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8

2017.12.20

황승경의 on the stage

눈물과 광기로 만나는 ‘별이 빛나는 밤’

뮤지컬 | 빈센트 반 고흐

  • 입력2017-12-19 13: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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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HJ컬쳐]

    [사진 제공·HJ컬쳐]

    가왕(歌王)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김희갑 작곡  ·  양인자 작사)에는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라는 구절이 나온다. 

    한국 가요에도 나올 정도로 불우했던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27세에 뒤늦게 직업 작가의 길로 나섰기에 누구보다 예술에 열의를 보였던 그는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캔버스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의 800여 작품 가운데 제값에 팔린 건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라는 유화뿐이었다. 이처럼 살아서 인정받지 못하던 그의 작품이 지금은 천문학적 액수에 팔리고, 그의 작품을 보려고 몰려든 관람객으로 미술관은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불멸의 화가 고흐의 열정과 눈물이 담긴 명작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방’ ‘해바라기’ ‘꽃 핀 아몬드 나무’ ‘아를의 밤의 카페’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등이 뮤지컬 무대에 펼쳐진다. 목사 집안의 장남으로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고흐(조상웅 분)는 일찍이 신학자를 꿈꿨고 신앙심도 깊었지만, 물과 기름처럼 종교지도자라는 환경과 어울리지 못했다. 불꽃같은 37년간 삶은 정신착란, 환각, 신경쇠약, 우울증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고흐에게는 든든한 우군이자 후원자, 동반자였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박유덕 분)가 있었다. 뮤지컬은 실제 이 형제가 나눈 700여 통 편지를 바탕으로 고흐의 흔적을 따라 움직인다. 편지에는 소소한 일상뿐 아니라 물심양면 응원해주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비롯해 현재 작업 중인 작품에 관한 설명, 예술적 철학과 신념, 인간에 대한 사색 등이 자세히 담겼다. 관객은 고흐의 정신세계를 눈과 귀로 마음껏 만끽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운다. 

    연출자 김규종은 강렬한 고흐의 화폭으로 무대를 뒤덮는 모험을 시도했다. 고흐의 독특한 빛과 색으로 채워진 무대의 마력 때문에 자칫 배우가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연출자는 고흐의 가창력과 테오의 존재감 있는 연기로 이런 우려를 단번에 불식했다. 

    배우 박유덕은 테오뿐 아니라 아버지와 동료 화가인 고갱, 미술아카데미 교사 안톤 등 다양한 인물을 연기했다. 특히 같은 공간에서 한 명의 배우가 표현해야 하는 상반된 두 인물(고갱과 테오)의 팽팽한 갈등 장면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3D 프로젝션 ‘매핑’을 이용한 영상기술로 만나는 입체적 영상은 미디어 퍼포먼스의 향연으로서 손색없다. 고흐가 손으로 터치하면 그림이 펼쳐졌다 사라지고, 인물화 속 지누 부인은 관객을 향해 손 흔들며, 수려한 밀밭은 황금물결을 이루면서 움직인다. 그렇게 고흐의 투박하지만 강렬한 색채와 뚜렷한 붓질은 선율을 타고 생명체가 돼 무대에서 꿈틀거린다. 명작의 숨결과 함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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