성시킨 이 와인은 응축된 과일향이 묵직하게 피어오르고 오랜 병 숙성으로 만들어진 감초, 커피, 담배, 견과 등의 복합미를 선사했다. 2016년산도 아마 10년쯤 뒤에는 이렇게 멋진 맛을 보여주지 않을까. 

2016년 ‘에라주리즈’는 돈 막시미아노의 세컨드 와인인 빌라 돈 막시미아노를 출시했다. 20만 원을 호가하는 돈 막시미아노의 품질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도록 절반 가격에 내놓았다. 


스테이크와 페어링한 돈 막시미아노 2008년산과 2016년산. (왼쪽), 빌라 돈 막시미아노와 두릅전. [사진 제공 · ㈜아영FBC]

스테이크와 페어링한 돈 막시미아노 2008년산과 2016년산. (왼쪽), 빌라 돈 막시미아노와 두릅전. [사진 제공 · ㈜아영FBC]

20년 이상 짱짱한 맛을 보여주는 돈 막시미아노에 비해 빌라 돈 막시미아노는 연식이 좀 짧아 복합미가 덜하지만 그 대신 과일향이 신선하고 질감이 부드러워 오랜 병 숙성 없이도 즐기기 좋은 스타일이다. 2016년산을 맛보니 상큼한 과일향과 톡 쏘는 향신료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우리나라 음식과도 어울렸는데, 전류와 궁합이 잘 맞았다. 

‘에라주리즈’ 와인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것은 맥스 리제르바(Max Reserva) 시리즈일 것이다. 맥스 리제르바 시리즈는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Pinot Noir), 시라(Syrah), 샤르도네(Chardonnay), 카르미네르 등 단일 품종 와인들로 이뤄져 있다. 이 와인들은 아콩카과강의 물줄기를 따라 품종별로 최적지에서 기른 포도로 만들어 각 와인마다 개성이 한껏 살아 있다. 3만 원대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품질이 좋아 ‘에라주리즈’의 스테디셀러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채드윅 회장은 “칠레는 최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곳으로 칠레 와인은 전통, 문화, 자연을 모두 담은 상징적인 상품”이라며 “칠레 와인을 좀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9.04.05 1183호 (p74~76)

  •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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