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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역사 교과서 논쟁 - Global Asia-주간동아 특약

빅 브라더의 부활 일본 역사 교육

위안부 다룬 교과서 1997년 6종에서 2003년 3종, 지금은 ‘0’

빅 브라더의 부활 일본 역사 교육

빅 브라더의 부활 일본 역사 교육

4월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일본 역사 교과서들. 진보성향 출판사인 ‘마나비샤’가 출판한 역사 교과서는 애초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김학순의 증언’이라는 제목 아래 자세히 기술했던 위안부 관련 내용과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그림, 공문서에서 확인된 위안소 표시 지도를 모두 삭제하고서야 합격 처리됐다.

정치가들이 틈만 나면 역사 교육을 자신들 입맛에 맞게 끌고 가려 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미국 정치인들도 때만 되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필요한’ 행동이었다고 되새김질하지 않는가. 일부는 아예 원자폭탄 투하를 도덕적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그러한 주장과 반대되는 증거가 아무리 넘쳐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날 일본의 일부 정치인과 여론주도층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들은 사뭇 이야기가 다르다. 일본 현대사에 대한 극단적 해석을 떠받드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비판의 날을 세우며 시위에 나서는 사람과 단체도 늘고 있다. 2014년 10월 일본역사학회와 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현 일본 정부의 역설적 행태를 고발하는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전도 안 된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의 오도된 역사 관련 인식은 일본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도 유례없는 비판과 비난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일본 내 일부 권력자는 아베 내각이 말하는 이른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다. 많은 이가 맞서야 할 때가 됐다고 느끼는 이유다.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에 담긴 왜곡과 생략 등 다양한 문제는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중 논쟁의 중심에 있는 정치적 이슈는 일본이 과거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 군의 성노예 제도로, 당시에는 이를 미화하기 위해 흔히 ‘위안부’라 불렀다. 1997년까지 일본 검인정 역사 교과서 7종 중 6종이 위안부 문제를 다뤘지만, 이후부터 시대에 역행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3년까지 역사 교과서 8종 중 단 3종만이 위안부 문제를 다룬 것이다. 심지어 현재는 어느 교과서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일부 교과서는 과거 일본군이 성관계를 맺었던 여성들(주로 조선인)에 관한 불쾌한 과거를 모호하게나마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출판사들은 정부의 방침에 반한다는 이유로 과거에 이미 실은 바 있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삭제하는 등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더 방대한 역사를 다루는 정부 검인정 역사 교과서가 그렇지 않은 책들보다 더 심각한 역사 왜곡을 저지르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20세기 가장 극악한 인권유린의 피해자들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2014년 10월 아베 내각의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교실에서 사전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면서 그 이유로 “사전에 기재된 내용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아마도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상상했던 빅 브라더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사례일 것이다.

물론 일본의 학교는 여전히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열린 교육공간이다. 일본 헌법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교사들은 스스로 선택한 보충자료를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 적어도 원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새 역사 교과서들의 왜곡 행위는 분명 최근 일본의 불안정한 사회환경과 관련이 깊고, 교과서가 저지르고 있는 과거에 대한 생략과 왜곡은 교사들을 좌절케 한다. 이제 교사들은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내면화하고 있고, 그러한 상황에 반기를 드는 것은 엄청난 잠재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역사 논쟁의 또 다른 쟁점으로 옛 일본군이나 그 대리인 혹은 중개인이 식민지 여성의 강제 성노예화에 어떻게 관여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많은 중학교 교사는 예전 정부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통해 옛 일본군이야말로 성노예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임을 증명하는 정부 문서를 봤고 또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이제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일처럼 돼가고 있다.

오늘 역사 수업을 진행하는 일본 교실을 들여다보자. 역사 교사가 12~13세 학생들(‘위안부’로 강제동원된 피해자 대다수가 대략 이 나이 즈음이었다)에게 일본군의 기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로 마음먹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한 행동 자체가 제도적으로 금지돼 있는 건 아니지만, 교사들은 자신의 설명을 뒷받침할 보충자료를 스스로 구해야 한다. 과거에 정부가 승인했던 자료는 이제 금지됐다. 어느 교사에게나 쉽지 않은 선택이다. 특히 사춘기 아이들에게 이렇듯 민감한 문제를 가르쳐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본 대 한국의 싸움이 아니다

빅 브라더의 부활 일본 역사 교육

4월 21일 미국 워싱턴 하원 본회의장에서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민주당·캘리포니아 주)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과거의 전쟁 범죄를 사과하라고 촉구하던 도중 일본 역사 교과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8월 15일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를 앞두고, 2014년 10월부터 일본 국내와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개서한 발표가 이어졌다. 와다 하루키, 하야시 히로부미, 우쓰미 아이코, 우에노 지즈코 등 여러 저명한 일본 사학자가 참여해 6월 발표한 ‘2015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 지식인 성명’이 대표적이다. 이 서한에서 학자들은 ‘여전히 풀어야 할 역사 문제가 남아 있는 만큼 아베 총리는 과거 일본의 침략과 식민통치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들에게 안긴 피해 및 고통을 인정하고 다시금 유감과 사과를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일본연구학자 500여 명은 ‘일본의 역사학자들을 지지하며’라는 서한을 통해 이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나섰다. 역시 ‘위안부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 서한은 ‘역사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고 이를 무기로 활용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장 유명한 일본 소설가 두 명도 공개석상에 나섰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사다 지로는 방식은 다르지만 유사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1945년 이전 일본이 아시아를 상대로 저지른 행위에 대해 지금의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역사를 정치화하고자 시도하면서 벌어진 일련의 일은 일본과 한국 혹은 일본과 중국의 싸움이 아니라, 일본 대 일본이라는 국내 문제라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오랜 진리를 무시하는 아베 정부를 향해 반기를 들었던 많은 학계 인사는 이제 배신자, 반일(反日), 오만, 극좌파 같은 말로 폄훼되고 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아베 내각의 역사 왜곡과 의도된 망각에 맞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곧 일본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영어 원문은 http://globalasia.org/article/straight-out-of-orwell-history-teaching-in-japan-today/ 참조)



주간동아 2015.09.21 1006호 (p78~79)

  •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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